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메일로 내가 원하지도 않은 미국 신용 카드 갱신 소식을 받았다. 역시 어떤 확인 절차도 없이 미국의 옛주소지로 이미 발송했다는 소식.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미국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타국에 있으니 자기 확인 절차도 번거롭고 잘 되지도 않았다. 해지 부서 연결만 거의 몇 번을 실패하고 가까스로 연결되어 내 이름을 묻는 직원들 목소리에는 인사부터 피곤이 가득했다. 거기다 내 이름을 듣는 순간 거의 모두가 잘 안 들린다, 다른 번호로 걸으라며 바로 끊어버리는 것이다. 외국에서 걸려온 어려운 발음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퇴근 시간 가까워서 그것도 안 좋은 발음, 서툰 영어로 카드 해지를 요구하니 그들 입장에서 반가운 전화일 리 없다. 그래도...난 요새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이고 그런 그들의 대처에 충분히 상처 받는다. 


밤 늦게까지 깨어 있다 다시 시도하니 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온다. 내가 너무 여러 번 전화해서 이상 움직임이 느껴져 일처리를 해줄 수 없단다....24시간 지나 시도하란다. 이건 또 무슨. 뭐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마침 <콜센터의 말>을 읽고 있던 터라 그냥 조용히 따르기로 했다. 그들도 매뉴얼에 따른 것일 테니. 그걸 두고 내가 뭐라 한다고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미국의 서비스는 대체로 느리고 차갑다. 여기엔 장단이 있다. 고객 입장이 되면 괴롭고 힘들지만, 노동자 입장이 되면 누리는 지위가 있고 이것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 한 마디로 단순히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입장이라 해서 직원을 상대로 고객이 쉽게 갑질을 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은 왕이다,는 어쩌면 폭력적인 슬로건일 수 있다. 이 표어는 우리를 고객의 위치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지만 많은 경우 누구나 그런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노동자의 입장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일본 여행사의 콜센터에서 일한 한국인 저자의 경험담이다. 일본 콜센터라지만 결국 동양적인 정서를 공유하는 만큼 우리나라 콜센터에서 일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우리나라 콜센터 직원들은 과도하게 친절하다. 아마 미국의 콜센터처럼 응대했으면 고객들의 민원이 빗발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과연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도한 요구, 때로는 감정의 배설구로 콜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은 무방비다. 콜센터의 직원도 감정과 인격을 가진 노동자다. 그러나 현실은 조직의 부속품으로 고객의 버퍼존으로 치부되며 끊임없이 붕괴된다. 


이런 이유들로, 무례함을 견디는 일은 상담원의 숙명이다. 다행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경험이 쌓이면 어떤 말을 들어도 침착히 업무를 완수할 내공이 길러진다. 상처에 무디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괜찮다고 착각하는 순간에도 몸과 마음은 착실히 병든다. 작은 물방울이 축적되면 거대한 바위도 뚫듯, 매일 시퍼렇게 날 선 말을 들으면서 멀쩡하기는 힘들다.

-<콜센터의 말> 이예은


우리는 익명의 이들과 하루에도 여러 번 만난다. 무심코 그들에게 하는 행동들, 말들이 작은 물방울들이 되어 서로에게 떨어진다. 이건 사소한 것 같지만 그건 피부를 뚫고 마음을 뚫고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상처는 아물지만 다른 힘든 일이 겹치면 그 상처는 다시 열린다. 그러면 멀쩡하기는 힘들다. 서로가 감정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의식한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다시 돌아와서 그럼에도 여러 겹의 층위가 있는 미국의 콜센터를 상대하는 일은 부담스럽고 괴로운 일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09-29 1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미쿡 콜센타 직원들 대부분 인도 출신들인데,,,

블랑카님 클 날 뻔했습니다
그쪽 서비스가 울 나라 같이 빠르거나 소비자를 위한게 없거든요

요즘 콜센타 음성은 AI가 ^^

blanca 2022-09-29 15:38   좋아요 1 | URL
진짜 불친절하더라고요. 대부분 인도 출신인지 몰랐어요. 우리나라 서비스가 세계 최고죠. 그런데 그러기 위해 또 서비스노동자들의 감정 노동이 당연시되니 이것 또한 문제고요. 여튼 해결 못했어요. 미국에 와서 해결하라는 식이던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