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인>이 개봉했을 때 난 그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미성년자라 볼 수 없었다. 대신 영화의 스틸컷이 실린 일종의 스토리북을 샀다. 그 이미지들로 <연인>이란 영화를 막연히 재구성했다. 그건 뒤라스의 원작도 아니었다. 나에게 <연인>은 성인이 되어 그런 금지된 너머를 마음껏 탐사할 수 있는 권한의 이정표로 역할했다. 


정작 영화도 그 원작 소설도 제대로 접하게 된 것은 훗날 시간이 많이 흐른 후였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에로틱한 정서가 나는 뒤라스의 이야기의 핵심이라 여겼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뒤라스를 오독한 셈이었다. 뒤라스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뒤라스는 연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미처 하지 못한 그 숨겨진, 생략된, 함축된 그 무엇에 핵심이 있었고 거기엔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 무엇이 있었다. 나는 <연인>을 읽기 전에 그녀가 이미 30년 전에 쓴 <태평양을 막는 제방>을 먼저 읽었어야 했다. 뒤라스의 자전적인 기록에 가까운 이 이야기는 뒤라스가 평생에 걸쳐 추구한 그 정제되고 말하여지 않음으로 말하는 작법의 배경이 되어준다. 



















<태평양을 막는 제방>은 도발적이고 비관적인 그러나 숙명적인 이야기다. 주인공인 십대 소녀 쉬잔은 뒤라스의 분신이다. 프랑스령 식민지 캄보디아 남중국해에서 교사였던 어머니와 오빠 조제프와 살아가는 가난한 소녀는 어느 날 갑부 조 씨를 만난다. 그들은 아름다운 쉬잔에 끌리는 조 씨를 이용한다. 그를 통해 조제프가 갖고 싶어했던 번쩍거리는 축음기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얻어낸다. 그들은 조 씨의 초라한 외모와 유약한 심성을 비웃는다. 그러나 이런 가족의 위악이 이야기의 핵심은 아니다. 그건 그렇게 되어버린 그 가족의 가난과 절망의 형상화일 뿐이다. 식민지 토지국의 기만으로 끊임없이 바닷물로 범람하는 불하지에 굴하지 않고 태평양을 막는 제방을 쌓으며 내일에 대한 희망을 억척스럽게 버리지 못하는 어머니가 남매 곁에 살아 있는 한 남매는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하며 그녀의 조종을 받는다. 그들은 살기 위해 이 처절한 집착과 절망을 공유한다. 이들이 결국 어머니에 대한 "잔인하지만 숙명적인 저버림"을 달성하기까지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그것과 만난다. 그건 비단 부모, 자식 간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삶 그 자체에 대해서도 그렇다. 결국 우리는 모든 희망을 놓고 떠나가야 한다. 삶 그 자체에 대한 희망과 집착까지 놓고 버려두고 퇴장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왜 울어요?" 쉬잔이 물었다.

"다시 시작될 테니까. 전부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태평양을 막는 제방> 마르그리트 뒤라스


포기하지 않는 희망은 가장 궁극적인 절망이다. 그게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희망은 절망보다 고통스럽다. 그 역설 가운데에 삶이 있다. 그리고 쉬잔과 자크의 어머니, 뒤라스의 어머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는 그 상징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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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2-19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스터의 주인공이 입었던 원피스와 모자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blanca 2024-02-20 08:30   좋아요 0 | URL
너무 강렬하죠. 저는 그 어울리지 않던 높은 굽의 구두도 생각나요. 영화와 소설이 다 강렬했던 추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