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김훈에게 그야말로 딱 맞는 소재다.

개는 사람에게 빌어먹고 사는 존재이고, 그렇게 빌어먹고 살면서도 나중에는 몽둥이로 두들겨맞아 잡혀먹히는 존재이며, 그리고 싸울 때는 철저하게 혼자인 존재이다. 사람에게 빌어붙어야 간신히 먹고 살 수 있는 개들은 애처로우며, 어느 복날 주인님의 음식이 되어 밥상에 올라가는 개들의 운명은 속절없이 슬프고 비통하다.

즉,
김훈이 본 개들은 세상의 인간들 (=사내들) 이다,
김훈이 본 <개> 속의 인간들과 악돌이는 세상의 모든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이다.

개는 "그래도" 사람을 사랑한다.
비록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할지라도, 맞아죽을지라도. 

아니면,
이해 따위는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거니와, 싸워봤자 처음부터 승산 같은 건 아예 없고, 결국에는 맞아죽게 되어 있는, 그토록이나 강력한 상대이기 때문에? 어짜피 복종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면 차라리 사랑하는 게 조금이라도 더 유리할 것이라서, 그래서?

그래서 <개>의 주인공, 숫놈 진돗개 보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인가?
[나는 숫놈 진돗개라는 설정에서 남성우월주위와 민족주의의 그림자를 보며 내가 심각한 신경과민이 아닐까 고민한다. 부디 그러하기를!]

"못된 놈은 내가 아니라 악돌이였다. 나는 다만 졌을 뿐이다. 주인님은 저녁밥도 주지 않았다.... 나는 혀를 길게 빼서 물린 자리의 상처를 핥았다. ... 그렇게 못되고 경우없는 놈이 그토록 강하다는 것은 알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었지만, 그놈은 어쨌든 강한 놈이었다. 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어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견딜 수 없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182)

못되지만,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면, 견뎌야 한다, 고 김훈은 말한다.
그러나,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경우에,
그 견딤은 기껏해야 복종의 여러 이름 중 하나일 뿐이다.

<개>가 내게 가볍게 읽히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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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6-08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가볍지 않게 읽어봐야겠어요.^^

검둥개 2006-06-09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책은 아주 후딱 읽힌답니다.
개의 민감한 오감의 묘사에 역시 김훈의 문장이 빛을 발하기는 해요.
각기 다른 동네에 사는 아이들의 몸냄새라든가, 특히 축구하는 아이들의 몸 속에서 난다는 슉슉 피 도는 소리 같은 묘사요. ^^
 

책마다 리뷰를 썼으면 좋겠지만 시간도 없고 정신도 없어서 기록이나 남길 겸 여기다가 대충 적는데,
요즘은 어쩌자고 이렇게 생활이 까치둥우리처럼 정신사납고 어수선한 것인지!

 

 하나 같이 버릴 데 없이 알찬 글들이 가득 실린 비평집이다.
 생각의 깊이와 삶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빼어나게 조화되어 있다. 
 저자의 사회적, 역사적인 안목으로 인해 이 책 속의 평론들은 
 일반적 문학비평에서 찾아보기 힘든 통찰을 보여준다.
 인용의 출처가 생략된 글이 많다는 점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이런 책 뒤엔 더 읽어볼만한 책 리스트라도 붙어 있었으면 싶었다.

 

 

 주말마다 밥을 한 솥 가득 짓고 먹을거리를 잔뜩 만들어놓고,
 이렇게 일하러 가지 않으면 엄마는 도로 공장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엄마 없이 집에 남을 아이들을 반 협박하고 반 을러서 다녔다는
 소설가 공선옥의 기행집. 말지에 연재된 기행문들로 엮여져 있다.
 눈만 호사스럽게 하는 외국 여행집이 아니라,  가난하고 텅 비고 나이 먹은
 한국 농촌의 삶의 모습이  감상 없이 그러나 들꽃처럼 정직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글과 함께 수록된 박여선, 노익상의 사진들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뒷표지에 박힌 소설가 심상대의 적확한 비유대로,
 그야말로 '가정식 백반'  같은 단편집.
 이 책 단편 속의 주인공들은 대개 장년 혹은 노년층이며
 농촌이나 지방 변두리 소도시에 거주한다.
 젊은 독자들에겐 나이 먹은 이들의 삶을 엿보게 해주는 역활까지 톡톡히 해내는
 한창훈이 풀어놓는 이야기들엔 담담하며 소박한 나름의 맛이 있다. 
 날씨가 각기 다른 변덕스런 여러 계절을 거치며 천천히 익어든 된장 맛 같다고나 할까. 


 

 

 <가족의 기원>을 읽고 무척 실망했던 나는 
  이 첫 창작집을 읽고  이 작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 작품집 하나만 두고 본다면 나는 거의 팬이 된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 

 문장도 그렇지만 각 단편이 한치의 틈도 없는 긴장된 짜임새를 자랑한다.
 지치고 피로하며 동시에 분노와 적의에 가득 차 있는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역사가 강만길이 그 때 그 때 불거지는 "역사적 건망증"이나 그릇된 역사 이해에 대한
 개입의 형식으로 신문이나 잡지에 쓴 단문들의 모음집이다. 
 구체적인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각 단문의 배경을 이루므로,
 진지한 역사책이 부담스러운 독자들에게 특히 매력적인 책이다.
 이 책에 반복되는 내용이 많다는 것은, 속시원히 해결되지 못하고
 발목을 잡는 역사적 문제들이 한국 사회에 그 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한국사, 통일, 바람직한 역사교육, 정부의 정통성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
 설득력 있고, 읽기 쉬우며, 논리적으로 쓰여져 있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부터 김영삼 문민정권까지의 역사를 26강으로 구성한
  강만길 교수의 강의책.   각 강의가 질문이나 주장 형식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독특하다.
  이를테면 "일제의 병참기지화도 경제개발로 봐야할까요" (9강) 이나.
  "7.4 남북공동성명은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닙니다"(22강)처럼.

  책 뒷표지에 실린 강만길 교수의 저작 의도에 혹해서 집어든 책.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이 과거를 알아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 있다고 하지만 역사책에서는 미래에 대한 전망이 극히 제한적이게 마련입니다. 앞으로의 전망 같은 것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역사강의를 책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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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6-06-06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경란의 불란서 안경원, 한번 봐야겠어요.
조경란의 소설은 안 읽은것 투성이라 ^^;;
짤막한 리뷰지만, 핵심만 들어있네요.

잉크냄새 2006-06-06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흔에 길을 나서다. 보관함에 쏙~~
재밌는 것은 이십대에는 서른이 결코 오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삼십대에는 마흔을 인정하게 되더군요. 이게 나이먹는다는 것일까요?ㅎㅎ

검둥개 2006-06-08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저도 <가족의 기원>만 읽어본 걸요.
그걸 읽고 실망을 많이 했는데 이 단편집은 무척 맘에 들었어요.
희한하죠? 같은 작가가 쓴 두 책에 대한 느낌이 그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

잉크냄새님. 호호호 저도 마흔을 인정합니다.
근데 오십대는 아직 안 되는군요.
한 번에 한 세대씩 ^^;
 

제 10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악어떼가 나왔다>를 읽었다.

책을 집어들고 읽기는 순식간에 읽어치웠는데 딱히 아무런 감흥도 생각도 일지 않아서 이렇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문학상의 기준은 가독성인가?

가독성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소설이라는 것이 학술논문도 아닌 바에야 다수독자를 목표하며 그러므로 당연히 잘 읽히고 재미도 있는 편이 안 읽히는 것보다는 훨씬 났다. 그러나 소설이 잘 읽힌다는 점은 그 소설의 질에 대해선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잘 읽힌다는 점만 보고 따지자면야 화사한 화보를 가득 담은 잡지나 주인공의 얼굴이 단번에 눈길을 끄는 만화가 소설보다는 단연 한 수 위가 아닌가.  

서영은의 심사평을 보자.

"형식, 주제, 구성에서 크나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게임식 조립, 만화적 발상, 개그적 수다, 과장 왜곡된 허풍 등, 표현을 위한 표현이 난무한다. 표현되어지는 것은 작가의 '인간과 삶과 우주와 신에 대한 이해나 통찰'이 아니라 상상력 그 자체이다. 등장인물은 있으나 그 인물에게는 사유도 없고, 심리도 없다. 상황은 너무 허무맹랑하여, 독자는 자기를 대입시킬 수 없다.  ...... 이와 같은 신세대적 감수성이 빚어내는 소설적 재미는, 소설의 역할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어, 동의하는가, 안 하는가는 심사 밖의 장에서 얘기할 일이다."

알쏭달쏭한 심사평이다. 저 말줄임표 사이에는 수상작이 인간 본성의 모순,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작자의 의도를 날카롭게 대변한다는 상찬이 들어가기는 했다. [이 작품 어디에 인간 본성의 모순이 드러난단 말인가???]

소설의 역할 변화에 심사자는 동의하는 걸까? 아마 아닐 것이다.
동의한다면 굳이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천명관의 <고래> 역시 순식간에 읽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소설가를 타고난 민담꾼이라고 부르는 것은 칭찬인가?

소설은 인간이 자연에 수동적으로 적응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자연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근대의 산물이며 생각하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주체의 행위와 그것이 세계에 일으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민담의 주체는 사건이고 인물은 사건의 구성요소에 불과하다.

책 말미의 심사평에서 임철우는 <고래>를 관통하는 중심축은 인간의 '욕망'이라고 하지만 이야기의 추동력이 되는 그 욕망은 각 인물에 특유하다기보다는 되려 무개인적이다. 민담 속의 사건들처럼. 그래서 <고래>의 이야기구조도 소설보다는 민담에 가깝다. 은희경은 <고래>에서 장르영화의 대중성을 보는데, 이 또한 적절한 지적이다. (장르 영화의 주체 역시 인물이 아니라 플롯이므로.)

소설과 민담이 다른 것이라면 왜 점점 더 현대 소설은 민담과 비슷한 모양새를 띠어가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것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인가?

사회가 산업화, 기술화되고 자본주의가 전세계적 체제로 안정화되면 될수록 각 인간의 행위의 폭과 의미는 축소되고 삶은 점점더 몰개성화된다. 자유의 행사범위는 무엇을 살 것인가로 좁혀지고, 인간의 삶은 철창에 갇힌 채 쳇바퀴나 하염없이 돌리는 다람쥐의 그것과 다름없어진다. 현실이 그것을 요구하므로, 소설의 초점은 독립적 주체로서의 인간과 그 행위로부터 개인을 쉽사리 압도하는 사회적 현실과 상황으로 그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옮겨간다. 이렇게 해서 소설의 외양이 조금씩 민담을 닮아가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 보여준다는 것이야말로 바닥이 얕은 우물처럼 말라붙기 쉬운 프로젝트다. 보여주기가 철저해지면 그렇지 않아도 통속하고 피로한 현실을 사는 독자들은 그 쓴 맛에 고개를 돌리기 쉽고, 인간애니 따뜻한 시선이니 따위를 거기에 섞었다가는 자칫 어설프고 게으른 타협이라고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여기에 시장 약장수 처방처럼 판타지가 끼어든다. 현실인 양 아닌 양. 상상인 양 아닌 양.

배에 악어 모양의 점이 있는 아이는 마트의 매장에 놓은 가방 속으로 들어가 숨고 그 가방을 산 부부의 딸이 자살을 목적으로 뛰어는 한강에서는 수십 구의 시체가 떠오른다. 여기서 악어가 정확히 뭘 의미하느냐고 물어야 별 답은 없다. [책 말미에 평을 쓴 류보선은 이 소설이 알레고리 소설이라 하면서도 뭐가 뭐의 알레고리인지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

<악어떼가 나왔다>와는 달리 판타지가 부분적이 아니라 전체적인 <고래>에서는 역사적 사실인 6.25와 박정희가 잠깐씩 언급된다. 전쟁이건 장군님이건 줄거리의 전개와는 별 상관이 없는데 아예 상상의 것으로 대체해도 그만일 것을 굳이 역사적 사실을 도입한 것은 무슨 까닭에서인가? 그런다고 소설에 부재한 역사성이 돌연 깃들 것도 아닐 터인데.

엄청난 가독성을 자랑하며 뛰어난 상상력을 펼치는 요즈음의 소설들이 나는 어째 수상쩍다. 호락호락 읽힌다는 것이 소설의 질을 보장하지 않고 상상력이 무조건적으로 작품을 풍요롭게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소설의 미래가 '인간과 삶과 우주와 신에 대한 이해나 통찰'로부터 단순한 '재미'로 옮아가고 있다면,  "풍부하고 기발한 상상력의 세계 속에 보다 구체적인 인간 현실과 삶의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아울러 담"는 (임철우) 소설에 대한 기대는 그저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만 말하고 끝내자니 책 사보는 독자 입장에서 정말이지 성에 안 차는 결론이지만, 또 딱히 독자가 뭘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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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6-06-08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래]에 대해 재미있게 읽고도 수상쩍은 느낌이 들었던 이유가 이런거였구나 싶어집니다.

검둥개 2006-06-09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치니님 저두 잘 모르면서 한 이야기에요.
그냥 괜히 볼멘 소리로 타겟도 분명하지 않은 채 불평을 늘어놓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ㅎㅎ
 

최윤은 이상하게도 나에겐 낯선 작가였다. 모처럼 마음 먹고 읽어보리라 소설집을 몇 권 가지고 오면서 산문집도 들고 왔는데 그만 산문집을 제일 먼저 게눈 감추듯 읽어버리고 말았다. 후회해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책 속엔 거의 육십편 남짓한 짧은 글들이 빼곡하게 차 있는데, 각각의 글 하나하나가 특별한 빛을 발한다기보다는 책이 하나의 전체로 단정하고 차분한 인상을 준다. 그 인상을 색으로 나타내보라면 단연 회색이다. "얇은 잠과 되찾은 소리"라는 글은 단문이지만 이 작가 문체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물론 짐작으로 섣불리 말하는 것이지만, 이 작가의 산문체에는 요즘 찾아보기 힘든 어른스러움이 있는데, 그것은 연령과 무관한 그 무엇, 한 작가가 자신과 타인의 삶을 바라보고 타인들과 교류하는 태도에서부터 연유하는 그 무엇이다. (그 어른스러움이 다른 문체들에 비해 우월하다든가 그렇지 않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단순히 다르다는 것이다.)  

글 중에 특히 재미있는 이야기는 작가가 자신의 본적지인 가희동에 갔다가 우연히 근처 분 식점 주인이 된 옛 친구를 조우한 경험이다. 삼십몇세가 되어 국민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한 동네에 같이 살던 여자애를 다시 만난 친구는 쑥쓰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기분에 부엌에서 고기만두를 한 접시 담아 내오고 작가가 된 최윤은 그걸 먹는다. 달리 뭐라 할 말도 딱히 없고 친구는 갑자기 분식집 주인으로서 직업상의 중대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 비밀이란, 고기만두 속의 고기가 사실은 진짜 고기가 아니라 말린 무라는 것!

하나 더 인상적이었던 글은 "인간관계의 출구-"하나코는 없다"였다. 잘 알려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성인이 된 우리 모두가 겪게 되는 대부분의 관계의 양상이라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얼마나 괴상망측한가. 우리는 타자가 가진 존재적 장점이나 아름다움 때문에 타자를 찾거나, 그 때문에 타자와의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 타자와의 관계는 자주 외적으로, 피상적으로, 계산적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다. 한 사람이 용납할 수 없는 결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불편하기 짝이 없어도 우리는 이미 외적으로 규정된 원칙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쉽사리 용납하며 얼버무리고 비굴하게 웃고 만다. 수정되는 것은 하나도 없이. 우리의 역사가 자주 그랬듯이."

덕분에 오래 전에 읽었던 단편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굳이 그람시가 한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일상이란 실은 얼마나 복잡하고 심각하게 문제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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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5-28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색눈사람>인가로 동인 문학상을 받은 그 분이시죠.
그 당시는 읽다말다 하품했는데,
이분의 글은 세월의 간격을 두고 읽을만한 가치가 분명 있다고 봅니다.
덕분에, 다음번 주문때 이 책을 구입하려고 보관함에 넣어 두었습니다.
검둥개님, 고마워요!

검둥개 2006-05-2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맞어요. 제가 빌려온 책이 <회색눈사람>과 <속삭임 속삭임>이랍니다.
글이 섬세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어요. (둘 다 제가 거의 안 쓰는 표현!)
아니 그런데 여우님이 읽다가 하품을 하셨다니 은근히 걱정이 되는군요! ^^

로드무비 2006-05-29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감정 과잉이나 과장 없는 다소 건조한 문체가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책을 읽을 땐 재밌게 읽는데 이상하게 다음 책을 사게 되진 않아요.
항상 보관함에만.
이상하죠?^^

검둥개 2006-06-0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그런 책이 저도 있어요.
남한테 빌려 읽거나 대여해서만 읽게 되는 책!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사게 되지는 않는 책.
왜 그럴까요? ^^
 

도저히 리뷰를 쓸 것 같지 않다는 건전한 판단에 입각해서 독서의 기록이라도 남긴다는 취지에서 쓴다.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은 둘 다 한양대에서 서양사를 가르치는 임지현 교수의 것이다.


<이념의 속살> : 현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속에서 작동하는 민족주의와 전체주의를 날카롭게 가격하는 그의 문제의식은 읽기에 신선하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다보면 반복되는 예화와 주장이 지루함을 준다. 그가 박사 학위 딸 때까지 한 공부로 평생을 우려먹는 교수들 중의 한 명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만과 편견> : 학자들은 역시 대화를 해야 된다. 코넬대 동아시아학 교수인 사카이 나오키와 임지현 교수와의 대담을 묶은 책이다. 비슷한 학문적 관심사를 지녔으나 연구분야가 조금 다르고 (역사와 문학) 서로를 경원시하는 두 나라, 한국과 일본, 국적을 지닌 두 학자의 대화가 생생하고 긴장감이 넘친다. "민족, 인종, 국가, 성, 계급이라는 근대의 다섯가지 장벽에 대한 지식인의 예리한 통찰"이라는 좀 낯간지러운 광고문구가 박혀 있기는 하지만 ---지식인이 꼭 예리한 통찰만 하란 법이 있나?---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 대담집은 뒤늦게 읽었지만 그래서 읽는 재미가 더 배가되었던 것 같다.

 


 

 이 네 권의 산문집들은 함께 읽어서 흥미로웠다. 금방 보면 알 수 있듯이, 배열은 나이 순이다.

  

 

 

 

 

김병익의 산문집은 도대체 왜 골라들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이 책은 90년대 중반에 그가 여기 저기 언론에 개재한 쪽글들의 모음집이다. 그런데 도대체 출전을 알 수 없다. 쪽글들을 모아서 펴낼 때는 출전을 좀 밝혀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을 다 읽은 것은 순전히 저 길게 늘어지고 주어와 술어 간의 관계가 종종 불분명해지는 오래된 문체가 주는 친숙함에 혹해서였다. (좋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김훈의 책을 읽은 것은 거의 개안의 경험이었다. 왜 이 명석한 기자 /작가의 글이 내게 늘 매혹과 찜찜함을 함께 안겨주었나를 확실히 발견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김훈의 개별자의 생존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므로 (그가 말하기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거나 주접을 떨지 마라. 돈을 벌어라. 돈과 밥은 지엄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존의 기본조건이므로") 기존 사회의 부조리한 질서에 대한 비판은 그에 따르면 "코흘리개 장난"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서 먹고사는 일의 지난함을 강조하다가 그에 그만 짓눌려버린 그의 지배적 정서는, 그래서 속되게 표현하자면, "내가 이 x같은 세상에서 니들을 먹여살리려고 영혼까지 팔아먹으며 얼마나 뼈빠지게 일하는데"를 뇌까리는 가장(=사내)의 비장함과 우월함이다. 이 비장함과 우월함의 정서 속에서 사회의 부조리는 비관과 탄식의 대상은 될지언정 비판과 반성의 과녁은 되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글 속에서 세상 사는 일의 복잡함과 머리 아픔이란 낡은 주제는 비장함을 불러일으키는 찬란한 수사로 채색되고, 글의 끝은 시적이지만 텅빈 문장으로 마감된다. 먹고사는 일의 구체성을  강조하다 못해 과장하는 사람의 글이 감정의 과부하로 종결되는 이 아이러니!

그래서 진중권이 "그런데 이 정도의 꿈도 꾸어서는 안 된단 말인가? 왜 우리에게서 꿈꿀 자유마저 앗아가려 하는 걸까?"(250쪽)라고 말할 때, 그는 나의 영웅이다. 생각하는 자의 꿈처럼 해방적인 것은 없다.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이기주의, 다른 한편으로는 크고 작은 집단주의. 이 둘의 기괴한 결합이 평균적 한국인의 '정체성'이다. ...... 한국인의 정체성은 패거리의 정체성이다. '에고'는 있어도 '주체'는 없다. 그리하여 제 조그만 이익을 지키는 데에는 남에게 질세라 악착같이 달려들어도, 정작 자기의 견해를 얘기해보라고 하면 변변히 제 생각을 말로 풀어낼 줄 모른다. 우리 사회에는 '집단'은 있어도 '사회성'은 없다. 한국사람들이 갖고 있다는 그 친절함은 정확하게 자기가 속하여 친분이 있는 집단의 동그라미에서 멈춘다.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당하든, 평균적인 한국인은 그들에게 아무 연대의식도 느끼지 못한다. 슬프지만 그게 우리의 자화상이다. ...... 근대적 주체가 되려면 먼저 쓸데 없이 자신을 원소로 포함시키려 달려드는 크고 작은 집단으로부터 자기를 지켜야 한다. ...... 이런 개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가능하다. 다만 인간관계의 점성이 높은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사는 게 좀 피곤할 뿐이다." (250-251쪽)

진중권은 너무 세다 싶은 사람은 고종석을 읽으면 된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의 문체의 그 건조함이 나는 너무나 마음에 든다. (김훈의 웅장한 감상주의와 비교해볼 때 특히!) 합리적인 사람은 건조할 줄 알아야 한다. 진중권이 위에서 잘 설명해놓은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더. 그런데 그렇다보니 어째 그의 소설은 지루할 듯 싶어 손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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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0 0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4-10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웅장한 감상주의
-생각하는 자의 꿈처럼 해방스러운 것은 없다

멋집니다. 검둥개님!^^

2006-04-10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viana 2006-04-10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동안 많이 읽으셨네요.ㅎㅎ 잘 계신거지요?

2006-04-10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터라겐 2006-04-10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권도 안 봤어요.. 흐흐 검둥개님.. 잘 지내고 계시는거죠? 아 이젠 점점 책이 멀어지고 있답니다.. 올해 목표치는 위대했으나 이루지 못할 계획으로 끝날것 같아요

검둥개 2006-04-11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 오랜만여요. ^^ 잘 지내셨죠?
바쁜 와중에 책 읽기 참 힘들어요. 저두 몇 달간 책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지요.

속삭님 읽다가 말다가 하기를 너무 오래 반복하다보니 그랬답니다. :)

파비아나님, 시험 때문에 죽겠어요. ㅠ.ㅠ
그동안 잘 계셨죠? ^^

속삭님 으흐흐 김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요. ^ .^
전 김훈을 흠모하다가 정이 똑 떨어진 케이스!

로드무비님, 감사합니다.
제가 원래 좀 멋지잖아요. 헤헤 >.< =3=3=3

속삭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읽었어요.
그냥 심심하게 읽었어요. ^ .^ 고종석의 문장은 정확하다는 님의 말이 맞습니다.
제가 건조하다고 말할 때 의미한 바가 그거예요. 그리고 저는 그게 좋다고 생각해요. 한국인의 문체치고는 드문 문체죠. 과장이 없고 단순하면서 정확한 문장을 쓰려면 연습과 수련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고종석의 소설이 좋은가요? 기회가 닿으면 꼭 읽어보겠습니다. 맛난 것은 많이 드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