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있는 사람 (허수경)

 

  환멸아, 네가 내 몸을 빠져나가 술을 사왔니?
  아린 손가락 끝으로 개나리가 피는구나
  나, 세간의 블록담에 기대 존다
 
  나, 술 마신다
  이런 말을 듣는 이 없이 했었다
  나, 취했다, 에이 거지같이
 
  한 채의 묘옥과
  한 칸의 누울 자리
  비천함!
  아가들은 거짓말같이 큰 운동화를 사신었도다
 
  누군가 노래한다
  날 데려가다오, 비빌 곳 없는 살 속에
  해 저문 터진 자리마다 심란을 묻고
  그럴 수 있을까,
  날 데려가다오
  내 얼굴은 나를 울게 한다
 
  아팠겠구나, 에이, 거지같이
  나 말짱해, 세간의 블록담 위로
  구름이 흩어진다 실밥같이 흩어진
  미싱 바늘같이 촘촘한
  집집마다 걸어놓은 홍등의 불빛, 누이여
  어머니,
  이 세간 혼몽에 잘 먹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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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10-1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수경 시인의 새 시집이 나와서 오랜만에 펼쳐봤습니다.



언젠가 인터넷 항해를 하다 발견하고 님께 드려야지 했는데... 이제사 올립니다.
님의 해리 보단 못하지만 ^^


검둥개 2005-10-18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래요? (귀가 쫑긋 ^ .^) 반가운 소식이네요! 그리고 와, 플레져님! 이 그림 엄청스레 좋은걸요. 저 털에 가린 눈, 바로 제 스탈이에요. 타이어 자국인지 경운기 자국인지 자전거 바퀴 자국인지 저 길도 무척 친근하게 느껴져요. 감사합니당 ^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