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는 것이 올바른 책의 선택인양 호도하는 얘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시간의 혹독한 세례를 견뎌내지 못할 책들은 읽을 가치가 없다는 식의 논조는 베스트셀러는 흥미를 끌고 쉽게 읽히기는 하지만 그 이상이 될 수 없다는 단정를 품고 있었다. 

베스트셀러 순위를 자주 확인하고 또 그것에 기대어 책을 사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이 읽는 책에는 항상 이유가 있었다. 적어도 읽고 나서 들인 시간과 비용이 어처구니 없다,고 짜증이 확 치미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일단 가독성이 좋다. 잘 읽히고  그 시간이 즐거우면 그것만으로도 더할나위 없는 역할을 한 셈이다. 정말 좋아하는 친구일지라도 반 나절을 보내면서 항상 즐겁고 너무 유익했다,고 느끼기란 쉽지 않다.  책에도 너무 큰 기대와 과업을 걸지 말고 기다려 주고 그저 친근감 있게 반겨 주다 의외로 선전할 때는 어깨를 두드려 주는 그런 봐주기가 필요한 시간인 것 같다.   

  

 

 

 

 

 

 

 

나란히 꽤나 오랫동안 1,2위를 지키고 있는 두 책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르포도 아니고 달착지근한 로맨스 소설도 아니고 독자의 허를 찌르는 의외의 결말을 품고 있는 추리소설도 아니다. 인문학. 거의 사장되다시피 한 그 분야에서 막말로 의외의 대박을 터뜨려 준 두 책이 읽는 내내 묘하게 서로 겹쳤다. 같은 논지를 펴는 대목도 있었고 깔끔하고 평이한 문체도 많이 닮아 있었다. 아무래도 영어 원작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시차는 좀 있었지만 만나는 부분들을 정리해 보았다.

*두 책 모두 사례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 사례가 거의 서사의 매혹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하준은 아동 노동을 얘기하며 아들을 데리고 들어오고 마이클 센델은 표류하는 구명 보트 안에서 한 사람의 인육을 먹어 나머지 세 사람이 살 수 있는 비극적인 공리주의의 실현 현장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이 밖에도 다양한 현안, 시사적인 문제부터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사례들이 졸릴 만하면 툭툭 끼어들어 눈꺼풀을 치켜올리게 한다. 인문 사회 과학서들이 대중화할 수 있는 지점을 정확히 건드린 것 같다.

*또한 두 저자는 약속이나 한 듯  분배정의에 대한 얘기를 언급한다. 평등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기회적 평등만을 강조하는 형식에 치우칠 때 실질적으로 불평등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평등에 관한 얘기는 대부분의 사람을 이입시킨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더 높은 곳, 더나은 곳의 이미지가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자신이 루저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등에 관한 언급은 주는 입장이 아니라 받는 입장에서 괜시리 극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식 자본주의, 패권주의에 대한 경종
장하준은 결국 미국 선도의 자유시장경제 모델이 나쁜 자본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개발도상국들에게 스스로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나쁜 게임의 룰을 강요하는 패악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마이클 센델은 미군이 용병화되고 군 기능을 민간기능에 맡기면서 전쟁을 점점 우습게 생각하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공공 서비스, 기능까지 시장에서 거래하는 재화처럼 만들어 버리며 방기하는 책임에 대하여 센델은 우려하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과도 만난다.

*인간의 연대, 공적인 책임에 대한 갈망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와 <정의란 무엇인가>가 이토록 우리를 자극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긍정과 연대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얘기를 찾아 읽으며 몸을 떨지만 결국 괜찮아, 괜찮아,라고 다독거리는 어머니의 손길 아래 잠들기를 원하는 모순적인 존재이다. 도덕을 얘기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인간이 그래도 될 만하다,는 확신에서 나온 굉장히 자신감 있는 행동이다. 고로 두 책이 가지는 지나치게 이상화된 결말, 그 자체는 책의 완결성을 방해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강한 정부 그 자체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거나 독재로 치닫게 될 경우를 간과하지는 않았는지,<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그저 인간의 미덕과 연대감에 무작정 기대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는 문제를 지적하는 인문 사회서에서 더 나아가 구체적인 대안과 지향해야 할 좋은 자본주의의 모델을 탐색해 보는 책들이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오를 때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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穀雨(곡우) 2011-01-12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클 샌든의 <정의>를 요즘 시간내어 시청하고 있는데, 명쾌한 강의가 인상적이더군요. 책에 없던 비유, 어렵고 난해하던 도덕론에 대해 자유분방하고 확고한 언어로 풀어내고 있더군요. 블랑카님 말씀처럼 인간 존재의 긍정과 연대를 강조하는 이유, 적확하고 날카롭습니다. 다시 읽어 봐야 겠습니다.

아, 늦은 새해 인사와 감사의 마음, 함께 전합니다.^^

blanca 2011-01-12 22:58   좋아요 0 | URL
곡우님, 저도 챙겨 보려고는 하는데 항상 졸면서--;; 흐지부지 되버리네요. 그런 강의를 듣고 학생과 교수가 쌍방향으로 생각을 주고 받는 하버드의 풍경이 참 부럽더라구요. 감사합니다. 곡우님은 벌써 좋은 출발하셨죠!

마녀고양이 2011-01-12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러피안 드림을 읽어봐야하는데 말이죠.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께서 추천하시던 책이죠? 저는 정의란 무엇인가도 읽지 않았기에... 아하하.

공적인 책임... 반드시 있다 봅니다. 딱 좋은 단어입니다.

blanca 2011-01-12 22:59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제가 읽게 된 계기가 노무현 대통령 책상 위에 마지막까지 펼쳐져 있었다는 그리고 그 책을 너무 좋아했다는 기사를 읽고 나서였어요. 사실 이 분야는 아무래도 많이 읽지 못했는데도 참 아름다운 책이더라구요. 심란한 마음으로 슬퍼하며 아이는 옆에서 쌀놀이를 하고 저는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cyrus 2011-01-12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두 책을 같이 보는 것도 참 좋은거 같아요. 이 두 책은 꼭 구입해야겠네요.

blanca 2011-01-12 23:01   좋아요 0 | URL
cyrus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지만, 이 두 책은 먹을 것이 많더라구요^^;; 아무래도 너도 나도 읽고 얘기하니 나도 덩달아 가봐야겠다 해서 접하게 된 책이지만 그렇게 덩달아 간 발걸음이 아깝지 않았답니다. 시간 나시면 꼭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2011-01-13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3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