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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즘
브라이언 딜런 지음, 김정아 옮김 / 카라칼 / 2023년 8월
평점 :
에세이에 대한 에세이를 표방(글쎄, 작가 자신의 표현은 아니다.)한 이 하얀 표지의 작은 책자는 에세이라는 장르에 대한 천착이라기보다는 온갖 편린이 부유하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울프와 몽테뉴, 바르트, 손택, 디디온을 읽고 직접 우리의 글을 쓴다는 게 가지는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단상에 더 가깝다고 느껴진다. 그 단상들은 언뜻 겉으로는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묘하게 친연성을 가지고 조합되어 하나의 매력적인 인생의 풍경화와 저자의 초상화를 그려낸다. 저자 브라이언 딜런은 시종일관 모든 것에 회의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 자신이 에세이라는 이 천대 받은 장르를 탐구함으로써 깊이와 넓이를 모두 가진 아름다운 에세이집을 만들어 냈다.
노력하고, 시도하고, 시험하는 글. 추정하거나 감행하는 만큼,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높은 글. 재난의 틈에서 무언가를 구해낼 가능성이 있는 글. 형식, 스타일, 표면적 짜임새의 차원에서 무언가를 이룩할 가능성이 있는, 그리고 이로써(누군가는 "이로써"에 이견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유의 차원에서도 무언가를 이룩할 가능성이 있는 글.
-pp.16
브라이언 딜런의 에세이에 대한 이야기는 인생에 대한 것처럼 들린다. 노력하고, 시도하고, 시험하고. 추정하거나 감행하는 만큼,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높은. 재난의 틈에서 무언가를 구해낼 가능성이 있는 것. 그건 우리 개개인 앞에 놓인 삶과 다름 아니다. 그러니 그가 그렇게나 집착하는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도 비단 에세이만이 아닌 인생 그 자체에 적용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허무와 싸우는 것. 무질서와 무의미한 세상에서 어떤 자세를, 어떤 노선을 뽑아내는 것." 내가 오늘 어떤 형식과 스타일에 달라붙어 그것이 마치 아주 중요한 일인 것처럼 부풀린다면 그건 생래적 허무와 싸우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결국 흩어지고 해체되고 무용해질 것임을 알고 있지만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장하는 데 스타일보다 더 좋은 대안이 있을까? 본질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본질로 여기고 그것에 열정을 쏟는다면 그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 가련해 보일까?
십대 시절 양친 부모를 모두 잃고도 침대에서 여전히 읽는 일을 하며 그 상실을 견뎌냈던 브라이언 딜런은 삶에서 일어나는 "그렇게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순간들"을 이 유서깊은 장르로 치환해서 받아들인다. 언어로 지은 이 에세이라는 집은 허무와 재난과 싸우려 하지만 결국 질 것이고 그 지는 순간 그 자체를 형상화며 붕괴한다. 그 불안정함과 위태로움이 에세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본질적인 약점이자 강점이다.
존 던의 인용은 저자의 메시지의 결정체일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은 무덤을 찾기 위함"이라는 17세기 시인의 설교에 대한 이야기다. <에세이즘>은 죽음, 허무, 붕괴에 대한 이야기면서 그 안에서 피어오르는 빛의 먼지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