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박완서에 빠져 그의 글 전부를 읽겠다고 덤빈 적이 있다. 그는 이야기꾼이다. 별스럽지 않은 소재에서 끌어내는 이야기가 어찌나 맛깔스러운지 읽는 재미를 톡톡히 준다. 개성 근처의 박적골에서의 유년 시절의 자전적이 이야기, 6.25의 상흔이 개개인의 삶에 미친 여파, 중산층의 삶의 허위 의식, 위악, 속악함에 대한 형상화가 주종을 이룬다. 


소설뿐 아니라 하루키처럼 그의 소설적 재료의 원형들인 것 같은 그의 에세이 또한 참 좋다. 소설보다 오히려 더 절제되어 있고 때로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경우도 많다. 언어를 통과하는 삶의 깨달음과 비의들이 다시금 봐도 하나하나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어릴 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대목들도 이제 지금에 와서 읽어보니 세월과 더불어 더없이 공감된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이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글은 때로 인장 같다. 사소하고 하찮은 일이 아니다. 두고두고 남아 내 자신의 정체성의 조각처럼 여겨질 수도 있고 세상에 대한 하나의 시선이자 입장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박완서 정도의 작가가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엄정한 잣대의 울림이 큰 이유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의 제목은 여기에서 왔다. 그것은 언뜻 미소해 보여도 엄청난 것이다. 진실은 쉽지 않고 때로 눈앞의 이익해 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 망설임 없이 밀고 나가는 힘은 스스로를 다잡으며 나온다. 세태에 휩쓸리고 사리사욕에 흔들리다 보면 진실은 저만치 물러가 버릴 때도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은 삶을 사는 일과 같다는 작가의 언질처럼 들린다.


그에게는 그만을 위한 서재가 없었던 시절이 길었던 모양이다. 남편이 생존해 있을 당시 그의 옆에서 피고한 몸으로 하루를 글쓰기로 마감하는 정경이 그려져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번듯한 서재보다 그러한 글쓰기가 더 익숙하고 좋다는 그의 고백이 귀엽다. 


마지막에 대한 바람을 눌러 적어놓고 싶었다.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고 싶다.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어 오는 사람으로서도 아니고, 아이들의 아버지로서도 아니고, 그냥 남자로서 사랑하고 싶다. 태초의 남녀 같은 사랑을 나누고 싶다. 

이런 찬란한 시간이 과연 내 생애에서 허락될까. 

-중략-

가을과 함께 곱게 쇠잔하고 싶다.

-박완서<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그의 소망을 닮고 싶다.  그는 이미 이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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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2-18 0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완서님의 글. 저도 참 좋아하는데 blanca님 페이퍼 보니 이 책도 얼른 읽고 싶네요.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blanca 2021-02-18 16:36   좋아요 0 | URL
여전히 좋아요... 마음이 참 재독한 글도 있는데도 여전히 새롭고 울림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