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한 가족이 보였다.
엄마, 아빠, 일고 여덟살 정도 되보이는 언니, 동생.
엄마가 아빠를, 혹은 딸들을 따라 움직이는 시선을 따라 가다 보니 그 가족 속에
나의 엄마, 아빠, 그리고 연년생 여동생.
정말 너무 추워서 온몸을 달달 떨며 택시를 기다리던 어느 날이 날아와 꽂혔다.
그 가족 만큼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루할 틈이 없었던 시간들.
너무 생생해서 때로는 너무 희미해서 과연 그 기억 속의 내가 지금의 나인지도 확신할 수 없어
도리질을 하게 되는 시간들.
그리고 어쩌면 또 나의 미래가 될 지도 모를 모습. 나. 남편. 아이 둘.
과거와 미래가 차창 밖으로 기억되고 상상되는 시간의 틈새를 비집고 이제는 하늘나라로 가고 없는
이모의 모습. 이모부. 사촌여동생 둘의 고맘때 모습들도 떠올랐다.
어느 엄마가 그러지 않겠느냐마는 이모는 유독 사촌동생들에게 희생적이었다.
그 자신 비쩍 마른 몸으로 딸 둘을 졸졸 따라다니며 밥을 먹였고 자신의 몸에 걸칠 옷 한 벌 사는 것에 벌벌 떨며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것을 주기 위해 노력했던 그 모습은 갑작스러운 암선고와 함께 한창 직장생활에 치여
얼굴이 누렇게 떠가는 동생들을 남겨두고 허망하게 가버렸다. 아기자기하고 작은 재미와 잔정이 가득했던
그 사랑스러운 가족은 그렇게 엄마가 남겨두고 간 빈자리의 깊이와 넢이 속에서 아직도 힘들어하고 있다.
단발머리 가발을 쓰고 나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이모.
나의 과거와 미래와 그리고 또 다른 가족을, 차창 밖으로 우연하게 흘려보낼 수도 있었을 그 한 가족에게서
발견하고 나의 마음에서는 뚝뚝 무언가 아픈 물이 내리고 있었다. 너무 시려서 몸이 떨렸다.
끊임없이 다가와 현재를 허물고 저멀리 달려가 버리는 잔인한 시간의 그 불가항력적 힘 속에서
그 모든 절실한 감정들. 생생한 사건들. 심지어는 절절하게 사랑한 사람들까지도 허무하게 묻어버려야 하는
인생이란. 참 아픈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딸아이와 씨름하는 이 시간도 화석처럼 희미하게 무언가를 새기고는
굳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윽고 나는 주름살이 자글자글 패인 얼굴로 뒤를 또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은 과거얘기를
읊조리게 되겠지. 그리고 몸의 기관이 한 군데씩 탈이 나고 불편을 느끼고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힘든 고역이자
투쟁처럼 변하면 차라리 죽기를 바라면서 죽음과 슬며시 화해하려는 그 본능적인 비굴함에 굴복하게 될것이다.
그래야 죽을 수 있을 테니까.
그 때가 되면 생은, 삶은 그래도 의미있고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아니 유한한 삶 속에서 그래도 가장 가치있고 매달릴 만한 지향이라는게 무언지 깨닫고는 갈 수 있을까?
이런 모든 생각들이 과거의 추억들과 뒤범벅 되는 그런 시간들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나이들어간다는 것은 때로 참 쓸쓸하고 을씨년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