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장어집 풍경 (이상호)


곰삭은 낙엽에서 청국장 냄새가 나면
스스로 허물 벗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고달프고 지친 하루를
벌거숭이 속살로 비비대면
서러움도 아픔도 쌈장에 싸여
한입에 어제로 넘어간다.

소주 몇 잔에 숯불처럼 달아오른
육덕 푸짐한 여자
축 늘어진 곰장어를 가위로 장둥장둥 자르며  
그 인간, 바람을 피웠으면 들키지나 말지
연기가 맵다고 눈을 닦는다.
움찔하던 나도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다.

옥죄던 넥타이 헐렁하게 풀고
김과장 이부장 거래처 박사장
석쇠에 올려놓고 지글지글 볶아대던
샌님 같은 남자,
고개를 떨군며 그래도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술잔을 비운다.
나도 영혼을 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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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0-23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덕 푸짐한 여자...접니다. 호호~
이 시를 읽으니 곰장어 굽는 냄시가 풍기는 듯해요.^^

비로그인 2005-10-2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요 몇일 바쁘셨슈? 곰장어 먹고싶네요....ㅎㅎㅎㅎ

검둥개 2005-10-24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호호 곰장어집 주인 하시면 인기 좋으실 텐데 ^ .^
근데 전 곰장어 한 번도 못 먹어본 거 같아요 ~~ 쩝.

별사탕님 아으 사는 게 아주 죽갔어요. 요새 일이 넘 많어서 서재활동도 못하구 엉엉. 곰장어 정말 맛있나 보죠? @.@ 먹어보구 싶어요.

2005-10-24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5-10-26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제가 이제서야 서재에 들어와서 댓글 남겨요. ^ .^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꼭 시도해볼께요. 제가 컴맹이라 잘 될지 모르겠지만 ^^;;; 곰장어가 흐물흐물한 생선인가 보네요. 전 안 먹어봤어요. 실은 ;) 전 갈치랑 고등어자반을 엄청 좋아해요 호호

로드무비 2005-10-26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쁘시다고요? 요즘 어쩐지 뜸하시다 했죠.
빨리 바쁜 일 끝내고 서재활동 왕성히 하셔야 하는데......
맛난 것 드셔감시롱 일하세요.^^

검둥개 2005-10-2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 저처럼 게으르고 산만한 사람한테 일이 쏟아지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저두 빨리 서재로 돌아와서 놀았으면 좋겠어요.
먹기만 열심히 먹으니 가뜩이나 텔레토비인 몸매가 점점 더 곰형으로 변해가고 있답니다. ^ .^;;;

paviana 2005-10-26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안 오셔서 무슨일 있나 했어요..요즘은 맨날 나오시던 분들이 자주 안보이니까...하여간 심란해요..그래서 님 글 기다리고 있어요..

검둥개 2005-10-26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파비아나님 제가 요새 완전 하숙생처럼 살아요. ㅠ.ㅠ;;;
힘 좀 내고 씩식하게 살아야되는데 말예요. 출석부에 도장 자주 찍을께요.
들러주셔서 고마워요. ^_____________^
 

제프리 디버의 The Stone Monkey를 다 읽었다. 무지하게 오랜만에 읽어본 탐정소설이었다. 재밌었다. ^^

주인공은 링컨 라임, 아멜리아 삭스, 그리고 중국 형사 소니 리. 악한은 많은 돈을 받고 불법이민을 하려는 중국인들을 미국으로 밀입시키는 "귀"라고 불리우는 중국인이다. 거듭되는 반전과 법의학적 분석에 바탕을 두고 진행되는 수사가 소설의 흥미를 더해준다.

일단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손에 땀을 쥐게하는 스릴러!
(탐정소설 리뷰를 써본 적이 없어서 약장수 풍으로 흘러간다 ^^;;;)

오늘 동네 헌책방에 가서 <코핀 댄서>도 사왔다.
 
이쯤 되니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고 하는 <암리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군. ㅠ_ㅠ  

오, 나는 탐정소설을 좋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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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0-23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이 동시에 <코핀 댄서> 리뷰를 올리셨는데......
탐정소설이 재밌긴 하죠.^^

검둥개 2005-10-23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탐정소설은 읽을 땐 정말 재밌는데 읽고 나선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제가 표현력이 짧아서 그런가봐요. 전 방금 차이밍량 감독 영화를 찾아봤는데 여기는 <구멍>밖에 안 나와 있네요. 쩝. 로드무비님이 소개해주신 구름 영화를 볼라 했는데 말예요. ;)

날개 2005-10-23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탐정소설 리뷰가 쓰기 힘들죠.. 여차하면 스포일러가 되어버리니...ㅎㅎ

물만두 2005-10-23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벌써부터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구요^^

검둥개 2005-10-24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맞아요. 제가 하고 싶던 말이 바로 그것이었답니다. ^ .^

이게 다 만두님이 책을 소개해주신 덕분이 아니겠어요? ㅎㅎㅎ ;)
 

이 거지발싸개같은 넘의 드러운 가을! 노란 은행잎이라고는 단 한 잎도 보이지 않는 이 운치 없고 말라비틀어진 서양의 가을! 똑똑하게 사는 것도 싫고 이름 날리며 사는 것도 싫고 광적으로 사는 것도 싫고, (그래 이미 글렀다는 걸 알고 하는 말이다, 어쩔래, 어쩔래) 졸렬하고 평범하고 안전하게 살고 싶은 나 같은 속물의 머리까지 복잡하게 만드는 썩을 넘의 가을! 죽고 잡냐? 한 판 해보자는 거냐? 댐벼라, 다 댐벼!! 아뵤~~~!! 



늦가을 (정현종)

가을이구나! 빌어 먹을 가을
우리의 정신을 고문하는
우리를 무한 쓸쓸함으로 고문하는
가을! 원수같은.

나는 이를 깨물며
정신을 깨물며, 감각을 깨물며
너에게 살의를 느낀다.
가을이여! 원수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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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고 있는 사람 (허수경)

 

  환멸아, 네가 내 몸을 빠져나가 술을 사왔니?
  아린 손가락 끝으로 개나리가 피는구나
  나, 세간의 블록담에 기대 존다
 
  나, 술 마신다
  이런 말을 듣는 이 없이 했었다
  나, 취했다, 에이 거지같이
 
  한 채의 묘옥과
  한 칸의 누울 자리
  비천함!
  아가들은 거짓말같이 큰 운동화를 사신었도다
 
  누군가 노래한다
  날 데려가다오, 비빌 곳 없는 살 속에
  해 저문 터진 자리마다 심란을 묻고
  그럴 수 있을까,
  날 데려가다오
  내 얼굴은 나를 울게 한다
 
  아팠겠구나, 에이, 거지같이
  나 말짱해, 세간의 블록담 위로
  구름이 흩어진다 실밥같이 흩어진
  미싱 바늘같이 촘촘한
  집집마다 걸어놓은 홍등의 불빛, 누이여
  어머니,
  이 세간 혼몽에 잘 먹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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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10-1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수경 시인의 새 시집이 나와서 오랜만에 펼쳐봤습니다.



언젠가 인터넷 항해를 하다 발견하고 님께 드려야지 했는데... 이제사 올립니다.
님의 해리 보단 못하지만 ^^


검둥개 2005-10-18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래요? (귀가 쫑긋 ^ .^) 반가운 소식이네요! 그리고 와, 플레져님! 이 그림 엄청스레 좋은걸요. 저 털에 가린 눈, 바로 제 스탈이에요. 타이어 자국인지 경운기 자국인지 자전거 바퀴 자국인지 저 길도 무척 친근하게 느껴져요. 감사합니당 ^______^
 
 전출처 : kimji > 삼십대

곽윤주 (1977 - )
Lost in Desire series
digital C-print, 2005

 

 

   나 다 자랐다, 30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나, 30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제발 날아가지마), 30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가 잠시 들려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고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30대, 나 흐르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

심보선, 30대, <세상에 없는 책>, 작가, 2005

 

       

 

  가슴 한 복판에 박히는 언어가 있었다. 
         다행이다.
         아직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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