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에는 사십 대의 이야기가 있다. 당연히 이십 대에는 이십 대만이 공감할 수 있는 사연이 있다. 어떤 연령대를 통과해야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리고 때로는 그 안에 있어야만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육십 대의, 이만 여구가 넘는 시신을 부검한 법의병리학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차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하지만 그 고백의 무게와 깊이에 자꾸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리처드 셰퍼드는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밝히는 일을 하는 영국의 법의학자다. 아홉 살에 생모를 잃고 어머니의 역할까지 함께 그러안은 아버지의 양육 아래 그가 법의병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우연히 친구가 학교에 갖고 온 [심슨 법의학]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의 제사에 인용된 알렉산더 포프의 <비평론>의 "아무리 어려워도 진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 말라"는 그의 안치소에서, 법정에서 하나의 금언이 된다. 여러 죽음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비인간성을 대면하게 되는 에피소드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도 결국 진실의 힘과 그것을 입밖에 내어 말할 용기다. 죽음이 만연한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아버지라는 페르소나를 다시 재창조해내어야 하는 그 간극의 어려움에 대한 표현도 진솔하다. 셰퍼드는 뒤늦게 의학 공부를 시작한 아내와 함께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가족에게 "이런 생활에 어떻게 사랑을 끼워 넣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고 토로한다. 자신의 일에 대한 사랑과 열정만으로 삶 자체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은 그가 이야기하는 그 숱한 죽음들에서 진실의 체를 거르는 일과 더불어 그의 생애 전반을 통해 학습된다. 비단 죽음 뿐 아니라 그것과 교차되는 그의 생애의 내레이션의 교훈 또한 여운이 길다. 종반부에 그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통과하는 여정의 그 생생한 고통은 읽는 이에게도 전해져 올 정도로 절절하다. 그가 속한 학계와 사회의 변화와 그 자신의 노화, 삶의 경로의 전환, 미처 해결하지 못하고 간 죽음들의 진실들의 귀환은 긴밀하게 서로 얽혀 이야기의 현란한 태피스트리를 완성한다.
그는 이 책이 하나의 치유의 여정이었음을 고백한다. 자신의 투병을 고백하면서 그가 객관화했던 죽음들은 공포나 환멸이 아니라 공정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그리고 당사자들에게는 결국에는 종국의 안식으로 수렴한다. 때로 섬뜩하고 끔찍했던 이야기들의 마침표는 화자의 것이다. 저마다의 사연은 그 비극성으로 마음을 산란하게 했지만 차갑지만 고요한 여운을 남긴다. 이 책 안에서 진실의 정의가 필요했던 미제의 살인 사건들은 결국 정의의 축으로 이동하여 안도를 준다. 그를 괴롭혔던 억울한 혐의들도 무혐의로 종결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결국 그렇게 많은 두려움과 공포를 남겼던 그 숱한 죽음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간다. 마치 삶과 죽음은 결국 만난다는 하나의 비장한 은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