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때 한창 화제가 된 책이라 해서 읽어본다, 읽어본다 하다 어제에서야 읽게 되었다.

 

스물일곱 살의 가정관리사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평범한 여인이 일간지의 기자를 살해하고 자수하는 과정을 긴박하고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황색 저널리즘에 의하여 어제까지도 평범한 군중의 일원이었던 개인의 일상이 어떻게 폭력적으로 파괴되고, 또 그 삶의 붕괴가 비극적인 살인으로 막을 내리는 지에 대하여 지극히 풍자적이고 냉소적으로 그려져 있다.  

분량이 워낙 적고 다이나믹한 전개라 책장은 수월하게 넘어가는데 아무래도 작가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응축되는 형상이라 조금 작위적이고 개연성이 부족한 대목들에 아쉬움이 남았다. 카타리나가 하룻밤에 강도 전과자와 사랑에 빠져 그를 피신시키고 또 그녀의 사생활을 난도질해서 쓴 기사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설정이 그 지점이다.  

여하튼 작가 하인리히 뵐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사회적 대의에 대한 치열한 응시와 견지, 삶 그 자체를 하나의 혁명적 텍스트로 전환시키려 분투한 점이 참으로 감명깊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하여 그 어떤 진실과 진리를 뚫고 나가려 끊임없이 힘겹게 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또다른 독자와의 만남이다. 독자와 눈을 맞추며 손을 맞잡게 되는 지점은 바로 그곳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왕왕 한 작가의 작품과 그의 삶을 뒤섞어서 얘기하곤 한다. 작품은 좋았지만 그 작가의 삶이 하나의 비겁한 타협의 망에 걸려 있었을 때 우리는 그 작가의 손을 슬쩍 놓아 버리고 싶어진다.  나의 경우에는 이광수가 그러했다. 

모님의 서재에 갔다 발견한 이 책에 솔깃했다. 북구 유럽에는 막연한 호감이 있다. 그 스웨덴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얘기라니 더욱 기대가 크다. 스치듯 지나가는 이방인들과의 조우는 깊이가 없어도 그 자체로 매혹적이다. 순간 잠깐 통한 것 같다,는 그 느낌이 이질적인 에로틱함을 지닌 것 같다. 비용도 비용이고 책을 지나치게 많이 사서 쌓아 놓는 것 같아서 집 근처 마을버스 타고 십오 분 정도 가면 있는 도서관에 가서 빌리기로 하고 분홍공주를 대동했다. 

분홍공주는 마을 버스 타면 그저 좋단다. 정류장 하차 전 울리는 부저 소리 성대 모사도 일품이다. 정말 똑같이 내며 즐거워한다. 그. 런. 데. 

도서관은 휴관이었다. 아기가 납득할 리가 있나. 딸기우유와 곰돌이 빵으로 입막음하고 나도 좀 주전부리 챙기고 다시 마을 버스를 타고 돌아오니 책을 사는 게 이득이었다,는 비참한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돌아오는 길목의 놀이터에서 모래까지 잔뜩 뒤집어 쓰고 돌아와서 오늘 한 뻘짓에 대하여 숙고해 보니 더없이 망연하다. 이 더운 날, 화가 나서 또 책을 질러 버리기로 한다. 한 권은 섭섭하니, 이 책도 덧붙여. 영화 일포스티노의 원작이라지. 잔잔하면서도 단조로운 얘기들, 특히 얇은 책^^;;들이 끌리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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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7-13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 결국 책 질렀다는 이야기?
분홍 공주 너무 이쁘네요, 그 나이 아이가 손이 많이 가서 힘들긴 하지만,, 정말 이쁘잖아요. 아.. 부러움.

참,, 블랑카님의 서재는 책을 지르게 하는 묘한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에 책두 힐끔힐끔~

blanca 2010-07-13 16:49   좋아요 0 | URL
빌려서 책값좀 굳혀 보려 했더니만 ㅋㅋㅋ 결과적으로 돈 더 썼어요. 욕망 그 자체인 아이를 달고 다니면 모든 게 계획과는 조금씩 어긋나는 것 같아요^^;; 책을 너무 많이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아요--;;

stella.K 2010-07-13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스톡홀름 책 예뻐요.^^

blanca 2010-07-13 16:50   좋아요 0 | URL
이쁘죠! 스텔라님! 열심히 읽어 볼게요. 요새는 자꾸 궁디에 바람드는 얘기들만 솔깃합니다. ㅋㅋㅋ

2010-07-13 1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3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07-14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만 읽었네요.^^
도서관은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면 이용하기 쉽지 않지요.
더운 날 고생하고 책값보다 더 돈 쓰고... 좋게 지름신을 불렀으면 좋았을 걸!ㅋㅋ

blanca 2010-07-14 20:53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순오기님 리뷰 잘 읽고 더불어 질렀지요^^ 도서관은 딱 걸어서 갈 만큼의 거리에 있는 게 남는 장사인 것 같아요. 제일 당혹스러울 때는 빌려서 봤는데 너무 좋을 경우...차라리 처음부터 사서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들이 있더라구요. 오늘 무지 덥네요. 순오기님도 더위 너무 타지 않도록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순오기 2010-07-15 00:45   좋아요 0 | URL
아~ 나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사는 책 많아요.
덥석 샀다가 기대에 못 미치면 속상하니까~ 일단 검증을 해봐야지요.^^
음~ 나는 더위에도 추위에도 강한 전천후 체질이라오!ㅋㅋㅋ

비로그인 2010-07-16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오는 길목의 놀이터에서 모래까지 잔뜩 뒤집어 쓰고" 전 이 부분이 좋게 다가오네요.

그리고 나중에 따님이 이런 기억들을 잊지 않았으면, Blanca님의 기억에도 좋았다면 먼 훗날

이런 기억들과 함께 웃음짓는 그런 시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blanca 2010-07-16 21:32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아이의 노는 모습을 보며 가끔 저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 보려고 해요. 그럴 땐 뭉클뭉클한 순간도 많아요. 아이가 이쁜 어른 핸드백을 매고 이쁜척 오버하며 걸어다니느 모습을 보면 제 어릴 때 기억이 순간 솟아 오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0-07-17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제가 읽다가 울컥하고 친구에게도 선물했던 책이에요. 그리고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와- 후회하지 않으실거에요. 밑줄 그을 문장이 아주 계속 나와요, 계속. 이를테면 이런 부분이죠.

"그가 말하기를.... 그가 말하기를 제 미소가 얼굴에 나비처럼 번진대요."
"그러고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났어요."
"그랬더니?"
"그랬더니 제 웃음에 대해 뭐라고 말했어요. 제 웃음이 한 떨기 장미고 영글어 터진 창이고 부서지는 물이래요. 홀연 일어나는 은빛 파도라고도 그랬고요."(p.62)




blanca 2010-07-18 21:54   좋아요 0 | URL
어어~ 읽고도 기억 안나는 이런 소중한 대목이라니. 당장 돌아가서 다시 읽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