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문제집과 수험서 위주로 판매를 하는 동네 서점은 책도 포기하지 않는다. 작은 공간에 신간과 구간을 효율적으로 눈에 띄게 배열한 정성과 요령이 놀랍다. 아이의 한글 공부 관련 교재를 사러 갔다 그래서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이리 저리 서성이다 보물을 발견했다. 

















오정희의 [유년의 뜰]은 한국어가 어디까지 확장되고 심화될 수 있는지 그 극한을 보여준 작품 같았다. 문장 하나하나가 어찌나 아름답고 적확한지 옮겨 적어도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이야기는 작가가 만든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그녀의 문장은 공감각적인데 인위적이거나 과하다는 느낌이 없다. 평면적인 퍼즐의 조각들은 맞춤하게 어우러져 입체감을 준다. 언어로 지은 집은 분명 사람이 살아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녀의 작품을 다 찾아 읽었다고 여겼는데 [새]는 기억에 없다. 


잠자는 우일이의 얼굴에, 빨간색과 파란색의 크레파스로 울긋불긋 그림을 그렸을 때 외할머니는 질겁을 하고 내 머리통을 후려쳤다.-p.7


첫문장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어린 남매의 이야기는 채 이백 페이지가 되지 않는다. 집 나간 엄마, 일하러 떠난 아빠, 이곳저곳 친척집을 전전하다 새엄마를 데리고 나타난 아빠와의 생활마저 오래지 않아 남매는 홀로 남는다. 약한 남동생에게 엄마, 누나, 아빠, 선생 노릇까지 해내려 안간힘을 쓰는 열두 살 소녀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다. 계속 가슴이 저릿해져 혼났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부박한 삶을 챙긴다는 미명하에 약하디 약한 아이들을 버렸다. 버려진 아이들은 제대로 된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어두운 세상의 골목길에서 학대받고 상처받고 죽어갔다. 아니, 죽어가고 있다. "이 비열하고 누추한 세상"에서 동생까지 그러안고 버텨야 하는 소녀의 여린, 순수한, 타락한, 상처받은 시선 앞에서 어른들의 위선, 위악, 탐욕의 민낯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어젯밤 이 책의 너무 아픈 결말에 말을 잃을 정도였다. 요즘 벌어지는 각종 잔인한 범죄의 틈새에서 방치되고 방기되는 아이들이 떠올랐다. 내 아이를 챙기느라 그 아이들은 잊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 죄책감이 들었다. 너무나 많은 숙제와 미진한 마음을 남긴 이야기는 '작가의 말'에서 말줄임표를 불러온다. 실제 오정희 작가가 참여한 자원봉사 프로그램에서 만난 남매와의 사연이 반영된 이야기라는 고백에 한 자의 슬픔은 더해진다. 


우주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되라고 우미라 이름 짓고 우주에서 제일 멋진 남자가 되라고 우일이라 이름 지어 그렇게 부르던 목소리가 있었다. 그렇게 부르던 마음이 이제사 내게로 와 들리는가 보다.

-p.171


그런 마음을 기억한다면 어떨까. 그런 마음들을 나의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들에게도 짐작한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공허한 이야기일까. 모르겠다.  우미는 정말 자라나 우주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되었을까? 자명한 답에 가슴 한켠이 뭉근하게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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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6-19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개성있는 작은 책방들이 생겨난다고 하는데 사실 동네에 있는 일반 책방의 경우 아무래도 매출의 주는 학생용 참고서가 아닐까 싶어요.뭐 그것도 이제는 알라딘과 같은 인터넷 서점과 경쟁을 해야되니 쉽지 않겠지만요.아무튼 도서 정가제이후에도 소형 서점들은 여전히 경영이 어려워서인지 제가 어릴적에 참고서를 자주 구매했던 동네 책방도 어느샌가 문을 닫았더군요ㅜ.ㅜ

blanca 2019-06-21 07:57   좋아요 0 | URL
동네 책방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는 모습은 참 쓸쓸해요. 그 틈새에서 살아남고자 저마다 분투하는 모습은 응원해주고 싶어집니다. 대형 서점과는 다른 작은 동네 서점만의 냄새가 참 좋아요. 그러고 보니 오늘 동네 서점 나들이 좀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