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건강의 배신 - 무병장수의 꿈은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조영 옮김 / 부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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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건강검진 대상이 되어 오랜만에 위내시경을 하게 되었다. 근래들어 속이 쓰려 위염이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수면마취에서 깨어나 어질어질한 가운데 조직검사를 두 건이나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은 처음도 아니건만 문득문득 밀려드는 공포로 지옥이었다.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나는 여전히 겁쟁이 쫄보였다. 스트레스가 건강에 제일 안 좋다면서 몸을 관리하기 위한 연례 검진은 되레 극한의 스트레스를 안겨 주는 경우가 많다. 몸안에 자잘하게 생기는 혹들도 알게 되는 순간 경과와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일종의 질환으로 거듭난다. 추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대기실, 거기에 따른 스트레스는 쉽게 무시할 것이 못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과연 이렇게 몸을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아니, 우리가 과연 이렇게 검진을 통해 우리의 삶의 주기와 질을 관리할 수 있기는 한건가?


나는 몸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관점을 지지하는 최신 과학 사례를 제시할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몸은 잘 정비된 기계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한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될, 세포의 지속적인 갈등이 일어나는 장소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 책의 끝에서(삶의 끝은 아니더라도) 피할 수 없는 질문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자아라는 것이 조화로운 몸안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자아란 무엇인가?

-바버라 에런라이크 [건강의 배신]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노동의 배신]으로 유명한 사회비평가다. 이색적으로 그녀의 전공은 세포면역학이다. 과학도였던 셈이다. 사회에 만연한 일반적인 현상에 도발적인 시선으로 접근하기로 유명한 그녀가 지금의 웰니스 열풍, 건강검진의 연례화 등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보여주는 책이다. 노화를 하나의 질병으로, 질병을 마치 정복해야 할 하나의 문제로 간주하는 현상에 대한 그녀의 시선은 자신이 세포생물학과 면역학에서 발견하게 된 과학자적 회의와 맞물린다. 특히 흔히 몸안에 침투하는 나쁜 세균이나 염증과 싸워 우리 몸을 사수해주리라 기대했던 대식세포의 반전은 놀랍다. 오히려 우리 몸을 정복하는 암세포의 확장과 전이를 돕는 편에 가담하게 되는 전환은 우리몸 자체가 디스토피아적으로 시간과 함께 파멸, 분해되리라는 암울한 전망을 지지한다. 의료화된 삶도 결국 이러한 몸의 반란 앞에서는 그 어떤 혁신적인 치료법을 쓴다 해도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승산없는 싸움의 패자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의 나이와 이 책의 출간시기를 감안해 보면 일흔을 훌쩍 넘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쉽지 않은 용단이다.


나는 예방 의료를 거부한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의료화된 죽음'이라는 고문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의료화된 삶'을 받아들이는 것도 거부한다. 나의 결심은 나이가 들수록 더 단호해진다.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듦에 따라 매월, 매일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창문 없는 대기실인이나 삭막한 검사실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죽기에 충분한 나이가 됐다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성취이며, 그것이 가져다주는 자유는 축하할 가치가 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건강의 배신]


피트니스 열풍과 극단적인 식이통제 등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우리는 이것이 마치 개인의 도덕적 의무이자 자기 관리의 표증인 것처럼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죄책감을 자극하는 요인들로 둘러싸여 있다. 건강관리는 심지어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까지 작용한다. 저자는 이 정도가 이미 정상 수준을 벗어났다고 비판한다. 마음챙김, 명상 열풍 또한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얘기한다. 자본주의와 맞물린 자신의 몸과 삶을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맹신은 과학도가 보기에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차별적인 계층구조와 맞물려 있다. 빈곤층은 이러한 열풍에 동참할 재원과 시간이 부족하다. 


과학의 진보는 우리가 우리의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키우게 되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소비하고 향유할 것이 넘치는데 여전히 죽음을 직시하는 문제는 쉽지 않음을 반증한다. 우리는 죽음을 통제할 수 없다. 자기 소멸에 대한 불안감은 죽음이 넘쳐났던 과거에 비해 더 증폭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공포를 파고들어 상품화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 지점을 직시하자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더 나아가 결국 이것은 저자가 사전에 예고했듯이 우리 자신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가? 에 대한 심원한 질문으로 심화된다. 답은 언제나 그렇듯 모호하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지성의 지평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얘기의 잔영은 언제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럼에도 초조해하며 검진 결과를 기다리는 대기실에서 이 메시지가 가지는 위로는 적지 않았다. 이런 것들로 소진하기에 삶은 너무나 짧고 내가 그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깨달음은 작은 평화를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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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9-10 0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려고 보관함에 담아두었는데(왜 아니겠습니까) 블랑카님은 벌써 읽으셨군요.
조직검사 결과는 나왔나요, 블랑카님?

다들 같은 마음인가봐요. 건강검진을 받아 몸의 이상을 체크하자고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검사를 앞두고서는 혹여 몸에 이상이 있을까 두려워하게 되잖아요.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그 초조함, 정말 스트레스가 크죠. 그런 한편 별 이상 없다는 걸 알게 되면 크게 안도하게 되고요.
말씀하신대로 건강검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에 사실 다들 검진을 미루고 또 미루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도 미루고 있습니다..

blanca 2019-09-10 10:50   좋아요 0 | URL
괜찮다고는 나왔는데 위염이 너무 심해서 걱정이네요. 그 좋아하던 커피도 이제는 이틀에 한잔 마셔야 할 것 같아요. 먹는 데서 찾던 낙 다 포기해야 될 판입니다. 면도 엄청 좋아하는데 요새 못 먹고 우울합니다. 여튼 이제 모든 지수가 조금씩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네요. 다락방님 빨리 하세요. 이 책 저자야 일흔이 넘어 그렇다지만 우리는 아직 젊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