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고 불안한 나날들이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2020년의 1사분기가 지나가고 있다. 외출도 약속도 교류도 수업도 없다. 전염병이란 걸린 자가 어떤 낙인을 부여 받기 쉽다. 동선은 때로 타인을 통해 내가 위협 받을 수도 위해를 가할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경로가 되어버렸다. 예전 같으면 이웃의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서 함께 타고 인사를 나누는 게 미덕이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일처럼 보인다. 만나는 것보다 만나지 않는 것이 배려가 된다.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는 참 이 시기와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는 칠백 페이지의 분량에 질려 그냥 읽지 말까 싶었다. 그런데 시작하자 마자 나도 모르게 그 칠백 페이지를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모스크바의 호텔에 가택연금된 옛 제정 러시아의 백작의 이야기는 9평 남짓의 방에서 어떻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예시를 보여준다. 호텔 바깥으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종신형을 받은 로스토프 백작이 그 호텔 안의 종업원들과 우정을 나누고 심지어 여배우와 사랑에 빠지고 낳지도 않은 딸을 키워서 어엿한 피아니스트로 세상에 내어 보내는 과정은 묘하게 담담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우아하지만 가라앉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유쾌하다. 백작이라고 내도록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그는 한때 호텔 옥상에서 투신하려 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잡역부는 달콤한 벌꿀을 나누어 줌으로써 백작을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건져낸다. 거창하거나 현학적인 철학 대신 근면하고 소박한 노동자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그가 직접 수확한 당밀을 나누어 먹으며 생의 의지를 다시 재확인하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어쩌면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다시 살게 되는 계기는 이러한 평범한 일상의 번득이는 아름다운 순간을 재확인함으로써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백작은 자신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절제력을 발휘하여, 부모로서의 충고를 두 가지 간단명료한 요소로 제한하였다. 첫째는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못하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가장 현명한 지혜는 늘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라는 몽테뉴의 격언이었다. 

-에이모 토울스 <모스크바의 신사>


이 시기의 금언으로 간직하고 싶다.
















번역되기를 고대했는데 실제 신간에 떠서 깜짝 놀랐다. 딘 쿤츠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실제 코로나19에 대한 예언적인 부분이 나온다고 해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우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데 갑론을박이라 확인해봐야겠다. 꼭 그 대목 아니더라도 이 작가의 작품을 접해보고 싶었는데 기대가 크다. 소설이 경제, 정치 분야의 전망보다 미래를 더 정확히 전망할 때가 있다. 그러고 보면 이야기라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의 범주 안에서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현실화할 무한한 힘을 품고 있는 것 같다. 때로 입밖으로 내어 이야기되는 순간 실현 가능성의 첫발을 내딛는 것이 아닌가 싶어 좀 불안해 질 때가 있다. 카뮈의 <페스트>는 그런 면에서 섬찟하다. 카뮈는 인간들에게 그 끔찍한 질병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얘기하며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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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3-28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스크바의 신사는 사놓고 못 읽었는데 책무더기 중 아래에 깔려있(다고 추정되)어서 찾기도 만만찮-_-;;;;;;;;;;;;;
하여간; 재미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저도 언젠가 읽으리라 희망합니다^^ 딘 쿤츠 궁금해요. 블랑카님 서평 기대합니당^^

blanca 2020-03-28 19:50   좋아요 0 | URL
두꺼워서 저도 처음에는 좀 읽기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런데 한번 읽기 시작하면 그냥 술술 넘어간답니다. 이 작가의 다음 책도 기대됩니다. 아, 저 딘 쿤츠 책도 정말 기다렸는데 출간일이 무려 4월 12일이라 좀더 기다려야 될 듯해요. 이건 원서조차도 잘 없더라고요. 여튼 읽고 사고 싶은 책은 쌓여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