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의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는 묘한 삼십 대의 정서가 서려 있다. 청춘에서 중년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거기엔 청춘의 기억과 중년 초입의 어떤 체념이 섞여 있다.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자각은 충분히 늙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직은 그래도 순수와 열정과 희망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시기. 그러고 보면 그녀의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던 나의 마음과 지금 '오직 한 삶의 차지'를 앞에 둔 내 모습의 온도차는 제법 크다. 

















<체스의 모슨 것>의 노아 선배 같은 엉뚱함, 치기는 삶의 '변화의 완수' 앞에서 때로 무력하다. 우리 모두는 변하고 관계 또한 그러하다. 김금희는 그러한 시간의 강을 통과한 청춘의 소멸을 때로 한꺼번에 소환해서 펼쳐놓기도 한다.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에서  까페의 사장은 엉뚱하게 아직 너무 젊고 가진 것이 없는 작업장의 청년을 은밀하게 짝사랑한다. '내'가 그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보내는 시간은 그 사장과 소통하는 시간이라기보다 오히려 같은 또래의 아르바이트생인 '그'와  공모한 기발한 반역 같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의 반전은 그렇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조차도 사실은 착각이었다는 놀라운 깨달음을 준다. 사실 '우리'라고 생각했던 연대는 한없이 얄팍한 것이었다. 한데 뭉뚱그려 하나라고 생각하는 가상의 집단에 대한 허상. 청년 세대, 중년 세대, 장년 세대의 개별성과 구체성은 그 안의 서사에 귀 기울일 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K는 여자가 늙었다는 것, 여자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마침내 늙어버렸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적어도 여자는 거부하지 않았음을, 살 것을, 최선을 다해 살 것을. 여자가 했다면 자기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여기 이 도시에서 어떤 무게를 감당하면서 거짓말처럼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김금희 <쇼퍼, 미스터리, 픽션>


"죽지 않고 살아남아 마침내 늙어버렸다는 것"은 순리라기보다 하나의 성취임을 자각하게 되는 나이, 생활과 삶은 함부로 비하하거나 폄하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담담하게 수용해야 하는 지점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이미 걸어온 지난 청춘의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과 이제는 꿈꿀 시간보다 견디고 그저 통과해야 하는 시간들이 더 많이 남았다는 것을 씁쓸하게 수긍하는 순간들과 만난다. 표제작인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는 책을 내는 일을 하다 실패한 화자가 결국 생활과 현실의 무게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씁쓸한 순간들이 자꾸 금전적으로 기대게 되는 장인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부각된다. 현실과 삶에 자꾸 무릎이 꺾어야 하는 꿈꾸는 몽상가들의 좌절이 작가의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 같다. 김금희는 이들이 품고 있는 과거의 그렇지 않았던 시간들에 보내는 애도, 그리고 이제는 도저히 도망갈 수 없는 현실의 무게에 대한 담담한 수용의 지점에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그 비가는 왠지 서글픈 아름다움의 정조를 띤다.



"그렇게 눈을 녹이는 것이었다. 붙들 것이 없다면 그냥 자기가 걸어서."<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 이제 작가는 그렇게 자기가 걸어서 수많은 좌절들과 상실들을 겪어내며 어떻게 늙어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시간을 향해 걸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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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9-29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4세까지는 청년이랍니다.노인도 70세 이상으로 상향조종 된다고 하니 그 중간은 그냥 장년층이라고 부르는것이 맞겠지요^^

blanca 2019-09-30 14:14   좋아요 0 | URL
이제 육십 대는 노인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중장년층으로 보이더라고요. 평균 수명이 길어지니 조종이 필요한 부분인 게 맞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