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오지도 가지도 않을 것 같았던 2019년도 이제 한 달여가 남았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세기가 온다. 여전히 읽고 썼다. 기억은 희미하고 기록은 남는다,는 이야기가 맞다. 그래서 또 남긴다.



리처드 플래너건이 하는 전쟁 포로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아버지의 증언과 죽음과 맞물려 있다고 한다.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고 과거형이 아니고 타인의 것이 아니다. 상황이 인간의 의지를 압도할 때 그럼에도 남는 의미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은 여운이 길다. 감히 앉아서 읽기에 황송했던 책이었다고까지 할 수 있을까. 그가 얘기하는 한국인 경비병에 대한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김치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은 분명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작가의 깨달음이 전해져 왔다.









연령과 인습과 상식을 뛰어 넘는 사랑이 가지는 의미에 대하여 어떤 개인적 편견을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분명 작가의 성취일 것이다. 구태여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수많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의 저력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책은 죽지 않았고 이야기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 억지로 쥐어짜지 않고 나오는 삶들의 형상화에 절로 경탄하게 되는 이야기들.










자신이 속물이라고 어렵게 고백하는 책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면 그것을 그냥 대놓고 이야기하지만 감히 그 화자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 작가의 자전적인 성장기는 소년이 왜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는지에 대한 짙은 호소력을 지닌다.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소년의 삶은 그 틈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에 대한 찬반양론이 있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의 인생을 통해 이야기하는 삶에 대한 조언은 깊은 울림을 가진다. 전체를 흔드는 위기에 봉착했을 때 과연 어떻게 그 전장을 뚫고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충고는 공허하지 않고 가식적이지 않다. 그 자신이 어마어마한 고통과 시련을 통해 연마한 것들에 대한 가감없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도 나이 든 사람도 제목이 가지는 것 이상의 저마다의 깨달음을 얻어갈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지금 힘들거나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더욱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








뻔한 책이 아니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가벼운 책도 아니다. 요리의 노하우도 걷기의 노하우도 심지어 삶의 노하우도 있다. 하정우는 분명 뭔가를 겪었고 알고 표현할 수 있는 배우이자 작가라고 생각한다. 빌려 읽지 말고 사서 읽으시기를...












너무 우울하거나 힘들 때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책이다. 모든 허식과 망상과 환상이 일순간에 타격되고 적나라한 인간의 두려움과 삶의 허약함이 일순간 드러나면 한없이 공허해지고 두려워질 테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가질 수밖에 없는 죽음이 가져오는 그 폭력성과 무자비한 무의미를 직시한다는 것은 의식이 있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비극적인 통찰이기도 하다. 저자 자신이 스스로의 죽음을 대면하며 토로하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내가 끄달리던 숱한 그 사소한 번뇌, 집착이 얼마나 가볍고 추악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심연의 끝에 가닿게 만드는 책.









그리고 2020년의 읽기를 기다리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12-04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처드 플래니건의 소설에 등장하는
한국인은 포로가 아니라 포로 감시원
이지 싶습니다.

blanca 2019-12-04 14:02   좋아요 0 | URL
헉, 경비병입니다. 감사해요.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