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건축학도가 칠십 대의 노장 건축가의 가르침을 받으며 보낸 한 때가 어떤 식으로 그의 삶에 각인되는지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절창이다.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풍광, 귓가에 들리는 듯한 소리의 감각에 대한 표현들, 시간의 경과 속에 변전하는 것들에 대한 천착,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이 땅에 건물을 짓는 행위에 대한 심오한 탐구는 건축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단숨에 흡입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시종일관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대한 오마주가 투영되어 있다. 특히나 라이트가 노년에 만든 일종의 젊은 건축도들의 도제 시스템의 장소인 '탤리에신'은  이야기의 배경인 건축 사무소의 영감을 제공해 주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시스템, 노건축가의 카리스마로 운영되는 시스템, 실현되지 못한 설계들, 그럼에도 그곳에 있었던 청춘들이 계승한 스승의 미완성의 꿈들. 간토 대지진을 견뎌낸 라이트의 제국호텔에 대한 이야기.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자연스럽게 20세기의 위대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진혼곡이 된다.

















라이트는 건축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일지라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할 정도로 세대와 장소를 넘나드는 유명한 건축가다. 그가 생의 후반에 건축한 별장 '낙수장'과 '구겐하임 미술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차를 넘어선 영감과 경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의 성취와는 별개로 그의 사적인 삶에는 많은 논란의 지점이 있다. 아버지로서 무책임했고 남편으로서 불성실했으며 사적 개인으로서도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사람이었다. 약속을 어겼고 거짓말을 남발했고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었다. 고객의 아내를 가로채고 산적한 문제들에 무책임하게 도피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러한 일들을 수습하고 여전히 속아주는 무리들이 그의 성취들을 가능케 한 역설은 어느 드라마보다 극적이다. 그의 삶에서 일어난 일들은 처절한 비극과 배신극과 불굴의 의지와 무모한 낭만적 열정이 결합된 막장 드라마와 위대한 성취가 혼재된 복합적인 융합체다. 그래서 그의 삶을 그의 성취와 함께 이야기하고 해석하고 평가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칭찬할 일도 비난할 일도 침묵할 일도 폭로해야 할 일도 많은 인생이다.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로 건축 비평가 에이다 루이즈 헉스터블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다룬 것은 이 균형의 지점을 절묘하게 포착해 낸 저자에 대한 맞춤한 경의라고 생각한다. 평전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신이 쓰는 대상에 대한 애정 없이는 결코 제대로 완성해낼 수 없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지만 그의 공과를 치우침 없이 평가하고 존경하지만 비판 받아야 하는 지점을 놓치지 않는 꼼꼼함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저자의 저력이 놀랍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는 두 개의 삶이 있다. 하나는 그가 지어 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실제로 산 것이다. 

-에이다 루이즈 헉스터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20세기 건축의 연금술사>


헉스터블의 언명은 머리말에 있다. 그녀는 '두 개의 삶'이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는 이 역사적 건축가가 자신의 삶을 이미 자신이 남기고 싶었던 그래서 창조해 냈던 또 다른 삶으로 표현했던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자서전을 썼다. 그리고 이 자서전은 실체적 진실이라기보다는 라이트가 가공한 진실로 윤색해 낸 삶이다. 그러나 그 거짓은 저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라이트는 이단아였고 독불장군이었고 아웃사이더였고 반역자였다. 스스로를 '위대한 건축가'라 칭하는 기염을 토했다. 심지어 그의 일종의 제자 양성 도제 시스템이었던 펠로십조차 거대한 사기극이자 싼값에 젊은 건축학도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의견이 있다. 실제 그러한 일로 그를 고소한 이들도 있었다. 출생 연도부터 출신 학교 등 그가 스스로 설명한 많은 것들의 진실성이 의심 받았다. 금전에 무책임해서 수시로 돈을 빌리고 안 갚았고 공사 대금은 언제나 예상보다 훨씬 불어나 있었으며 현장을 자주 비웠다. 그의 건축물 또한 무너지기도 했고 빗물이 새고 여러 하자를 드러냈다. 이러한 많은 결점들이 그에게 치명적이지 않았다는 점이 더 의아할 정도다. 그럼에도 그의 건축물들은 여느 다른 동시대의 동료들의 그것들 위로 우뚝 솟아오르는 결정적인, 선도적인 탁월한 점이 있었다. 그 누구도 그가 만들어 낸 것들을 도저히 모방해 낼 수 없었다. 그의 설계는 반 세기가 훌쩍 지나서야 실현될 수 있는 것들도 있을 정도로 급진적이고 혁신적이었다. 이 딜레마를 헉스터블은 정확히 지적한다. "예술에 있어서는 위대하지만 태도에 있어서는 왜소했다."는 그녀의 평은 함축적이다. 


그가 조강치처를 버리고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여인과 함께 할 보금자리로 설계한 '탤리에신'에서의 비극은 오래도록 뇌리에 박힐 정도다. 그가 떠나 있던 시간에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은 무참하게 살해 당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삶의 비극 앞에서도 라이트는 일어난다. 그곳이 몇 번이고 화재에 전소되어도 라이트는 없는 돈을 끌어들여 재건한다. 심지어 육십이 훌쩍 넘어 남들은 은퇴할 연령에 이르러서도 그는 가장 정력적으로 일에 뛰어들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제자 양성 시스템을 자급자족 공동체로 만들어 낸다. 그의 위대한 성취는 이러한 생의 후반기에 이루어진다. 이 대책없는 몽상가의 투지와 무모함은 그가 이루어 낸 예술적 성취가 빚진 대목이다. "완벽함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헉스타블의 말은 라이트를 가장 잘 집약해서 표현한 문구다. 그는 완벽해지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천재성을 발현할 수 있었다는 역설의 지점에 우뚝 선 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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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1-23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트 평전 읽어보고 싶네요. 소설보다 더 극적인 인물인 듯@_@;;;;;

blanca 2020-01-23 17:40   좋아요 0 | URL
이건 소설가도 생각해 내지 못할 극적인 일들이 빵빵 터지는 인생이더라고요. 놀라운 건 남들 다 은퇴할 나이에 역사에 남을 업적 또한 빵빵 터뜨리고요. 요새 예술가들, 소위 위인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발견 중이랍니다. 자기 분야에서는 프로지만 나머지는... 반드시 수습해 주고 받아주고 이해해 주고 처리해 주는 반려자가 있었다는 불편한 진실. 흥미롭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