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안 하고 시간과 나이만 축내던 시절에 젊은 헤밍웨이의 파리 체류의 기록인 moving feast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왜 제목이 moving feast인지 설상가상으로 moving feast는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리 저리 찾아보니 이동연회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된다는 것은 알아냈는데, 책에서 특별히 먹는 이야기가 유독 많이 나온 것도 아니어서 의문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그로부터 오년쯤 후 직장에서 나는 moving target이라는 표현을 우연히 듣게 됐다. 아무리 말끔하게 정리는 한다고 해도 시간이 좀 지나면 금새 여러 데이터베이스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기록엔 시간의 경과와 함께 오류가 생겨나게 되니 기록의 정확성이라는 것은 결코 완벽하게는 성취될 수 없는 늘 움직이는 종류의 목표라는 말이었다.
오늘 점심을 먹고 직장으로 걸어오는데 눈을 아프게 하는 오월의 햇볕이 지면을 데우고 있었다. 왠지 허리가 굽은 노인들처럼 양달에 오래 동안 앉아 있으면 좋을 듯 싶은 그런 오후였다. 너무 밝아서 버석거리는 일광이 오랜 전에 읽었던 헤밍웨이의 그 책 제목을 생각나게 했다. 이동 연회라는 그 제목은 늦은 봄날의 일광처럼 그렇게 강렬한,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 젊은 시절에 대한 비유였다.
지나가버린 연회의 기억처럼 생생한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 또 있을까?
어떤 종류의 기억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더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