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달팽이는 그냥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요새 보는 달팽이는 은근히 안쓰럽다. 뭐가 안쓰러운지도 잘 모르면서 나는 막연히 그 느린 걸음을 죽자사자 가는 것이라 자꾸만 상상한다. 달팽이는 죽자사자 어디로 갈까. 뿌려진 소금 한 줌에 그만 녹아 없어지고 마는 것. 그게 달팽이였던가?

달팽이의 꿈 (이윤학)
                     

집이 되지 않았다 도피처가 되지도 않았다
보호색을 띠고 안주해버림이 무서웠다
힘겨운 짐 하나 꾸리고
기우뚱 기우뚱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얼굴을 내밀고 살고 싶었다 속살을
물 위에 싣고 춤추고 싶었다
꿈이 소박하면 현실은 속박쯤 되겠지
결국은 힘겨운 짐 하나 벗으러 가는 길
희망은 낱개로 흩어진 미세한 먹이에 불과한 것이다
최초의 본능으로 미련을 버리자
또한 운명의 실패를 감아가며
덤프 트럭의 괴력을 흉내라도 내자
아니다 아니다 그렇게 쉬운 것은
물 속에 잠겨 있어도 늘 제자리는 안 될걸
쉽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까?
입으로 깨물면 부서지고 마는
연체의 껍질을 쓰고도
살아갈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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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7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5-09-07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등에 짊어진 것이 집인가요? 짐인가요?

검둥개 2005-09-07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께서 좋아하는 시였군요. ㅎㅎ 덩달아 제가 기쁩니다. ^^ 회복하실 때까지 푹 쉬세요 ;)

잉크님 지금 뭔가 시어를 잘못 옮긴게 있나 저를 쫄게 하고 계십니다...
그런가요? =3=3=3
 

   이 유명한 파운데이션과 로봇 시리즈를 읽기 전에도 물론 아시모프는 내게 유명인이었다. 
   워낙 글을 많이 쓴 사람이라 그랬겠지만, 심지어 아시모프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짧게 쓴
   과학에 대한 글을 영어 과외 시간에 가르친 적도 있었다. 사실은 그 때쯤 내가 심심풀이로
   읽던 책이어서 그랬던 것인데 읽는 아이들도 상당히 좋아했던 생각이 난다. (내용은 생각
   이 잘 안 난다. >.<)  하여간에 지난 주에 대망의 파운데이션 삼부작을 다 읽고 이번에는 
   <아이 로봇>을 읽었다.  (10권이 아니라 3부작인 이유는 번역본을 못 구해서 영어로 읽었
   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속도가 되게 더디었다. 상당히 재미있었는데도 불구하고 ㅠ_ㅠ)

파운데이션은 장구한 기간을 다루다 보니 주인공이 자주 바뀐다. 등장 인물에 집착하는 나에게는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배경이 깔리고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책을 찾는 고전적인 방식과는 좀 다르게 소설이 전개되어서, 약간 뜬금 없기도 하면서 또 은근히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세 권이 다 골고루 재미있었다고는 못 하겠고 3부작의 마지막 권의 그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다. 두번째 파운데이션의 비밀이 풀리는 부분이 가장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역시 <아이 로봇>을 다 읽은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파운데이션 시리즈보다 아이 로봇 시리즈가 나한테는 더 매력적인 듯. (아마 내가 역사에 상당히 무관심한 것과 관심이 있을지도 모른다. 흑.)

  중학교 시절 이래로 진지하게 공상과학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는 나도 로봇의 3원칙은 숙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중학생 시절 이전에 이미 아시모프의 청소년판으로 압축된
  소설을 읽었음에 분명하다. 비록 무슨 제목으로 뭘 읽었는지는 까마득하지만. (광음사에서
  나온 전집은 다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로봇의 3원칙이 생각보다 훨씬 심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봇이 나오는 소설이니까 로봇과 인간의 대결이겠거니 생각하기 쉬운데,
  영화 <아이 로봇>을 보고 줄거리를 예측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실망을 안겨 준다. 
  표지에 윌 스미스가 떡 하니 박혀 있지만, 사실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의 첫번째 소설인
  이 책은 로봇의 발전사와 그 과정에서 발생한 흥미로운 일들이 서술되며, 형사 따위는 나오
  지 않는다. 형사는 이 시리즈의 두번째 권에서부터 등장하는 듯 한데 제목이 영 영화용으로는 별로이시다. 그래서 아마 영화제작자들이 첫번째 권의 제목을 영화에 붙인 모양이다.

<아이 로봇>은 무척 흥미진진하고 나름대로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준다. 무엇보다도 3원칙에 따라서만 행동하도록 만들어진 로봇은 바람직한 인간의 모델이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바람직한 인간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하고, 주어지는 임무를 성실히 행해야 하며, 그리고나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로봇이냐 인간이냐 하는 의심이 제기될 때, 그 인간이 충분히 훌륭하다면 결코 그 인간의 진짜 정체--로봇인지 인간인지--를 밝히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희한한 상황까지 등장한다.

책의 마지막에 로봇의 지능이 발전을 거듭한 나머지 인간에게 해가 될 만한 사회의 요소를 미리 제거하는 부분도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로봇이 인간의 자유를 박탈해간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인간은 자기에게 해가 되는 것과 득이 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다른 읽어야 할 책도 많이 쌓여 있어서 두번째 책을 언제 읽을지 모르겠지만 벌써 내심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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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2005-09-07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장르가 아주 다양하시군요. 전 아이로봇 영화로 보다가 끝까지 못봤어요. 로봇의 움직임이 어찌나 정이 안가든지요..

마태우스 2005-09-07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모프, 제가 꼭 읽어봐야 할 작가 리스트에 있죠. 그럼 아직도 아시모프를 안읽었단 말야? 네... 죄송합니다... 책은 있는데요...

검둥개 2005-09-07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리님 저도 그 영화는 특수효과 보는 재미로 봤다는... 그 영화에 나오는 로봇들은 좀 정이 안 가죠. 근데 책에 나온 로봇들은 상당히 정이 가더라고요. ^^ 원래 공상과학 장르는 잘 모르는데 요즘 무슨 바람인지 몰라요 ;)

마태님 저처럼 읽어야 할 책으로 언덕을 짓고 계신 것이 아니신지요... ^^;;;

잉크냄새 2005-09-0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갑자기 기억이 꽉 막히네요...

검둥개 2005-09-07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 ㅎㅎ 저도 책에 나오는 걸 직접 보면서야 아, 그랬구나, 하고 기억을 했더랍니다. ^^

panda78 2005-09-07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봇 시리즈도 재밌어요. ^^ 그리고 자서전도 무지 재밌던데요. ^ㅂ^
단편집도 재밌는 거 너무 많고, SF아닌 풍자소설 중에서도 아주 재밌는 게 있었어요. 로빈 윌리엄스 주연으로 영화화된 바이센테니얼 맨도 꽤 재미있었고, 폴 실버버그였나? 하고 공저한 나이트폴도 아주 명작이었죠. 우리나라에서 품절된 많은 책들, 원서로는 거의 다 구할 수 있겠죠? 아시모프 열풍이 불면 좋겠건만.. (SF특강도 아주 재밌어요)

panda78 2005-09-07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F특강..

악마가 나왔던 풍자소설은 [흰눈 사이로 달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원제는 뭔지 모르겠네요. 워낙 오래 전에 읽어서..


조선인 2005-09-08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저도 아시모프 읽기에 동참해야 할 거 같은... >.<

검둥개 2005-09-08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판다님 아시모프 전문가시군요. 저는 겨우 <파운데이션>하고 <아이 로봇>만 읽은 초보자랍니다. ^^ 갑자기 로봇에 막 정이 가기 시작하고 있어요. 저 <바이센테니얼 맨> 표지는 되게 멋있네요. @.@

조선인님, 그죠? ㅎㅎ 동참하시죠~~~ ;)

panda78 2005-09-08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이센테니얼 맨은 내용도 꽤 감동적이에요.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 결국 인간으로 눈을 감다. ^^

검둥개 2005-09-08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이 센테니얼 맨도 읽고 싶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앗, 저는 왜 갑자기 아톰이랑 마루치 아루치가 생각나는 거죠? =3=3=3 ^^
 

오늘 보니, 이것 참 멋진 연애시네요.

농담 (유 하)


그대 내 농담에 까르르 웃다
그만 차를 엎질렀군요
미안해 하지 말아요
지나온 내 인생은 거의 농담에 가까웠지만
여태껏 아무것도 엎지르지 못한 인생이지만
이 순간, 그대 재스민 향기 같은 웃음에
내 마음 온통 그대쪽으로 엎질러졌으니까요
고백하건데 이건 진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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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5-09-06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런데 왜 전 닭살이 스멀거리면서 올라올까요?

로즈마리 2005-09-07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전 좋은데요?

검둥개 2005-09-0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렇게 반응이 다를 수가요 ^^;;; 저의 반응은? ㅋㅋ 비밀입니다.

릴케 현상 2005-09-0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치뽕이다~고 생각하지만...제3자일 때는 다 그런 거고요^^

검둥개 2005-09-07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산책님 원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달이라잖아요. ㅎㅎ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황인숙 )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무관심의 빵조각이 퉁퉁 불어 떠다니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음습한 호수에서.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우리는 철새처럼.

플라타너스야, 너도 때로 구역질을 하니?
가령 너는 무슨 추억을 갖고 있니?
나는 내가 추억을 구걸했던 추억밖에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굴욕스런 꿈속에 깨어 있다 잠이 들고
자면서도 나는 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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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9-0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 참 슬픈 시예요.
자면서도 졸립다니!
추억을 구걸했던 추억밖에 갖고 있지 않다니!
다시 읽어도 좋습니다.^^

플레져 2005-09-0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나도 추억을 구걸했던 추억밖에 없으니...ㅠㅠ

검둥개 2005-09-05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저도 자면서도 졸린데요... 시적으로 그런 게 아니고 문자 그대로 그래서 곤란해요 ^^;;;

플레져님 이 시를 읽으니 저의 과거가 전부 추억을 구걸하던 추억인 것만 같아 마음이 좀 저릿저릿했더랍니다. ;)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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