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한 저질 체력에 근육량도 형편 없지만 어떻게든 운동을 생활화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이런 사설은 지난 주 일어났던 비극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한동안 운동을 쉬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많이 아주 많이 무리했다. 하필 1킬로 아령이 근처에 보이지 않고 평상시 무거워 잘 쓰지도 않는 3킬로 아령이 옆에 있길래 그걸 들고 상체 운동을 아주 열심히 했다. 생각보다 무겁게 느껴지지 않아 신 났다. 다음 날 지하철을 타며 모든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다 걸어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아, 나 체력이 이렇게 올라오나봐. 이거야. 그 다음날은 석촌 호수 주변을 다 돌았다. 2.4킬로 정도? 비극의 서막은 그날 오후에 올랐다. 이상스럽게 몸이 가라앉았다. 열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장렬히 전사했다.
그로부터 과장 좀 보태 일주일 후에 깨어났다. 임파선도 붓고 열도 나고 입안은 다 헐고 약 때문에 속은 쓰리고. 내 몸에 가했던 그 모든 하중이 통렬히 나에게 복수했다. 이런 거였다. 결국 이럴 것을. 그 기간 나는 아주 몸에 대해 나이듦에 대해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하루키가 왜 그렇게 몸타령을 했는지 젊은 시절부터 왜 그렇게 몸 관리 연설을 했는지 절절하게 이해가 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젊은 작가들이 쓴 이야기. 수상 작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코멘터리 북에서 성혜령 작가의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혜령 작가는 청소년 시기 암투병을 했다. 지금은 건강히 회복해서 직장도 다니고 있지만 그 경험에서 얻은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유한함에 대한 자각과 정기 검진이 주는 그것에 대한 각성, 나에게서 아주 긴 미래를 상정하지 않는 신중함, 그리고 지금 여기 이 현실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 그런 것들은 정말로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을 품고 나온 작가의 이야기 그 자체도.
김멜라의 <제 꿈 꾸세요>는 죽은 자가 산 자의 꿈으로 찾아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인데 몽환적이면서도 유쾌하고 또 어쩐지 서글프다. 과거의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 속으로 찾아갈 수 있다면 나도 가고 싶은 날이 있다. 그건 아마도 중학교 시절 시험이 끝나던 날이 될 것이다. 나도 주인공처럼 우리가 시험 끝나던 날 사먹던 시장통의 떡볶이를 먹으러 가고 싶다. 주인공의 엄마가 좋아하던 커피포리에 빨대를 잘 조준해 달라 부탁한 마무리에 괜히 콧날이 시큰해졌다. 불가역성을 가능성으로 변환할 수 있는 건 소설 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겠지.
성혜령의 <버섯 농장>은 도발적인 작품이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와 그 친구의 기묘한 복수 여정에 동행하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지대에서 긴박한 클라이맥스를 형성한다. 언제나 그렇듯 사적 복수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 제기와 지금 청년 세대들이 당면한 기성 세대와의 갈등의 지점에 대한 복합적 이해, 젊은 여성이 가진 자본으로 다시 그들이 계층화되고 그것이 가로막는 서로의 소통에 대한 예리한 통찰은 서늘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남자를 과연 죽였을까?
현호정의 <연필 샌드위치>를 읽으며 내가 왜 앓는 동안 그렇게 음식을 넘길 수 없었는지 그럼에도 단 음료에 집착했는지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나의 개별적 경험이 아니었다. 먹는다는 일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먹여야 한다. 내가 먹는 일은 때로 내가 억지로 연장하는 생으로 인해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이에게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먹기 싫어도 먹어야 이어질 수 있는 삶이 가진 은근한 폭력성. 그것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단순한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었다. 무심코 넘겼던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를 준 이야기였다.
일곱 편의 작품이 고르게 잘 읽혔고 현실이 환상, 꿈, 과거와 교차하고 섞이는 서사가 많았다. 우리가 규정하고 확정하는 현실의 근간을 흔들고 진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탐색, 그럼에도 그 탐색을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읽히고자 하는 의지가 보여 어렵지 않았다.
나는 더이상 젊다고 할 수는 없는 나이지만 젊은 작가들이 하는 이야기에 여전히 공명할 수 있다는 건 안도감을 주는 동시에 어떤 도전 의식을 일깨운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감상하고 감당하는 수준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방향 전환을 모색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들은 여전히 나를 깨어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