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에서 <오버 더 레인보우>를 보고 있으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그 영화 속 사진 동아리는 그렇게 다른 동아리들과 조금도 달라보이지 않는지. 대학 시절에 나는 학보지의 기자 노릇을 잠시 했었는데 그 때 사진부를 가겠다고 우겨서 사진부 생활을 했다. 부서 선배들이 전부 사진 동아리에 속해 있길래 전통계승 차원에서 얼결에 거기에도 가입을 했다. 그런데 사진동아리는 다른 동아리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사진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려면 자기 사진기가 하나 있어야 하고 그 사진기는 렌즈가 손톱 두 개 만한 자동 사진기가 아니라 여러가지 조작이 전부 수동으로 가능하고 렌즈 탈부착이 가능한 그러니까 니콘 FM2 같은 그런 종류의 사진기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사진기 당시 가격은 3-40만원이 거뜬히 넘어갔다. 망원렌즈 하나 사고 스트로보 붙이면 필요한 지출범위는 한없이 넓어지고...

운좋은 나는 신문사 소유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얼치기 멤버 노릇을 좀 하다가 말았다. 사진 동아리 노릇을 하려면 필름이며 인화액, 정착액, 인화지 사는 데 돈이 은근히 들어가는데 아무래도 그걸 다 대기가 좀 힘들었던 데다가 가정형편이 나와는 다른 아이들이 많아서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안 그랬다면 사진을 좀더 많이 찍었을 텐데. 이러저러 해서 나의 사진 동아리 생활은 별 일없이 한 학기 쯤 후에 막을 내렸다.

두 해 전쯤 남편이 큰 돈을 투자해서 캐논 디지털 카메라를 샀는데 영 장난감 같고 좀처럼 맘에 들지 않았다. 몇 달 전에 그 카메라가 부서졌다. 새로 사야 하나 하면서 인터넷으로 조사를 좀 해보니까 그 새 기술이 발전하야, 내가 예전에 쓰던 종류의 그런 카메라와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며 렌즈의 탈부착도 가능한 그런 디지탈 카메라도 있는 것이었다. 수동조작의 범위가 물론 내가 원하는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지만 셔터 누르는 시점과 사진이 찍히는 시점 사이의 시간차가 없고 조작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맘에 들었다. 불행히도 비싸서 당장은 살 수 없는 가격이었다.

영화 속의 사랑 타령은 별로 와닿지 않았으나 옛 카메라 생각이 많이 났고 오래전에 찍은 흑백필름들이 그리워졌다. 

기술이 더 빨리 더 빨리 발전해서 빨리 DSLR 카메라 가격이 팍팍 내렸으면 좋겠다.
도움이 된다면야 카메라 회사 연구소에 가서 인턴 노릇이라도 해주고 싶다.
그렇게 해서 가격이 내린다면은
.
왜 사진기는 그렇게 꼭 비싸야만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오디오도 그렇고.
꼭 돈을 들여야만 즐길 수 있는 종류의 취미가 있다.

아니면 열성이 부족해서 괜히 더 돈 들이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먹는 데는 눈 딱 감고 지출도 잘 하면서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출근길에 내 앞으로 걸어가는 아주 몸매가 날씬한 청년을 보았다. 곱상하게 머리를 빗고 유행에 딱 맞는 차림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소위 man bag이라고 불리우는 남성용 핸드백을 맨 것이 눈에 확 들어왔던 것이다. 일본에 가면 대다수의 남성들이 유행에 그렇게 민감하고 패셔너블하다던데 하긴 미래의 남성들은 점점더 그렇게 여성화되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노동직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점점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서 일과를 시작하고 끝내기 일쑤이니까. 
 
Joe Haldeman의 1974년도 공상과학 소설 The Forever War는 그런 미래를 보여준다. 이성애가 법으로 금지되고 모든 인간이 최적의 유전작 결합이라는 규칙에 따라 시험관 수정으로 생산되는 미래. 그로부터 더 나아간 미래를 구성하는 인간들은 모두 최적의 유전자 구성에 바탕을 둔 몇몇 소수의 복제형, 즉 클론으로 상상된다.

책의 뒷면에는 the Forever War는 액션으로 가득찬 박진감 넘치는 공상과학의 고전이라고 쓰여 있다. 기대를 잔뜩 하고 집어들었건만 소설의 주인공이 전혀 미래스럽지도 공상과학스럽지도 않은 75년생! 소설이 시작되는 연대는 보통 소설에서도 회고의 대상이 되는 1990년대! 하지만 소설은 3143 년도까지 커버하므로 때이른 절망은 금물이다.

주인공 윌리암 만델라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학교 선생이나 해서 먹고살 생각을 하고 있던 이십대의 청년인데 갑자기 터진 지구 대 타우론이라는 미스테리한 외계종과의 싸움에 그만 군바리로 징집되고 만다. 지구의 열혈장성들은 파워풀한 타우론과의 싸움에 대비해서 지상군을 위한 나름대로 정교한 수트도 만들어내고 하지만 아무래도 전쟁의 성격이 우주전쟁이다보니 지상군의 가장 큰 목표는 진지를 건설하는 일이다. 따라서 보병으로 징집된 만델라의 훈련은 주로 중력, 온도, 지질 등의 모든 조건이 매우 괴상한 외계 행성에서 거추장스럽기 그지 없는 수트를 입고 엉금엉금 움직이며 혹시라도 수트에 구멍이나도 날까봐 절절매며 타우론의 공격을 막아내는 동시에 자재를 옮기고 날라 진지를 짓는 것에 집중된다. 물리학도 좋았지만 토목공학을 공부했더라면 더 좋았을 불쌍한 만델라. 게다가 우주를 떠돌며 국방의 의무를 지키는 동안 지구의 시간은 훌쩍훌쩍 흘러 의무를 마치고 귀대할 즈음엔 지구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신세가 된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시간이 훌쩍훌쩍 흐르는 동안 월급에 이자라도 붙어서 부자가 되어 나머지 여생을 윤택하게 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인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외계의 적 타우론이 심지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려져 있다는 사실. 갖가지 살상법을 공부하지만 과연 타우론에게 인간 중심의 해부학이 적용될지조차 알 수 없다. 지구의 장성들은 별 고민 없이 모든 보병들에게 미리 살인마의 정신상태를 유도하는 최면을 걸어두었다가 전투 직전에 그 최면을 이용한다. 무시무시한 괴물--타우론으로 생각되는--들이 무고한 여인들과 아이들을 닥치는대로 죽이는 환영에 가득찬 보병들은 으아아, 괴성을 지르며 말로만 듣던 저 미스테리한 타우론들과 싸우러 나가는데. 과학기술이 인류보다 열배는 앞서 있다는 타우론들은 정작 도살장의 소마냥 반항도 못 고 최면에 눈이 뒤집힌 인간 보병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피바다로부터 간신히 살아남아 지구로 돌아온 만델라. 지구는 그 사이에 전시경제가 지배하는 세계로 변해 있었다. 화폐단위는 전세계 공통의 "킬로 칼로리". 전지구를 통제하는 기구는 일종의 군산복합체가 된 UN이다. 수십년 동안 쌓인 (우주여행으로 인해 만델라가 실제로 먹은 나이는 4살이지만) 만델라의 월급은 그를 갑부로 만들어주기는 커녕 겨우 몇 년 먹을 칼로리의 양으로밖에는 전환되지 않고, 열심히 배웠던 물리학은 수십년의 세월 속에 낡아빠진 지식으로 전락해 있다. 퇴역군인 만델라가 얻을 수 있는 직업은 기껏해야 보디가드. 직업의 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누구나 통과할 수 있는 학교를 다니고 그 이후에는 실업자로 전락해 유엔에서 배급하는 칼로리 쿠폰을 받아 연명한다. 어디를 가나 폭력이 횡행해 밖에 나가려면 보디가드를 고용해야만 하는 것이 상식으로 통용되고 인구조절에 편리하다는 이유로 동성애가 대다수에 적용되는 룰이 만델라를 맞이한 지구의 상황이다. 

결국 만델라는 군에 재입대해서 다시 싸움터로 나간다.

두 번째 전쟁에서는 지휘관의 결단(!)으로 타우론들과 싸우는 대신에 귀중한 정보를 입수해 본부로 돌아오느라 수백년을 보낸다. 

두번째로 귀대해보니 이제는 이성애는 법으로 금지된 데다가, 언어조차 너무 변해서 만델라가 거의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러저러해서 다시 한 번 만델라가 싸움터로 나갈 때는 우주여행으로 인한 시간 덕에 별로 경험도 없는 채로 졸지에 지휘관으로 승진을 한다. 전쟁 개시 이래 유일하게 살아 남은 병사라는 후광과 함께. 하지만 부하졸병들은 만델라 때문에 고어를 배워야 하고 게다가 너무 오래전 사람이라 이성애자라는 희한한 종류의 인간인 지휘관이 못마땅스럽기만 하다.

죽네사네 고생을 해서 세번째 출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물론 대부분의 병사는 전사하고) 한 줌 남은 부하들을 이끌고 귀대하는 때는 3000년대. 전인구는 이제 모두 복제인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행한 것은 그 덕분에 드디어 타우론들과의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 알고보니 타우론들은 인간들보다 훨씬 전에 문명의 진보를 이루어 인간들과 처음 전쟁을 개시했을 때 이미 전 종족이 복제 타우론인 상태였다. 무제한적 살상이 이루어진 길고 긴 우주전쟁 내내 인간들과 타우론들은 전혀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는데. 처음으로 복제인간 대표가 타우론을 마주하자 클론들 사이에만 가능한 대화가 시작된다. 

타우론들의 첫 질문은 "왜 너희는 이 전쟁을 시작했느냐?"

호전주의자들은 작동실패로 야기된 우주선의 파선이 마침 그 때 옆을 지나가던 타우론들의 공격이라 주장했고 그리하여 그 길고긴 수천년의 우주전쟁이 시작되었었다는 것이다. 그 주장의 박약함을 논증하던 평화주의자들은 모두 무시되었다고.

 The forever war는 저자가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후에 자신의 경험을 살려 쓴 소설이라고 한다.
베트남전의 공상과학 버전쯤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7-05-24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을 재미있게 읽었어요...특히 바로 전에 스타쉽 트루퍼스를 읽고 바로 이 책을 잡았거든요..^^

검둥개 2007-05-24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쉽 트루퍼스와 이 소설이 종종 전쟁 찬성파와 반대파를 대표하는 공상과학소설로 읽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시간이 되면 그 책도 읽어봤으면 하는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어요. ^^
 


공부는 안 하고 시간과 나이만 축내던 시절에 젊은 헤밍웨이의 파리 체류의 기록인 moving feast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왜 제목이 moving feast인지 설상가상으로 moving feast는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리 저리 찾아보니 이동연회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된다는 것은 알아냈는데, 책에서 특별히 먹는 이야기가 유독 많이 나온 것도 아니어서 의문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그로부터 오년쯤 후 직장에서 나는 moving target이라는 표현을 우연히 듣게 됐다. 아무리 말끔하게 정리는 한다고 해도 시간이 좀 지나면 금새 여러 데이터베이스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기록엔  시간의 경과와 함께 오류가 생겨나게 되니 기록의 정확성이라는 것은 결코 완벽하게는 성취될 수 없는 늘 움직이는 종류의 목표라는 말이었다.

오늘 점심을 먹고 직장으로 걸어오는데 눈을 아프게 하는 오월의 햇볕이 지면을 데우고 있었다. 왠지 허리가 굽은 노인들처럼 양달에 오래 동안 앉아 있으면 좋을 듯 싶은 그런 오후였다. 너무 밝아서 버석거리는 일광이 오랜 전에 읽었던 헤밍웨이의 그 책 제목을 생각나게 했다. 이동 연회라는 그 제목은 늦은 봄날의 일광처럼 그렇게 강렬한,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 젊은 시절에 대한 비유였다.

지나가버린 연회의 기억처럼 생생한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 또 있을까?
어떤 종류의 기억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더 생생하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치니 2007-05-23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

blowup 2007-05-23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시간과 나이만 축내는 시절. 좀 다른 건 그걸 몹시 의식하고 있어요.
너무 낡아서 버석거리는 일광이라는 표현. 아주 멋져요.

검둥개 2007-05-24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 우히, 감사합니다.
잘 지내셨어요?

나무님, 저도 늘 그걸 의식하고 있어요.
게다가 축나는 속도는 매년 배가 되는 거 같어요.
에구에구...
하는 일은 없구 시절은 가구. :)
 


갑지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봄바람?

몇 주 전 오후 직장에서 오 분 거리에 있는 화원에 가서 아주 조그만 오레가노 화분을 사왔다. 무작정 허브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심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은 향기가 그윽하고 맛도 대단히 좋은 베이질이었으나, 화원에 있는 허브는 오레가노 뿐이었다. 나는 공터에 흔해 빠진 잡풀처럼 밖에는 보이지 않는 그리고 가격이 엉뚱스럽게 높이 매겨진 오래가노 화분을 사들고 득의양양해서 직장으로 돌아왔다. 꼭 오레가노 화분이 마음에 깊이 흡족해서라기보다는 직정한 일을 단숨에 해치웠다는 엉뚱한 승리감에 취해서.

오래가노를 햇볕이 잘 드는 창문가에 두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어가며 돌보았지만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 오레가노가 무슨 맛을 내는지 전혀 감감했다. 잡풀 같은 모양새도 별로 폼이 나지 않았다. 오레가노 화분은 햇볕 짱짱한 창문가에서 더위 먹은 이 마냥 비실거렸다.

일주일 쯤 후 시내에서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내 화원에 들어갔다. 그제서야 나는 직장 주변의 화원이 별 것도 아닌 허브를 통용가보다 두 배쯤 높은 가격을 매겨 팔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운이 좋아서 이번에는 단번에 베이질을 발견했다. 게다가 이미 키도 한 십칠센티미터쯤 되어 훤칠해보이는 것이 아주 맘에 들었다. 화분의 가격은 사불. 설사 며칠 있다가 운 없이 식물이 죽는다고 해도 남는 베이질을 요리용으로 써먹는다고 하면 밑질 것이 별로 없는 가격이었다.

내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베이질은 창문가에서 아주 잘 자라났다. 빨리 키워서 베이질 잎을 음식에 넣어먹을 꿈에 부푼 나는 집안을 다 뒤져서 일년 전쯤 슈퍼에서 사둔 액체 비료를 찾아냈다. 매일 주는 물에 한 두 방울씩 섞어서 주니까 이파리 커지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줄기 사이로 아카시아 잎처럼 잘디잔 여린 잎들이 계속해서 돋아났다. 나는 어린 잎들에게 햇볕을 쬐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큰 잎들을 대담하게 따내어서 볶음밥이나 야채볶음에 썰어넣었다. 여전히 비실거리는 오레가노는 그냥 관상용으로 보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그러다가 며칠 동안 비가 내려서 이번에는 베이질이 비실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대단한 정원가여서가 아니라 햇빛과 비료 덕분에 잘 자라던 베이질은 궂은 날이 지속되자 조로한 이처럼 이파리들이 쪼글쪼글해지고 몸집까지 줄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베이질을 부엌의 카운터에 장착된 형광등 아래 두고 출근하기도 했다. 비가 드디어 그치자 얼마나 안도가 되었는지.

비가 오는 바람에 더불어 오레가노에 대한 많은 것을 덩달아 배웠다. 오레가노는 쨍쨍한 햇볕을 오히려 좀 부담스러워해서 흐린 날에 오히려 잘 자라났다. 일광 아래서 해바라기를 하며 물도 많이 먹어대는 베이질과는 달리 조금만 물을 많이 주면 오레가노는 금방 여분을 토해냈다.

베이질과 오레가노는 성격이 완연히 다른 자매랄까 하나는 키가 크고 성격도 활달하고 짙은 향수도 멋지게 뿌릴 줄 아는 동생이라면 다른 하나는 비오는 날 음악이나 듣고 어디 차려입고 외출하기보다는 대충 아무 옷이나 입고 집에서 뒹구는 걸 좋아하고 성격은 소탈하면서도 은근히 쌀쌀한 데가 있는 언니 같다.

베이질은 어디다 넣어 먹어도 맛이 있지만, 오레가노는 토스트 위에 뿌려먹으면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다. 오레가노는 날로는 좀 너무 떨어서 신선할 때보다 오히려 좀 말라서 건건해져야 먹기가 좋다고 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5-23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5-23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7-05-24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진짜요?
저두 쓰면서 왠지 오레가노가 더 멋지다구 생각했어요.
:-)

속삭님 꼭 들려주세요.
소모임을 만드시면 가입도 할래요.
저보다 훨씬 많은 종목을 키우시는군요.
창문을 닫아두면 좋지 않은 줄은 몰랐어요. ^^;
 

직장 근처의 옷가게가 장소이전을 한다면서 일주일 넘게 창고정리 세일을 하고 있길래 혹시나 하고 들어가봤더니 저번주에는 30% 세일이던 것이 그 새 70% 세일로 바뀌어 있었다. 옷걸이에 잔뜩 걸린 티셔츠가 눈을 끌길래 가 봤더니 참으로 희한한 디자인. 속이 밖으로 뒤집힌 디자인이었다. 에구구 밉상스러워라, 하면서 뒤집어 보는데 의외로 안쪽은 오히려 멀쩡하게 보이는 게 아닌가. 밖으로 뒤집으니까 아주 멀쩡한 검정 면 티셔츠였다. 왜 직원들이 멀쩡한 티셔츠를 하나도 아니고 수십개씩 뒤집어진 채로 걸어놨을까 의아해하면서 카운터 위로 길게 늘어선 줄에 끼어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검은 티셔츠를 하나 사왔다.

오늘 새 티셔츠를 입고 보니 다 맘에 드는데 단 한가지, 새하얀 레테르가 왼쪽 허리 부근으로 해서 밖으로 삐죽이 나와 있는게 아닌가. 레테르는 안쪽에 붙어 있어야 되는 건데. 그제서야 왜 직원들이 헛갈려서 티셔츠를 전부 뒤집어서 걸어 놨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레테르를 뗄 수 있나 하고 들여다보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그냥 내버려두자 하고 외투를 걸쳐 입고 밖에 나가서 일을 보고 왔다.

집에 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자꾸만 왼쪽 옆구리에 붙은 레테르가 신경에 거슬렸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실이 밖힌 바로 윗자리로 안쪽에서부터 잘라주면 저절로 떨어지지 싶을까 싶어서 회의를 하면서도 결국 가위를 들이대고 말았다.

결과는 아니나 다를까 참담한 실패, 레테르는 빠졌건만, 숭악한 레테르 있던 자리에 이번엔 손가락 반 길이만한 구멍이 떡 나고 말았다. 가위가 실까지 잘라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실과 바늘을 가져와서 구멍 위와 그 사이로 삼센티가량을 대충대충 꿰매버렸다. 이 정도로 해서 실밥이 다 풀리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안과 밖이 잘 구별되지 않는 거나 작은 문제를 풀려다가 훨씬 큰 문제를 만들어버리는 거나 비단 티셔츠의 일만은 아닌 것 같아 매듭을 지어 이빨로 실을 끊으면서 왠지 기분이 숭악해졌다.

그러나저러나 옷감이 괜찮으면서 가격이 저렴한 면티셔츠 하나 사는 일은 또 왜 그렇게 쉽지 않은지 모르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RINY 2007-05-2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면 티셔츠는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천도 좋아야하고, 목선 파진거랑 소매랑 길이랑 다...딱 떨어지는 거 찾기가 힘들어요.

비로그인 2007-05-21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들이라면 초공감하는 페이퍼 ^^
티셔츠 한장 고르기가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요.
결국 고르기가 귀찮아서 그냥 브랜드제품으로 사버리는 수도 많잖아요 :)

검둥개 2007-05-2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그러게요.
별 것 아닌 것 같은데도 딱 맘에 드는 걸 찾기가 어렵죠.
맘에 들면 또 괜히 티셔츠 주제에 가격이 비싼 듯 해서 갈등이 되고요. ^^

체셔고양이님, 그런가요 ㅎㅎ
글쎄 그런 면에서는 브랜드 제품이 훨등하죠.
선택의 고민은 줄여주니까요.
대신 지출의 고민이 생기지만은요. :-)

로드무비 2007-05-22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검둥개 님이 쓰신 페이퍼 보고 저도 하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검둥개 님과 전 생각과 외양이 수수(!)한 것이 좀 닮은 것 같아요.ㅋㅋ
그러면서 또 은근히 까다롭죠.=3=3=3

검둥개 2007-05-23 0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핵심을 찌르시는 로드무비님. ㅎㅎ
맞아요 저도 수수한 것을 좋아하지만
나름대로 은근히 까다로운 구석이 있다는 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