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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독서의 기쁨 : 책 읽고 싶어지는 책
김겨울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18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시험이 끝나면, 아니, 시험 결과가 좋으면 책을 살 수 있었다. 집 앞의 서점에서 한정된 예산 안에서 최대한 나의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욕망을 조절하며 타협한 지점에서 효율적으로 책을 우겨넣는 즐거움은 정말이지 감질났다. 그래서 나에게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러한 애달픈 타협을 좀 견딜만한 것으로 상향 조정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과도 같았다. 한 마디로 읽고 싶은 책을 돈 때문에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그 날을 간절히 기다렸다.
기다림은 결실을 맺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퇴근하면 도저히 더 이상 종이 위의 활자와 씨름할 기운이 남지 않았고 언젠가부터 무언가를 읽고 싶다,는 욕망의 기억조차 희미해져갔다. 책을 살 돈이 있다고 해서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 돈을 벌기 위해 나는 읽을 시간을 반납해야 했으니까. 이런 딜레마는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었고, 시간이 주어지면 돈이 없었다. 그나마 돈도 시간도 함께 주어진 경우는 또 무언가 항상 변명거리가 주어졌다. 한 마디로 내가 원하는 책을 마음껏 사서 쌓아놓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이게 무용한 일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어야) 자유롭게 마음껏 책을 읽을 날은 영영 내게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슬슬 또 다른 방해요인이 앞에 도사리고 있다. 노.안. 아직 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오고야 말 그 필연이 두렵다. 이러저러한 변명 거리들 앞에서 ‘읽는다’는 행위는 여전히 어떤 한계와 어느 정도의 죄책감과 고독을 동반하는 일이라는 걸 의식하며 이 책을 읽었다.
아직 책을 읽을 수 있는 수많은 날이 남아있고, 그 시간 동안 더 좋은 책을 깊이 향유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다.
그녀의 이런 젊음,이러한 여유가 부러웠다. 아직 이십 대이니 수많은 시행착오와 아직 읽을 수백만 권의 책과 그것을 제한하지 않을 시력과 더불어 읽는 일을 업으로까지 삼을 수 있는 그녀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책을 좋아한다,고 사방에 공표할 수 있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그녀의 자신감 또한 그러했다. 책을 사랑한다,는 것을 주제로 이러한 책을 쓸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과 그것을 단정하고 논리적인 문장으로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내공은 덤이다.
유튜버는 왠지 독서라는 행위와 가장 대척점에 서 있을 것 같은 자리인데 바로 그 곳에서 왠지 점점 사그라들어가는 것 같은 독서의 불꽃을 재점화하는 그녀의 시도와 응원이 그래서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가장 즐거운 유희 활동’이라는 그녀의 표현은 진입장벽이 낮지는 않지만 한번 그곳을 점프하면 어떤 환희들이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예시로서 충분하다. 나와는 거리가 멀었던 SF 작가 테드 창을 만나게 한 것도 그녀가 만든 영상의 뿜뿌질이었다. 어느 한 개인이 성장하며 책을 사랑하는 일과 그 사랑하는 책을 추려 얘기하는 것은 새로울 것이 없는데 저마다의 이름으로 적히면 여지없이 그 울림의 색깔이 달라진다. 그녀의 닉네임 <겨울서점>처럼 하얗고 차가운 듯하면서 손을 녹일 따뜻함이 녹아 있는 색깔의 글들이다.
에필로그로서 ‘12살의 독후감’은 서른 편의 독서 에세이의 마침표로서 다시 시원으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이다. 책을 활자를 정말 실물처럼, 실재처럼 영접했던 그 시간들은 낯선 것이 아니다. 결국 우리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보다. 책 앞에서 설레이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