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시각과 미디어 동문선 문예신서 12
존 버거 지음 / 동문선 / 1990년 5월
절판


돈은 생명이다. 돈이 없으면 굶어 죽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 한 계층의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계층에 속하는 이들의 전체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인간 능력의 징표이자 열쇠라는 의미에서, 돈은 생명이다. 돈을 쓸 수 있는 힘은 삶을 살 수 있는 힘이다. 광고의 신화에 따르면, 돈을 쓸 수 있는 힘을 결여한 이들은 문자 그대로 얼굴이 없는 존재가 된다. 돈을 쓸 수 있는 힘을 지닌 이들은 반면 사랑받는다. -7장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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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은 가을이 (최승자)


개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있는 기억의 廢水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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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9-04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뜩! 서재에 막 올라온 브리핑 제목을 보고 놀라다가,
최승자 시인의 이름을 보고 씨익 웃었답니다.
그녀라면 이런 제목이 가능하지요 ㅎㅎㅎ
바람이 몹시 부는,
가을이 나 왔어~ 라고 호들갑 떠는 것 같은
바람이 몹시 부는 밤이어요.
하루를 마감하고 자야하는데,
어쩐지 자기 아까운 어제에 이어 오늘도 그렇네요.
올가을엔 누구의 레코드를 들으며 보내야 하려나요...

아직 강물 근처도 못간 어항속에 물 플레져 올림.


비로그인 2005-09-04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저도 제목 보고 놀랬어요. ^-^;; 정말 가을이 쳐들어 오나봅니다.

플레져 2005-09-04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수동의 가을 한 점 놓고 갑니다.

검둥개 2005-09-04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플레져님 이 그림 좋으네요 ^^ 달이 둥실 산이 검고 하늘은 진한 잿빛이고.
이번 가을 저는 백건우의 싼 씨디를 들으며 보내려 했는데 아, 글쎄 이 놈의 소포가 안 와요... ㅠ_ㅠ 근데 님이 어항 속의 물이시면 저는 뭔가요? 또랑 속의 물? ^^

ㅎㅎ 장미님, 지금 댓글을 보고서야 제목의 선정성을 깨달았어요. 아무 생각 없이 올렸더라는... 시인 이름을 옆에 달았으니 망정이지. ^^

2005-09-04 0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5-09-04 0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어머 저의 서재가 익숙한 느낌을 드린다니 덩달아 기쁩니다. ^^
저는 익숙한 게 좋아요 헤헷. 나름 남성적이기도 하다는. 서툴러서 주변의 것들을 많이 부수는 (?) 편이에요. ㅎㅎ 이제 제가 좀 낯설으시죠? ^^;; =3=3=3
 

편지 (천상병)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 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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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2005-09-01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예전에 천상병시인에 대한 다큐 비슷한걸 본적이 있어요. 아이같은 순진함을 가지신 분이셨고 말년에 병때문에 부인이 많은 고생을 했던것 같던데... 그분이나 부인이나 보통분은 아니셨단 느낌을 받았어요. 이세상보다 조금 위에 사시는 듯하다고나 할까요. 이 시 참 좋네요...

검둥개 2005-09-01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가 참 좋아요... ^^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김중식)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마다
하루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육체와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돌아온 내 피로의
끝을 보게 된다 돈 한푼 없어 대낮에 귀가할 때면
큰 길이 뚫려 있어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이다
옐로우 하우스 33호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집 앞인데
거기보다도 우리집이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로 들어가는 사내들보다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사내들이
더 허기져 보이고 거기에 진열된 여자들보다 우리집의
여자들이 더 지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 대신 내가 영계백숙 음식 배달을 나갔을 때
나 보고는 나보다도 수줍음 타는 아가씨는 명순氏
紅燈 유리房 속에 한복 입고 앉은 모습은 마네킹같고
불란서 인형 같아서 내 색시 해도 괜찮겠다 싶더니만
반바지 입고 소풍 갈 때 보니까 이건 순 어린애에다
쌍꺼풀 수술 자국이 터진 만두 같은 명순氏가 지저귀며
유곽 골목을 나서는 발걸음을 보면 밖에 나가서 연애할 때
우린 食堂에 딸린 房 한 칸에 사는 가난뱅이라고
경쾌하게 말 못 하는 내가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강원연탄 노조원들이다
내가 말을 걸어본 지 몇 년째 되는 우리 아버지에게
아버님이라 부르고 용돈 탈 때만 말을 거는 어머니에게
어머님이라 부르는 놈들은 나보다도 우리 가정에 대해
가계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하루는 놈들이, 일부러
날 보고는 뒤돌아서서 내게 들리는 목소리로, 일부러
대학씩이나 나온 녀석이 놀구 먹구 있다고, 기생충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상처를 준 적이 있는, 잔인한 놈들
지네들 공장에서 날아오는 연탄 가루 때문에 우리집 빨래가
햇빛 한번 못 쬐고 방구석 선풍기 바람에 말려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내심 투덜거렸지만 할 말은
어떤 식으로든 다 하고 싸울 일은 투쟁해서 쟁취하는
그들에 비하면 그저 세상에 주눅들어 굽은 어깨
세상에 대한 욕을 독백으로 처리하는 내가 더 끝
절정은 아니고 없는 敵을 만들어 槍을 들고 달겨들어야만
긴장이 유지되는 내가 더 고단한 삶의 끝에 있다는 생각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은 쓰레기 하치장이어서 여자를
만나고 귀가하는 날이면 그 길이 여동생들의 연애를
얼마나 짜증나게 했는지, 집을 바래다주겠다는 연인의
호의를 어떻게 거절했는지, 그래서 그 친구와 어떻게
멀어지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눈물을 꾹 참으며
아버지와 오빠의 등뒤에서 스타킹을 걷어올려야하고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여동생들을
생각하게 된다 보름 전쯤 식구들 가슴 위로 쥐가 돌아다녔고
모두 깨어 밤새도록 장롱을 들어내고 벽지를 찢어발기며
쥐를 잡을 때밖에 나가서 울고 들어온 막내의 울분에 대해
울음으로써 세상을 견뎌내고야 마는 여자들의 인내에 대해
단칸방에 살면서 근친상간 한번 없는 安東金哥의 저력에 대해
아침녘 밥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제각기 직장으로
公園으로 술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탈출의 나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 혹 知人이라도 방문해 있으면
난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넘어 멀리까지 귀양 떠난다

큰 도로로 나가면 철로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기차가
있다 가끔씩 그 철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처연하게
걸어다니는데 철로의 양끝은 흙 속에서 묻혀 있다 길의
무덤을 나는 사랑한다 항구에서 창고까지만 이어진
짧은 길의 운명을 나는 사랑하며 화물 트럭과 맞부딪치면
여자처럼 드러눕는 기관차를 나는 사랑하는 것이며
뛰는 사람보다 더디게 걷는 기차를 나는 사랑한다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 철로의 무덤 너머엔 사랑하는 西海가 있고
더 멀리 가면 中國이 있고 더더 멀리 가면 印度와
유럽과 태평양과 속초가 있어 더더더 멀리 가면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상의 끝에 있는 집
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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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5-08-31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시로 시작할 수 있겠군요. 예전에 <안녕 레나>의 작가 한지혜가 김중식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이 시를 풀어놓은 것을 인상깊게 보았었는데요, 다들 시구의 한 구절씩은 갖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검둥개 2005-08-3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책을 읽은 소설가와 제가 시집을 읽은 시인이 서로 안단 말이죠? ^^ 유명한 사람들은 다 서로서로 아는가 봐요? 오래 전 따끈한 신간에서 읽었던 이 시가 새롭게 보입니다. 좋은 시를 읽으면 언제나 저는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는... ...

돌바람 2005-08-3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소설가가 등단한 신문사에 시인이 문화부 기자로 있었다지요. 한번 더 들어와서 시 보고 갑니다.

검둥개 2005-08-31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아 그랬군요. 시인이 문화부 기자인 줄 몰랐어요. ^^

나무님도 이 시를 좋아하시는군요. ^^ 저도 그 시집 신간으로 나왔을 때 딱 집어 샀던 생각납니다. 이 시인은 요즘 시를 안 쓰나요? 왜 시집이 안 나오는게 고마우세요? (갸우뚱)

검둥개 2005-09-01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상적이긴요, 김중식 시인의 시를 무척 좋아하셨나 봐요. ^^ 뭔가 특별하게 늙지 않을까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ㅎㅎ 저는 새 시집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
 

헤밍웨이, <글쓰기에 대하여>

동네 서점 재고 코너에 쌓여 있길래 들추어보다가 결국은 사고 만 책. 정가는 12불인데 나는 6불을 주고 샀다.  오늘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벌써 반이나 읽었다. 이유는,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글자보다 공란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많기 때문이다. 즉, 날라리 책인 것이다.  ^^;;;

그래서 아마존에는 이 책을 산 후에 분노를 터트리는 사람들의 리뷰가 많이 실려 있다. 이를테면: 이건 출판사의 농간이다. 이건 헤밍웨이가 직접 쓴 책도 아니고, 여기 저기 헤밍웨이가 쓴 글에서 짜집기를 해 놓은 거다. 무슨 책이 빈 부분이 글씨 부분보다 더 많으냐. 돈 아까워서 죽겠다. 온라인으로 주문했는데 책방에서 직접 들춰봤으면 절대 안 샀을 거다. 기타 등등.

나는 책방에서 다 들춰보고 샀기 때문에 ^^;;; 뭐라 변명할 처지도 아니고, 정가의 반값을 주고 샀기 때문에 뭐 과히 그렇게 책값이 아깝지도 않다. 도리어 모처럼 영어로 된 책을 이렇게 술술 읽어나가다니 싶어 스스로가 아주 기특해 죽겠는 지경이다. 글씨 수가 워낙 적어 그리 된 것이기는 해도 하루에 책 반 권 땐 이 기분, 끝내준다. ㅎㅎ ㅎ

이 책은 헤밍웨이가 쓴 글 중에서 조금이라도 글쓰기와 관련이 있다 싶은 것을 몇 줄 혹은 한 단락 하는 식으로 편자가 추려모아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들이 작품을 쓸 때 아이디어를 모아놓는 작가 노트를 나중에 출판하는 식으로 나오는 (대부분 출판사 사장들의 읍소나 꼬시기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산문집과는 좀 다른 형태다. 즉 다른 헤밍웨이의 작품들을 많이 읽은 사람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멋드러진 제목을 단 사기행위로 비칠 만 하다.

반면 헤밍웨이 하면 엉뚱하게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때문일까?) 이 생각나는 나같은 문외한에게는 그럭저럭 읽을 만 했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작가였지만, 어쨌건 훌륭한 작가는 훌륭한 작가였기 때문에, 스윽 지나가면서 한 말에도 뼈가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 Moveable Feast (이동연회?)를 아주 즐겁게 읽었는데 (오래 전이라 내용은 기억 안남 ㅠ_ㅠ;;) 거기에 실렸었다는 단락도 종종 등장한다. 그러면 나는 정말로? 왜 기억이 안 나지? 이러면서 또 새겨 읽는다.

몇 구절만 여기 인용해보자면:

Mice: 작가에게 최고의 초기 훈련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Y.C.:  불행한 유년이죠. (출전: By-Line)                                                  @.@

도스토엡스키는 시베리아로 유배됨으로써 만들어졌다.
용광로에서 검이 담금질 되듯 작가는 부정의 속에서 단련된다.         크아!
(Great Hills of Africa 중)

책을 쓸 때는 날씨를 명심해라. 날씨는 아주 아주 중요하다.
(헤밍웨이가 존 도스 파소스에게 보낸 편지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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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2005-08-31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ㅎㅎ 작가에게 날씨가 아주 중요하군요. 전 작가도 아니면서 맨날 날씨 이야기를 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건 왜일까요?

검둥개 2005-08-3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소설에서는 날씨가 참 중요하잖아요. 저는 그게 늘 작가들이 페이지 떼우려고 하는 거라는 남모를 의심을 품고 있었는데... 아닌가봐요 ^^;;;

마태우스 2005-08-31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 같아도 배신감 느낄 겁니다. 싸게 샀어두요. 근데 제가 다음다음주에 글쓰기에 대해 강의를 할 건데, 갑자기 그책을 사고 싶어졌어요. 우리나라에도 있나요?

검둥개 2005-08-31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뭐에 씌여서 이 책을 육천원이나 주고 샀는지 모르겠어요... ㅎㅎ
번역본이 있음 좋을텐데, 없는 것 같고, 알라딘에는 안 뜨지만 교봉에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 이 책은 소설작법에 대한 내용이 주로인 거 같은데 청중이 마태님 학생들과 비슷하려나 모르겠네요.

히나 2005-08-3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veable Feast <---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아닌가요? 미국식 제목이 그 비슷했던 거 같은데.. 지금 책이 없어서 확인 불가능하군요..

검둥개 2005-09-01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랍님. moveable feast는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이 번역본 맞는 것 같아요. 내용이 파리 체류 이야기니까 ^^ ernest hemingway on writing은 번역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