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결말부를 조금 남겨두고는 옮겨탄 히로세 다카시의 <제1권력>을 다 읽고 난 후 인터넷에 접속하자 천안함 사고는 북한의 소행이 거의 확실하다는 미고위관계자의 발언이 포탈 대문에떴다. 미국을 지배하는 , 아니 전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세력은 군수산업의 활황을 고대하며 사람들이 전쟁신드롬에 사로잡혀 있도록 세뇌한다. 그들은 공장의 가동이 멈추기를 바라지 않는다. 전시체제는 일반인들이 느끼는 생존과 안위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걱정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더없이 매혹적인 투기의 기회다.   

 

론 처노의 <부의 제국 록펠러>에서 그의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자본가적 면모보다는 고결하기까지 했던 자선제국에 경도되었던 시간들이 이 <제1권력> 앞에서는 고도의 치밀한 기만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아함을 가지게 한다. 물론 전자는 존 D. 록펠러 개인의 삶을 근접거리에서 촘촘히 복원해 낸 것이고 후자는 록펠러 개인 그 자체보다는 그 가문 전체가 모건 가문과 연합하여 어떻게 미국을 위시하여 세계 전체를 거대한 투기의 장으로 변질시켰는지에 대한 비판적 통찰의 프리즘을 통과한 해석이다. 또한 같은 미국인이 자국의 거부에 대한 기본적인 경외의 심정을 바탕으로 중립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노력과, 바깥에서 일본의 반전운동가가 호모 이코노미쿠스로서의 전제를 바탕으로 그 탐욕스러움을 조망한 것은 분명 본질적인 차이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 차이점을 인정하고 들어간다면 한 가문에 대한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시선과 자선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느껴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고도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제1권력>은 모건가록펠러가, 이 양대 자본가가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각료직에 자신의 충견들을 앉혀 암암리에 백악관을 두 집안의 하수인들로 채우고 수송, 자원, 과학, 기술, 식량, 정치, 군사, 사법, 보도, 오락 등 전분야들을 어떻게 좌지우지한 지에 대한 밑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20세기의 다양한 중대사건을 추려낸 후, 이 사건에서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인물의 가계도를 작성하여 모건가와 록펠러가와의 은밀한 연결망을 들어냄으로써 역사의 진상을 모건-록펠러의 언어로 다시 써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 결과는 소름끼치도록 경악스럽다. 1.2차 세계대전, 나치스, 매카시즘, 노벨상, 올림픽, 케네디 암살, 워터게이트, 한국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아카데미상 등 굵직한 사건들과 조직중 어느 하나 이 음험한 자본가들의 계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평화로운 중립국을 표방하며 유유자적하는 스위스의 바젤클럽, IBRD,IMF, UN  등도 기실은 모건과 록펠러들의 수족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수많은 대의들, 진실한 가치들은 하나의 기만과 연극으로 치환되고 오직 물적 지배력의 유지와 확장에 사로잡힌 탐욕의 전형들은 규벌을 형성하여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각계각층에 자신의 의붓자식들을 심어 놓는다.   

또한 독일,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미국 자본과의 결탁은 추잡스럽기까지 하다. 기실은 히틀러를 용인하고 그의 자금력을 키워주었다는 얘기다. 평화주의자 근절을 위하여 파시스트 전술을 택한다게 논리로 작용했다. 돈 앞에서 가치사전은 분서되어야 할 모양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한국전쟁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 한국과 미국이 군사협정을 이미 맺은 터였고, 51년~53년 네바다주에서 무려 30회나 핵실험을 하다 휴전 한 달전 갑자기 중단했다는 얘기는 록펠러가와 모건가가 개전 날짜와 종전 날짜를 정확하게 인지했었다는 얘기와 맞물려 전쟁 촉발의 중추를 짐작케 한다. 초등학교 시절 일요일 새벽의 그 아늑하고 평화로운 시점 갑자기 북한이 남침하였다는 그 도발의 서사는 하나의 우스꽝스런 내러티브로 전락한다. 한참후에야 그것이 아닐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막상 그 전말을 일본인 저자의 입으로 듣게 되다니 아이러니하다. 다카시는 이 전쟁이 원.수폭 예산을 끌어내기 위해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또한 저들이 우려한 휴전으로 인한 군수경기침체가 현실화되지 않아 만족해한 모습에 대한 묘사는 우리가 쓰는 역사라는 것이 과연 가능은 한것인가에 대한 무력한 절망감마저 자아낸다. 아니, 과연 우리라는 주어를 동원하는 것이 하나의 기만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휴전 이후 베트남 전쟁을 개시한 것에 대한 저들의 주도면밀함도 결국은 전장이 아닌 하나의 투기장을 예비하고 무고한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동원한 잔인함인 것이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아홉살 오스카는 수많은 각본과 각종 낭설과 추측이 난무한 9.11테러로 아버지를 잃는다. 오스카는 일본에서 미국의 원폭투하로 딸아이를 잃은 엄마의 인터뷰 내용을 반아이들 앞에서 틀어준다. 정작 버섯구름을 목격하지는 못한 그녀는 상처에서 구더기가 끓는 채 죽어가는 딸아이의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죽고 싶지 않다, 고 절규하던 모습. 인간에게는 그것이 전부인 것이다. 살고 싶고 숨쉬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하고 싶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이런 기본적인 일들이 거대한 탐욕과 그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음모 앞에서는 자질구레하고 짓밟아도 되는 것으로 전락한다. <제1권력>을 읽으면서 오스카가 떠올랐고, 러브 어페어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오버랩됐다. 수많은 연인들의 기다림과 만남의 낭만의 상징인 그곳이 이 음험한 세력들중 하나로 백인극우세력인 K.K.K를 지원한 듀폰의 부사장이었던 이의 작품이라는 대목은 그 낭만마저 퇴색시켜 버리는 것이다.  

사랑을 얘기하고 진실의 아름다움에 기대는 모습이 유치하고 설익고 심지어 무지한 것으로 전락하는 시대를 경멸해도 될까. 그래도 결국 역사에는 자정능력이 있고 생명이 숨결에는 향내가 스며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려도 괜찮을까. 무언가를 안다는 것이 더이상 슬픈 일이 아닌 시간들을 살고 싶어진다. 

P.S. <제1권력>에서는 할리우드의 진진한 뒷얘기와 스타들의 정치권과의 결탁에 관한 얘기도 맛볼 수 있다. 젊은 남자에게는 매력을 못느낀다는 케서린 제타 존스의 남편 마이클 더글러스의 용기있는 행보가 인상적이다. 그의 엄청난 재력과 능력에 대한 열변을 들은 기억이 나는데 GE의 사원이 원자로 사고 위험성 경고한 행동에 제인폰다와 함께 용기있는 지지를 보여주었단다. 그의 아버지들 커크 더글라스와 헨리 포드가 할리우드 빨갱이 사냥시절 역시 용기있고 결단력 있는 태도를 보여줬던 것과 연결된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거의 유일한 진실의 편에 선 사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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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03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1권력, 사고 싶었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도저히 소화를 못 할거 같아서 포기했는데, 블랑카 님이 리뷰를 올려주셨네요... 참, 저번에 제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같은 책은 평생 안 읽을거 같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블랑카 님의 (의식하지 못한) 엄청난 영향력에 의해서, 주문을 했답니다. 아하하.. 읽어야 하는데. 끄응. 책이 하두 밀려서~

blanca 2010-05-04 09:03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는 요새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답니다. 다 읽고 주문하기. 이거 정말 힘들더라구요. 읽고 싶은 책은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가 생각해 보고 주문하려고 애 쓰고 있구요. 엄청나게~는 끝부분을 못읽었어요. 제1권력은 강추입니다. 마녀고양이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지금 책 주문하고 빠뜨린 책 생각나서 추가로 하려했더니 출고되어 가슴아픕니다.

순오기 2010-05-04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을 읽고 이런 글을 쓰는 님이 존경스러워요.
어려운 책을 못 읽는 나는 그냥 올려주는 리뷰로 만족할래요.^^

blanca 2010-05-04 09:06   좋아요 0 | URL
만족하실 만한 리뷰를 써야 할텐데요^^;; 봄감기가 아주 매워요--;; 순오기님도 조심하세요!

마노아 2010-05-0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고서 다음 책 주문하기! 늘 새겨보지만 절대로 안 되고 있는 부분이에요. 이 글을 읽고 나니 이 책도 꼭 읽고 싶어졌어요. 아, 그치만 주문은 다음으로 미룰래요..ㅜ.ㅜ

blanca 2010-05-05 17:42   좋아요 0 | URL
거짓말한 셈이 되어버렸어요^^;;지금 서점 구경갔다 또 왕창 주문했어요 ㅋㅋㅋ 그러니 마노아님께 다 읽고서 주문하기 운운할 수 없게 되었답니다.^^;;

pw0607 2010-05-20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제1권력>은 히로세 다카시의 다음책을 기다리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blanca 2010-05-20 13:43   좋아요 0 | URL
이 출판사에서 계속 출간 계획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 책도 사실 꽤 된 책이라는 데 놀랐답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lkj0850 2010-06-24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전 딴지 리뷰보고 제가사는 동네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서 황급히 읽어 보았습니다.. 한 2년 전인가 인터넷에 떠돌던 영상과 흡사하던데... 그 영화제목을 잊어버리고 말았네여.. 영화내용과 책의 내용이 넘 흡사해서..이번주에 겨우 다 읽긴했는데
시일을 두고 다시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드네여.. 과연 그 많은 전쟁은 뭘 위해서 필요했던것인지... 많은 의문을 갖게하는 책이었습니다..허리우드의 빨갱이 사냥도 그렇고,핵개발도 그렇고...

blanca 2010-06-24 15:44   좋아요 0 | URL
lkj0850님 반갑습니다.^^ 아..그런 영화가 있었어요? 딴지 리뷰도 한 번 찾아 보아야겠습니다. 예전 글을 읽어 주시니 괜시리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