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책 속의 문장들이 바깥으로 튀어나와 그 속의 장면들을 쏟아내어 도저히 책장을 덮을 수 없었던 경험은 단 한 번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다. 

열 다섯 살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상상과 꿈과 기대와 소망이 현실 전체를 장악할 수도 있는 그 거대한 가능성과 몽환으로 엮인 시간들을 복기할 수는 있지만 완전하게 복원할 수는 없다.  

그 때는 열 다섯 살이었고 겨울 밤이었고 모든 시험이 끝난 그런 때였다. 다사로운 훈김 속 나는 요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이광수의 <단종애사> 첫 장을 아마 저녁 아홉 시쯤 펴들었을 게다. 새벽 네 시 춘원의 건조한 문장들이 아무린 마무리는 가혹했다. 그저 단종의 죽음에 관한 정경 묘사. 그리고 날짜. 그 어떤 감정의 덧붙임이나 애도의 감침질 없이 춘원은 그 처절한 역사적 사실 가운데 나를 내려놓고 쓰윽 가버렸다. 나는 잠들 수 없었다. 열일곱 살 삼촌의 손에 죽임당한 세종의 손자이자 문종의 아들. 그리고 그를 위해 죽어간 그 수많은 사람들. 

 

선왕의 유지를 받들고 성리학의 명분을 수호하고자 했던 신하들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용인해 낼 수 없었다. 당시 명분과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 목숨까지 의연히 내던질 수 있었던 그들의 용기에 경도되었다. 십 대는 그런 나이였다. 현실의 이해 관계와 실리에 무게중심이 옮아가면서 수양대군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일종의 순응이자 세상에 대한 비애어린 묵인이었다. 나의 이십 대, 사육신의 명분은 투실투실한 속살을 못보고 바스라져 가는 껍질만을 주워담으려는 어리석은 자기기만으로 변질되어 인식되었다.  

그러나 삼십 대, 사육신과 단종에 대한 이해는 다시 열 다섯 살 그 시점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가치와 명분의 수호가 현실 이해에 영합하여 도리를 저버리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결단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데에 대한 깨달음 뿐만 아니라,정치라는 것이 자신의 권력욕이나 현실의 이해관계와 부합하는 지점에 과도한 방점을 내리찍게 될 때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 지에 대한 체감때문이었다. 

 

역사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현실적 이해가 아니라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한 삶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덕일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중

김종서는 <단종애사>에서 수양대군의 심복이 휘두르는 철퇴에 맞아 비명횡사하는 것으로 짤막하게 언급된다. 이 때 그의 나이 70세로 태종, 세종, 문종, 단종 네 임금을 섬기여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며 북방을 개척한 대호이자, 아내의 장사도 미처 다 치르지 못하고 몽골군의 침략에 맞서 평안도로 떠났던 그가 선왕의 유지를 받들고자 했던 것, 헌정질서에 반하는 일련의 일들을 용인해 낼 수 없었다는 것만으로 수양대군의 가동이 내리친 철퇴로 머리를 맞아야 했던 것이다. 피투성이가 되어 아비를 지키려 했던 아들 김승규도 죽임을 당한다.  남은 가족들중 남자들은 대부분 죽고 여자들은 관로로 전락하거나 심지어 수양대군의 쿠데타의 공신들의 처첩으로 전락하기까지 하며 무려 293년이 지난 뒤에서야 공식적으로 신원된다.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파람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무신의 호연한 기개가 절로 일성을 내지를 것만 같은 이 시 한 수는 김종서의 현신 같다. 하지만 그는 원래 문신 출신이다. 또한 의외로 단신으로 체수도 왜소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가 세종대왕의 진취적 기상과 절대적 신뢰를 등에 업고 노구를 이끌고 북방에 부임하여 4군 6진을 개쳑하는 과정은 하나의 드라마 같다. 당시로서도 함길도 같은 북방 지역은 관리들이 부임하기를 꺼리는 오지였다. 백성들마저 이주를 꺼리는 지역을 개척하여 두만강 이북 공험진까지 국경을 확장하여 국경선을 확정하고 백성들의 삶의 근거지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을 듣는 것은 더없이 가슴벅찬 일이었다. 추상적인 역사적 사실들이 구체화되어 스며드는 일은 나의 존재의 핵에 다가가는 일이라 감미롭고도 가슴뭉클하다.  

그러나 이런 김종서의 욱일승천하던 기세도 결국은 그를 알아주고 백성과 국가를 귀히 알았던 명군주 세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종의 죽음과 문종의 단명에 뒤따른 어린 단종의 등극, 수양대군의 왕위찬탈로 이어지는 일련의 비극은 그와 더불어 그의 후손들까지 처절하고 곤구한 삶으로 내몰게 된다.  

세조가 피의 숙청을 단행하며 등극하며 불거진 문제는 그가 백성을 위한 치세를 펴는 것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하여 실리 그 자체의 기반도 빈약하게 만든다. 즉 그의 비정상적인 왕위 찬탈에 직간접으로 도움을 준 수많은 공신들을 책봉하고 그들에게 권력과 물질적 포상을 해야 했던 것은 끝끝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왕위를 계승한 후손들도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치는 데 두고두고 장애물로 작용했던 것이다. 세조가 국가 권력을 공신집단의 사적 이익실현의 도구로 전락시켰다는 저자의 지적은 국가 권력이 제대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뼈아픈 계도의 지침이 될 것이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둘째이며, 군왕은 그보다 가벼운 것"이라 했던 김종서의 웅변을 머금고 도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삶 자체를 바친 잊혀져간  그들을 마음으로 다시 신원하며 나의 삶에도 지킬 만한 마땅한 가치 하나를 얹어 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0-04-06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제목이 맘에 듭니다. 잃어버린 가치를 위하여.
처절할만큼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주인공, 신념을 위하여 초개같이 목숨을 버리는 주인공.. 이도 저도 아니고 방황하며 납작 엎드려서 사는 나.. 진화학적으로 본다면, 제가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요? ㅎㅎ

blanca 2010-04-06 18:56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도 엎드려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