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지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봄바람?

몇 주 전 오후 직장에서 오 분 거리에 있는 화원에 가서 아주 조그만 오레가노 화분을 사왔다. 무작정 허브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심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은 향기가 그윽하고 맛도 대단히 좋은 베이질이었으나, 화원에 있는 허브는 오레가노 뿐이었다. 나는 공터에 흔해 빠진 잡풀처럼 밖에는 보이지 않는 그리고 가격이 엉뚱스럽게 높이 매겨진 오래가노 화분을 사들고 득의양양해서 직장으로 돌아왔다. 꼭 오레가노 화분이 마음에 깊이 흡족해서라기보다는 직정한 일을 단숨에 해치웠다는 엉뚱한 승리감에 취해서.

오래가노를 햇볕이 잘 드는 창문가에 두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어가며 돌보았지만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 오레가노가 무슨 맛을 내는지 전혀 감감했다. 잡풀 같은 모양새도 별로 폼이 나지 않았다. 오레가노 화분은 햇볕 짱짱한 창문가에서 더위 먹은 이 마냥 비실거렸다.

일주일 쯤 후 시내에서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내 화원에 들어갔다. 그제서야 나는 직장 주변의 화원이 별 것도 아닌 허브를 통용가보다 두 배쯤 높은 가격을 매겨 팔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운이 좋아서 이번에는 단번에 베이질을 발견했다. 게다가 이미 키도 한 십칠센티미터쯤 되어 훤칠해보이는 것이 아주 맘에 들었다. 화분의 가격은 사불. 설사 며칠 있다가 운 없이 식물이 죽는다고 해도 남는 베이질을 요리용으로 써먹는다고 하면 밑질 것이 별로 없는 가격이었다.

내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베이질은 창문가에서 아주 잘 자라났다. 빨리 키워서 베이질 잎을 음식에 넣어먹을 꿈에 부푼 나는 집안을 다 뒤져서 일년 전쯤 슈퍼에서 사둔 액체 비료를 찾아냈다. 매일 주는 물에 한 두 방울씩 섞어서 주니까 이파리 커지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줄기 사이로 아카시아 잎처럼 잘디잔 여린 잎들이 계속해서 돋아났다. 나는 어린 잎들에게 햇볕을 쬐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큰 잎들을 대담하게 따내어서 볶음밥이나 야채볶음에 썰어넣었다. 여전히 비실거리는 오레가노는 그냥 관상용으로 보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그러다가 며칠 동안 비가 내려서 이번에는 베이질이 비실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대단한 정원가여서가 아니라 햇빛과 비료 덕분에 잘 자라던 베이질은 궂은 날이 지속되자 조로한 이처럼 이파리들이 쪼글쪼글해지고 몸집까지 줄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베이질을 부엌의 카운터에 장착된 형광등 아래 두고 출근하기도 했다. 비가 드디어 그치자 얼마나 안도가 되었는지.

비가 오는 바람에 더불어 오레가노에 대한 많은 것을 덩달아 배웠다. 오레가노는 쨍쨍한 햇볕을 오히려 좀 부담스러워해서 흐린 날에 오히려 잘 자라났다. 일광 아래서 해바라기를 하며 물도 많이 먹어대는 베이질과는 달리 조금만 물을 많이 주면 오레가노는 금방 여분을 토해냈다.

베이질과 오레가노는 성격이 완연히 다른 자매랄까 하나는 키가 크고 성격도 활달하고 짙은 향수도 멋지게 뿌릴 줄 아는 동생이라면 다른 하나는 비오는 날 음악이나 듣고 어디 차려입고 외출하기보다는 대충 아무 옷이나 입고 집에서 뒹구는 걸 좋아하고 성격은 소탈하면서도 은근히 쌀쌀한 데가 있는 언니 같다.

베이질은 어디다 넣어 먹어도 맛이 있지만, 오레가노는 토스트 위에 뿌려먹으면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다. 오레가노는 날로는 좀 너무 떨어서 신선할 때보다 오히려 좀 말라서 건건해져야 먹기가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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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3 08: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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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3 11: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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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개 2007-05-24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진짜요?
저두 쓰면서 왠지 오레가노가 더 멋지다구 생각했어요.
:-)

속삭님 꼭 들려주세요.
소모임을 만드시면 가입도 할래요.
저보다 훨씬 많은 종목을 키우시는군요.
창문을 닫아두면 좋지 않은 줄은 몰랐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