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
황승택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이 책이 읽고 싶으면서도 왠지 피하고 싶었었다. 이유는 몇 년 상간으로 가족들이 실제 중병에 걸려 투병하는 모습을 접하게 되면서 아픈 이야기 하나를 더 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삶의 일회성, 유한함, 상실, 넘치게 공부 중이라고 생각해서 이 이야기를 읽고 더 힘들어지거나 슬퍼지면 어쩌나 싶어 짐짓 물러섰다. 하지만 결국 나와 비슷한 연배의 저자의 이야기를 단숨에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우울해졌나고 묻는다면 더 마음이 무거워졌냐고 질문한다면 대답은 '아니다.' 안타깝고 또 제발 저자가 건강하게 기자로 복직하여 더 깊이 있고 울림 있는 기사들을 써주기를 바라지만 시종일관 담담하고 간결한 그의 백혈병 투병 일기를 읽다 보니 그가 바랐던 것처럼 내 가슴에는 의미 있는 "파문이 일었다." 그리고 그 파문은 마냥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내 삶과 그리고 내 삶을 스쳐가는 수많은 타인들과 의미 있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밀도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가능케 한 생산적인 파문이었다.


11년 동안 방송 현장의 의욕적인 기자였던 저자는 2015년 불시에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된다. 이때부터 시작된 쉽지 않았던 투병의 과정을 SNS에 올리면서 이 책은 태어나게 된다. 항상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취재하고 기사를 만들어내던 저자의 취재 현장은 본인이 주인공이자 관찰자가 된 의료현장으로 옮겨가게 된다. 인생의 시련은 누구나 관찰자의 시선에서 급작스럽게 당사자가 되는 그 지점에 예고없이 서게 되는 것으로부터 전개된다. 백혈병 진단으로부터 생면부지의 타인으로부터 골수이식을 받고 회복하는 과정, 재발의 이야기에서 저자의 시선은 환자의 입장에서 경험하게 되는 의료 시스템의 보완할 점,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주변 사람에게 흔히 저지르게 되는 실수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힘듦이 남기는 유의미한 이야기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천착으로 나아간다. 절망 앞에서도 다시금 일어서는 어린 두 딸을 둔 아버지로서의 모습에 가슴이 저릿했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시기에 지척의 교정을 거닐었을 수도 있다 생각하니 더욱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친밀감에서 이 시련을 부디 훗날 뒤돌아 볼 때 더 풍성하고 진한 삶을 살아나가는 데 독하지만 불가결했던 소재로 딛고 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딸아이가 많이 아팠을 때 누워있으려고만 하는 작은 아이를 간호사의 조언대로 휠체어에 태워 몇 번이고 병원 복도를 돌며 울음을 참았던 기억이 난다. 벽원 복도에 두건을 쓰고 병색이 완연한 환자들이 링거폴대를 끌면서 배회하는 것이 회복을 향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그때에서야 비로소 알았다. 그것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지친 몸을 일으켜 운동에 나서는 작가의 이야기에 그 풍경이 다시 떠올랐다. 그것은 말로 옮겨 담을 수 없는 삶에 대한 경의였다. 힘들다고 함부로 '죽고싶다'는 말을 남용하거나 조금 부정적인 소식에 '암유발'이라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뱉어내는 것에 그래서 나는 거부감이 든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폄하되고 무심코 거론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작가를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 현장에 돌아와 좋은 기사를 써 주기를 성심으로 기원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21-09-20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사두고 이제야 읽었습니다. blanca님 리뷰에 제 맘도 담습니다. 기자님이 건강하시길 바라며.. blanca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blanca 2021-09-20 15:31   좋아요 0 | URL
아...이 책 오래 기억에 남아요. 얼마 전에 기자님의 근황을 찾아보려 했는데 지금은 건강해지셨기를 저도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