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병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근래 들어서는 점점 더 고약해지고 있다. 정기 검진조차 침착하게 받을 수가 없다. 치과는 절정이다. 의자에 앉는 순간 심장 박동이 전력 질주할 때 수준으로 다급해진다.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걸까? 알 수 없다. 솔직히 건강에 자신이 없어지면서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고 집안에 환자가 생기면서부터인 것 같기도 하고 정확하지 않다. 어떤 부위를 검사해도 괜찮을 것 같은 맹신은 노화와 더불어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길든 짧든 결국은 투병 후에 세상을 떠날 거라는 그 당연한 명제가 낯설고 비현실적이다. 이 모순의 향연은 나이와 더불어 해소되는 것인지 그냥 어쩔 수 없이 죽음이 뒷목을 챌 때 질질 끌려나가는 것인지 답해 줄 사람은 없다.
이 책에는 거기에 대한 응답의 시도가 있다. 저자 아서 프랭크는 서른아홉에 심장 마비를, 다음 해에는 상당히 진행한 암을 진단받게 된다. 둘 다 위중한 상태였지만 그것을 뚫고 살아나온 과정에 따른 그의 증언은 자신이 공부한 의료사회학과 더불어 통찰력 있는 깊이를 보여준다. 실제 본인 자신이 질병을 겪어내는 과정의 주체이자 분석, 이해, 연구의 객체로 과연 이 사회에서 환자로 질병을 경험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삶에서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어떤 통찰을 안겨주는지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경이롭다. 그것은 생의 중단에 대한 강렬한 인식과도 닿아 있어 투병기는 삶의 철학으로까지 확장된다. 환자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인의 범주로 회복되어 돌아온 작가는 그 경험에서 배운 것들을 잊지 않기를 희망한다. 종말에 대한 생생한 두려움도 간직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경이롭고 얼마나 허약한지에 대한 상기는 생의 약동을 인식하는 것으로 승화된다. 언젠가 그만 달려야 함을 인식할 때 내딛는 한 발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지워지지 않을 발자국을 남길 것을 안다.
나는 계속 달리고 싶지만 언젠가는 멈춰야 한다. 그날이 어떤 모습일지는 모른다. 지나치게 회복해서 내가 어디까지나 회복 중인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잊고 싶지는 않다.
-p.213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아직도 건재하는 그의 행보는 그가 "회복 중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질병의 서사는 지금도 용감히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위기를 경험하고 있을 수많은 동지들에게 투지와 의미를 함께 선물한다. 몸의 병이 아니어도 산다는 일의 그 복합적이고도 은밀한 함의를 그의 이야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