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의 어플 ireaditnow(알라딘 서재 모분이 만드셨단다)는 일종의 독서기록장 어플이다. 별점도 매기고 간략한 코멘트도 덧붙이고인용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인터넷에서 책 이미지를 바로 불러와 읽는 진행 상태를 기록해 둘 수 있고 독서량 통계도 낼 수 있는 아주 사랑스러운 어플리케이션이다. 

나름대로 책을 좋아하고 어설픈 다독가라고 자평하지만 기록에 인색하니 읽은 책을 또 읽고 열심히 읽은 책 얘기를 남에게서 듣고 생소해하는 지경에 이르니 허무해서 시작한 서재활동은 그러나 보여진다,는 것을 의식하는 피로감이 있었다. 그리고 리뷰를 다 작성하기는 여력도 없고 능력도 없고 해서 숭덩숭덩 건너뛰니 독서 목록과 어느 기간 동안 얼마 만큼 읽었다,는 수치상의 합산 개념을 가질 수 없어 아쉬웠다. 이 어플은 정말 맞춤하였다. 한 달에 몇 권을 읽나, 별점 다섯 개인 책은, 세 개인 책은 어떤 게 있나, 이런 식의 조망이 가능해지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괜히 스마트한 척 주변 사람들한테 자랑도 하고 했는데. 

바보처럼 인터넷에 연결해서 동기화를 잘못 하는 바람에 다 깡그리 모조리 아주 시원하게 날아가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애플에서 세 번째 무기한 병가를 내고 퇴장했다는 스티브 잡스의 어느 대학에서 했다는 연설문이 출력되어 옆에 놓여있고. 

최고의 최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회자되는 그가 대학생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입양아였고 췌장암진단으로 죽음 가까이 다가가 본 경험을 통해 죽음이 당신이 무엇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을 벗어나는 최고의 길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온라인으로 이미지화되고 저장되는 것들은 어쩌면 실물이 아닌 하나의 허상, 환상일지도 모른다.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고 견디는 것은 아닌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오만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아주 시원하게 다 날려 버리고도 또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지. 잃어버린다는 것이 대체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개념과 어긋나는 건지 하나인 건지 모르겠다. 놀라웠던 것은 다 날아가 버린 것들을 애타게 그리워하지 않는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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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1-21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날아가 버린 것을 애타게 그리워하지 않는 쿨함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blanca 2011-01-21 21:35   좋아요 0 | URL
여기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을 세워 놓았다 갑자기 이사 가게 된 것만 봐도 그런 것 같아요. 이제는 하나씩 버리고 추리는 연습도 해야 할까봐요, 순오기님.

양철나무꾼 2011-01-21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이폰으로 바꿔봐 했던 게 아이폰의 어플 ireaditnow때문이었는데 말이죠.
시원하게 날아가 버린 건...시원하게 잊어버리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순오기님 말씀에 한표요~!^^

이사 준비하시느라 바쁘시죠?
이사 끝내고 차근 차근 다시 시작해 보세요.
그때쯤 제가 혹 아이폰을 장만하기라도 하면, 선배로서 조언도 해주시구요~^^

blanca 2011-01-21 21:38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도 아이폰 장만하시려구요? 저는 먼저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에 걸맞는 내공은 전무하답니다.--;; 오죽하면 다 날려 버렸겠어요 ㅋㅋㅋ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는 것들도 컴퓨터처럼 백업을 해야 겠더라구요. 결국 정말 소중한 것들은 수고를 해서 담아 놓고 관리해 주고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저 내일 이사인데 집안 정리도 안되고 지금 무언가 중요한 일을 안 해 놓은 것 같고 서재에서 이러고 있고 --;;

turnleft 2011-01-21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거걱.. 죄송합니다. 미리미리 백업 기능을 제공했어야 하는데.. ㅠ_ㅠ
혹시 iTunes 에서 아이폰 이름에 오른 클릭 하신 후 Restore 선택해 보셨나요? 그럼 최근 백업한 데이터로 되살려지기는 하는데..;;

blanca 2011-01-21 21:39   좋아요 0 | URL
TurnLeft님이 왕림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그런데 이제 소심증이 왔어요. 이 좋은 정보를 막 날아갔을 때 알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이후로 또 이거저거 깔고 그래서 불안불안하답니다. 다시 시작할게요. 좋은 어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제 탓이지요.

비로그인 2011-01-21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중한 기록이 있었어요. 내 기억의 한자락.
내가 들었던 말들과 내가 했던 말들을 다 기록했어요. 유아원 때, 집에 가기 전 동화책 한 단락을 읽어주는 걸 듣고 집에 가자마자 그걸 그대로 기록하게 하는 기억력 훈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지요.
그걸 내도록 곱씹으며 몇 번을 다시 봤는데, 아, 세상에.

정품을 사용하다가 탈옥을 하다가 다시 정품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 백업도 소용없이 그게 다 날아갔지 뭡니까.

행여나 아니 올까 그 님이 아니올까 기다리는 이 마음 허무해라

그 마음이었어요. 그 마음이었어요.

다 잃었다고 생각하고 털석 주저앉아 버렸는데, 제 기억 속에서 어떤 부분은 이제 잊혀져서 기억이 나지 않고 어떤 부분만 더 빛을 발합니다. 결국 기록하지 않고 있는다는 건 잊는다는 것이 아니라 더 생생하게 보관하는 일일거란 생각을 했어요. 양각과 음각이 있어 더 도드라지고 더 생생해집니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볼에 홍조가 생기고,내 표정이 들뜨곤 해요.

결론-이제 탈옥 안합니다(응?)

blanca 2011-01-21 21:43   좋아요 0 | URL
쥬드님도 저와 똑같은 경험을 하셨군요--;; 순간 정말 벙찌다,는 표현이 절절하게 와닿더라구요. 게다가 쥬드님은 그토록 소중한 기억의 기록이었다니 순간 얼마나 허무하셨을까요. 양각과 음각. 이 말이 너무 좋아요. 책을 몇 권 읽고 별점 몇 개를 줬다는 데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말란 가르침일까요?

결론 그러나 또 시작합니다.^^;;

saint236 2011-01-22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쿨럭...저도 그래서 아이튠즈는 거의 사용 안합니다. 노래 넣을 때나 영상을 넣을 때는 다른 프로그램으로...동기화로 몇번 날린 기억이 있어서...컴퓨터에 데이터화해서 집어 넣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단한 휘발성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blanca 2011-01-22 20:33   좋아요 0 | URL
saint236님, 정말 그래요. 저도 두 번째랍니다. 눈 깜짝할 새에 그렇게 되더라구요. 백업을 해 두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그게 또 쉽지가 않네요.

like 2011-01-24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오래전 아이팟에 녹음한거 날라가서 국제전화까지 한적있어요..ㅎㅎ 편리하긴해도 저장매체로서 안정성은 최악이라는 글을 보면서 동감100%

blanca 2011-01-24 22:50   좋아요 0 | URL
저는 솔직히 제 잘못이라고만 자학했는데 댓글들에 위로를 받아요^^;; 아이팟! 넘 귀엽더라구요. 드라마도 다운받아 보는 거 보고 넘 귀엽고 간지럽고 하더라구요 ㅋㅋ 저 하도 저장 관련해서 식겁한 적이 많아서 이제는 정말 백업좀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역시나 안 하는 중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