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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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냄새가 있다. 무언가 비릿하고 아련하고 한없이 그리운 냄새. 그 냄새에는 많은 것이 묻어온다. 여섯 살 언저리. 나는 노란 가방을 매고 한없이 비를 맞았다. 그냥 무언가 아주 그럴듯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쏟아지는 비로 온통 적셔지는 내가 좋았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엄마가 수건으로 나를 닦아 주던 기억. 엄마는 나를 야단치지 않았다. 열다섯 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름이 '~진'으로 끝나던 친구 두 명과 일부러 비를 맞으며 소풍에서 돌아오던 기억. 할 얘기도 들을 얘기도 웃을 일도 넘쳐나던 그때. 그리고 스무 살. 어쩔 수 없이 맞았던 비는 슬펐다. 청춘은 너무 찬란하다는 기대치값이 있어 현실과의 간극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냥, 거기 서 있는 것만으로도 눈부시던 나이임을 몰랐고, 무언가를 어떻게 이야기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그 비릿한 내음이 피어 오르기 시작하면 나는 무언가 한없이 그리워진다. 막연한 그 느낌, 다 불러낼 수 없는 기억들. 하지만 그 냄새와 그 소리 안에 나의 과거들은 차곡차곡 자리를 잡고 쌓여 호명을 기다리고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 책은 그러한 것들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의 과거는 종잡을 수 없이 소환된다. 그 기억은 현재로 복원되고 다시 화자는 그 기억을 소환해 내는 매개체들에 둘러싸이는 지금으로 복귀하기도 하며 과거, 현재, 미래, 저기, 여기의 경계를 허문다. 숱하게 회자되었던 마들렌이란 과자는 일부일 뿐이다. 그 과자는 과거의 과거를 호명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준 마들렌을 홍차에 적셔 먹으며 그는 더 이전의 과거, 남편을 잃고 칩거 생활을 하던 레오니 아주머니가 소년이 찾아오면 주고 했던 그 마들렌을 통하여 콩브레 마을의 정경을 다시 불러온다. 프루스트가 불러내는 과거의 부활의 정경은 눈부시다. 그의 화법에 익숙해지면 그의 이야기는 달콤한 향을 풍기며 귓가에 머물기 시작한다.

 

일본사람들의 놀이에서처럼 물을 가득 담은 도자기 그릇에 작은 종잇조각들을 적시면, 그때까지 형체가 없던 종이들이 물속에 잠기자마자 곧 펴지고 뒤틀리고 채색되고 구별되며 꽃이 되고, 집이 되고, 단단하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제 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 씨 정원의 꽃들이, 비본 냇가의 수련과 선량한 마을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

-p.91

 

'나'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고모할머니 등 모계와 부계가 분방하게 얽힌 삼대 가족과 기묘한 동거를 한다. 콩브레의 저택은 정작 레오니 아주머니의 어머니인 고모할머니의 소유다. 실제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던 프루스트의 눈에 서 종종 콩브레의 집을 방문했던 스완이라는 부르조아는 하나의 대리 자아다. 그는 유대인이고 사교계에서 유명하며 그럼에도 정작 화류계의 여자 오데트와 사랑에 빠지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지향하고 가지고 싶은 것들을 향유하는 귀족 세계를 선망하고 질투하는 '속물근성'은 기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핵심적인 정서이다.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원한다고 말하는 것의 거리 어디쯤이 우리 모두는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데도 그런 것을 가장 잘 이야기한 사람은 거의 프루스트가 유일한 것 같다. 절대적인 악인도 절대적인 선인도 없이 그의 앞에서는 하나의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인간들의 내면과 그 인간들이 말과 행동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인간은 아름답지도 이상적이지도 않지만 그래서 끊임없이 실수하고 번복하지만 프루스트의 펜끝에서 그려지는 그들의 궤적은 우리와 너무 닮아 있어 습자지처럼 흡수하게 된다. 존재와 삶은 아름다운 것 이상이다.

 

여기에서 남는 것은 사물이다. 콩브레 마을의 모든 일, 모든 시간, 모든 관점에 형태를 주고 완성하고 축성하는 생틸레르 종탑. 화류계 여자와 결혼함으로써 '나'의 집안과 멀어진 스완이 사는 집으로 통하는 산책길, 콩브레 특유의 묘하고 경건한 슬픔을 간직한 귀족인 게르망트가가 있는 길,(그 길 앞에서 '나'는 언제나 작가로서의 소양과 자질의 부족함으로 번민한다). 프루스트는 형이상학적 이야기를 형이하학적인 것에서 풀어내는 재능이 있다. 우리가 가고 남는 사물들이 포함하는 우리의 기억들은 불멸로 그것들 안에 갇힌다. 프루스트가 이야기하는 켈트족의 신앙.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들이 갇히는 동물, 식물, 무생물.

 

그러다 그날이 오면 영혼은 전율하고 우리를 부르며,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는 순간 마법이 풀린다고 한다. 우리 덕분에 해방된 영혼은 죽음을 정복하고, 우리와 더불어 살기 위해 돌아온다.

-p.85

 

자, 끊임없이 그는 기억을 이야기한다. 클리프턴 패디먼의 이야기처럼 그의 책은 5~10년 사이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만치 와서 나의 과거를 불러내고 또 저만치 가서 지금을 불러내는 과정은 다시 사는 것에 비견할 만한다. 그가 이야기했던 도자기그릇의 물안에서 다시 복원되는 유년시절의 그 눈부신 정경들처럼, 어느 순간 나의 지금은 다시 재구성되어 훗날의 의미와 재해석을 입고 다시 부활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이야기는 삶에 있어 하나의 지침이다. 조금 불친절한 그의 화법과 몽환적인 그의 음색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그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 줄 것 같다. 끝까지 따라갈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를 만난 것은 행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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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3-23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 오는 날엔 한없이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그리움....
비 오는 날 창 넓은 창가에 앉아 커피 마시는거 참 좋아해요. 하긴 누구나 좋아하겠지만요^^
읽다 포기했던 이 책! 저에게도 행운으로 다가오기를 바라며....ㅎㅎ

blanca 2013-03-25 10:2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아 카푸치노 한 잔하면 정말 행복하죠! 우산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저는 지금 심한 감기에 걸려 눈물 줄줄 흘리며 이 댓글 씁니다. 세실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2013-03-24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25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