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글쓰기에 대하여>
동네 서점 재고 코너에 쌓여 있길래 들추어보다가 결국은 사고 만 책. 정가는 12불인데 나는 6불을 주고 샀다. 오늘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벌써 반이나 읽었다. 이유는,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글자보다 공란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많기 때문이다. 즉, 날라리 책인 것이다. ^^;;;
그래서 아마존에는 이 책을 산 후에 분노를 터트리는 사람들의 리뷰가 많이 실려 있다. 이를테면: 이건 출판사의 농간이다. 이건 헤밍웨이가 직접 쓴 책도 아니고, 여기 저기 헤밍웨이가 쓴 글에서 짜집기를 해 놓은 거다. 무슨 책이 빈 부분이 글씨 부분보다 더 많으냐. 돈 아까워서 죽겠다. 온라인으로 주문했는데 책방에서 직접 들춰봤으면 절대 안 샀을 거다. 기타 등등.
나는 책방에서 다 들춰보고 샀기 때문에 ^^;;; 뭐라 변명할 처지도 아니고, 정가의 반값을 주고 샀기 때문에 뭐 과히 그렇게 책값이 아깝지도 않다. 도리어 모처럼 영어로 된 책을 이렇게 술술 읽어나가다니 싶어 스스로가 아주 기특해 죽겠는 지경이다. 글씨 수가 워낙 적어 그리 된 것이기는 해도 하루에 책 반 권 땐 이 기분, 끝내준다. ㅎㅎ ㅎ
이 책은 헤밍웨이가 쓴 글 중에서 조금이라도 글쓰기와 관련이 있다 싶은 것을 몇 줄 혹은 한 단락 하는 식으로 편자가 추려모아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들이 작품을 쓸 때 아이디어를 모아놓는 작가 노트를 나중에 출판하는 식으로 나오는 (대부분 출판사 사장들의 읍소나 꼬시기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산문집과는 좀 다른 형태다. 즉 다른 헤밍웨이의 작품들을 많이 읽은 사람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멋드러진 제목을 단 사기행위로 비칠 만 하다.
반면 헤밍웨이 하면 엉뚱하게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때문일까?) 이 생각나는 나같은 문외한에게는 그럭저럭 읽을 만 했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작가였지만, 어쨌건 훌륭한 작가는 훌륭한 작가였기 때문에, 스윽 지나가면서 한 말에도 뼈가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 Moveable Feast (이동연회?)를 아주 즐겁게 읽었는데 (오래 전이라 내용은 기억 안남 ㅠ_ㅠ;;) 거기에 실렸었다는 단락도 종종 등장한다. 그러면 나는 정말로? 왜 기억이 안 나지? 이러면서 또 새겨 읽는다.
몇 구절만 여기 인용해보자면:
Mice: 작가에게 최고의 초기 훈련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Y.C.: 불행한 유년이죠. (출전: By-Line) @.@
도스토엡스키는 시베리아로 유배됨으로써 만들어졌다.
용광로에서 검이 담금질 되듯 작가는 부정의 속에서 단련된다. 크아!
(Great Hills of Africa 중)
책을 쓸 때는 날씨를 명심해라. 날씨는 아주 아주 중요하다.
(헤밍웨이가 존 도스 파소스에게 보낸 편지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