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라고는 하지만 거의 이덕일의 것이라 편중된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위의 네 권은 학계에서의 논란과는 별개로
역사 속 인물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현재화하는 과정에서 이룩한 성취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물 중심의
책들이어서 그런지 다 한 편의 장중한 소설들을 읽어 낸 듯한 여운을 남긴다. 드라마틱한 재미가 커서 역사 관련물이라면
고루하고 지루할 것이라는 예단을 사정없이 깨어준다. 특히나 '사도세자의 고백'에서 영조가 임종을 맞으며 정조에게
옥쇄를 물려주는 장면,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서 송시열이 효종의 관을 덧댄 것에 대한 회한으로 자신의 관도 덧댄 널빤지를 사용할 것을 유언하는 장면 등은 그 역사적 사실의 드라마틱함을 떠나 이덕일의 묘사 자체가 가지는 미학이 극치에 이른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야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에서 이미 최고의 찬사를 받은 전력이 있다. 비단 정약용 가문뿐만 아니라 조선후기의 개화 및 개혁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그 한계 상황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추천한다.  

이 책은 위의 이덕일 저서들과 맞물릴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이덕일을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한 '조선왕 독살사건'을 위시하여 그가 끊임없이 제기하여 온 정조 독살설에 배치되는 사료라고 주장하는 의견들이 일제히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결국 죽게 만든(사실 이 뒤주설도 논란이 많긴 하다) 노론 벽파계의 수장 심환지와의 밀담을 나눈 서찰이 발굴된 것은 그 자체만으로 노론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유리하지 않은 정황이라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하여 갑론을박이 많은 것은 사실 노론사관이 식민사관과 맞물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과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어 그런 것 같다. 나의 입장은 단지 밀담을 정답게 나누는 서찰이 나온 것으로 독살설 그 자체를 전복할 합당한 근거라고 판단하는 것은 비약이라는 생각이다.  

한자어가 난무하고 아무래도 시간적 한계 때문에 그랬는지 주석이 충분하지 않아 가독성이 많이 떨어지지만 조선후기 역사나 정조 자체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책이다. 헛소문 퍼뜨리는 신하들에게 뒤에서 욕설을 내뱉는  정조의 모습은 지금까지 각종 사극에서 형상화했던, 또 우리가 기대했던 정조의 모습과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오랜 가뭄끝에 비가 오자  너무 좋아하면 일을 그르칠까 억누르는 그의 모습과 답장 안 준다고 기다리는 모습 등은 더 친근하고 인간적으로 그를 느끼게 한다. 한자실력이 좀되는 분들은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서라고는 하지만 다시 인물 중심, 저자 중심의 편중된 독서였던 것과 계속 영정조 시대만 맴돌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또 아무래도 한자실력이 안따르다 보니 인용부분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가 어려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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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12-1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책읽는거 부러워요. 목적이 분명한 독서같이 보여요. 제가 읽어치우는 것에 비해서요 ^^;

blanca 2009-12-13 22:29   좋아요 0 | URL
ㅋㅋ페이퍼 작성하는데 댓글이 달리네요. 목적 전혀 없어요. 그냥 있는 척 하는 거지요 ㅋㅋㅋ 하이드님이 감히 저 같은 것을 부러워하다니. 하이드님은 그 자체로 알라딘의 아이콘 아니신가요? 그런데 오늘 계속 하이드님 서재만 안들어가져서 심히 절망하고 있답니다. 자꾸 에러가 나네요. 올린 동영상 때문에 그런 것인지.

하이드 2009-12-1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 들어가졌어요 -_-;; 동영상 때문이었나봐요. 이느무 ㅅㅂㅅ 당장 지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