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명한 파운데이션과 로봇 시리즈를 읽기 전에도 물론 아시모프는 내게 유명인이었다.
워낙 글을 많이 쓴 사람이라 그랬겠지만, 심지어 아시모프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짧게 쓴
과학에 대한 글을 영어 과외 시간에 가르친 적도 있었다. 사실은 그 때쯤 내가 심심풀이로
읽던 책이어서 그랬던 것인데 읽는 아이들도 상당히 좋아했던 생각이 난다. (내용은 생각
이 잘 안 난다. >.<) 하여간에 지난 주에 대망의 파운데이션 삼부작을 다 읽고 이번에는
<아이 로봇>을 읽었다. (10권이 아니라 3부작인 이유는 번역본을 못 구해서 영어로 읽었
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속도가 되게 더디었다. 상당히 재미있었는데도 불구하고 ㅠ_ㅠ)
파운데이션은 장구한 기간을 다루다 보니 주인공이 자주 바뀐다. 등장 인물에 집착하는 나에게는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배경이 깔리고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책을 찾는 고전적인 방식과는 좀 다르게 소설이 전개되어서, 약간 뜬금 없기도 하면서 또 은근히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세 권이 다 골고루 재미있었다고는 못 하겠고 3부작의 마지막 권의 그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다. 두번째 파운데이션의 비밀이 풀리는 부분이 가장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역시 <아이 로봇>을 다 읽은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파운데이션 시리즈보다 아이 로봇 시리즈가 나한테는 더 매력적인 듯. (아마 내가 역사에 상당히 무관심한 것과 관심이 있을지도 모른다. 흑.)

중학교 시절 이래로 진지하게 공상과학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는 나도 로봇의 3원칙은 숙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중학생 시절 이전에 이미 아시모프의 청소년판으로 압축된
소설을 읽었음에 분명하다. 비록 무슨 제목으로 뭘 읽었는지는 까마득하지만. (광음사에서
나온 전집은 다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로봇의 3원칙이 생각보다 훨씬 심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봇이 나오는 소설이니까 로봇과 인간의 대결이겠거니 생각하기 쉬운데,
영화 <아이 로봇>을 보고 줄거리를 예측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실망을 안겨 준다.
표지에 윌 스미스가 떡 하니 박혀 있지만, 사실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의 첫번째 소설인
이 책은 로봇의 발전사와 그 과정에서 발생한 흥미로운 일들이 서술되며, 형사 따위는 나오
지 않는다. 형사는 이 시리즈의 두번째 권에서부터 등장하는 듯 한데 제목이 영 영화용으로는 별로이시다. 그래서 아마 영화제작자들이 첫번째 권의 제목을 영화에 붙인 모양이다.
<아이 로봇>은 무척 흥미진진하고 나름대로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준다. 무엇보다도 3원칙에 따라서만 행동하도록 만들어진 로봇은 바람직한 인간의 모델이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바람직한 인간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하고, 주어지는 임무를 성실히 행해야 하며, 그리고나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로봇이냐 인간이냐 하는 의심이 제기될 때, 그 인간이 충분히 훌륭하다면 결코 그 인간의 진짜 정체--로봇인지 인간인지--를 밝히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희한한 상황까지 등장한다.
책의 마지막에 로봇의 지능이 발전을 거듭한 나머지 인간에게 해가 될 만한 사회의 요소를 미리 제거하는 부분도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로봇이 인간의 자유를 박탈해간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인간은 자기에게 해가 되는 것과 득이 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다른 읽어야 할 책도 많이 쌓여 있어서 두번째 책을 언제 읽을지 모르겠지만 벌써 내심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