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 떴습니다. 고 김선일 씨의 마지막 유언이라고 합니다.

사실 스스로 너무 부끄러워서,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서재에서 침묵하려고 했는데...

김선일씨 유언
  
  To President Roh, MooHyun.
  노무현 대통령에게
  
  I want to live.
  나는 살고 싶습니다.
  
  I want to go to Korea.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Please, don't send to Iraq Korean soldiers
  제발 이라크에 한국 군인들을 보내지 말아 주십시오.
  
  Please, this is your mistake
  제발!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
  
  This is your mistake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
  
  Many Korean people don't like their to send to Iraq
  많은 한국인들은 이라크에 보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All Korean soldier must out of Iraq
  모든 한국 군인들은 이라크에서 나가야합니다.
  
  Please, please this is your mistake
  제발. 제발.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
  
  Why do you send why do you send Korean soldiers to Iraq
  왜 당신은 왜 당신은 한국군을 이라크에 보냈나요?
  
  To my all people all Korean people please support me.
  고국에 계신 한국 동포에게.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
  
  please, * President please Bush to President Roh, MooHyun.
  제발. 대통령님! 제발, 부시! 제발, 노무현 대통령! 제발 이라크에서 나가 주십시오.
  
  please I want to live, I want to go to Korea.
  제발. 나는 살고싶습니다. 나는 한국에 가고 싶습니다.

강양구,이종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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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급한 전화가 왔다. 아버님이 한쪽 팔다리가 마비가 되셨다고, 그래서 급히 응급실로 가시는 중이시란다.

토요일 새벽 첫 KTX를 타고 갔는데, 그 사이 아버님은 의사를 졸라 각서까지 쓰고 퇴원을 해버리시고, 나는... 그냥 아버님 어머님을 뵙기만 하고는... 일요일까지 친정과 시동생네에서 푹~ 놀다 왔다.

아무래도 학부형이 많다 보니 학교이야기가 주된 얘기다.

1. 초등학교 3학년 교실. 매주 시험을 보고, 매달 자리를 바꾸는데, 성적순으로 A조부터 F조까지 앉힌단다. 고3이 아니라 초등학교 3학년의 풍경이다.  그럼 내가 조별로 수준에 맞춰 학습지나 유인물이 따로 나가느냐고 했더니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과연 무엇을 위함일까.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모멸감을 주어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하려는 의도일까. 아니면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이런 정글이니, 미리미리 배워 두라는 의미일까.

2. 2학년 남자아이의 엄마. 아침 10시에 학교 담임에게 전화가 왔단다. 아이가 싸웠다고 학교로 당장! 나오랬단다. 놀란 가슴을 부여안고 온갖 상상을 하면서 학교에 갔더니, 아들이 다른 여자아이를 때려서 머리핀이 부러졌으니, 가서 똑같은 걸 사오라고 했단다. 아이들은 이미 화해하고 다시 희희락락 놀고 있었고... 그 여자아이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런 걸 사오느냐고, 냅두라고 했단다. 그 엄마는 매우 심각하게, 촌지를 바랬던 거 아니냐고, 스승의날도 그냥 지나쳤더니 그 보복이 아니냐고... 걱정한다.

3. 초등학교 1학년 교실.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한 어린이는 그 시간에 한시간 내내 책상에 엎드려서 꼼짝도 하지 말아야 한단다.

 아, 그 나이에 아이들이 반장이라는 이름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도 이야기되었다. 단지 선생님이 좀더 편하게 통치(!)하기 위해 반장을 두고 반장에게 전권을 주는 게, 그래서 말썽이 생겼을 땐 무조건 반장 밀어줘버리는 게 과연 초등학교에서 해야 할 일인가 하는 것이다.

피자반장, 실내놀이터반장 얘기도 나왔다. 공약으로 '내가 반장 되면 피자 돌릴께'라고 얘기하고, 그럼 진짜 그놈이 반장이 된다는... 담임선생님은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제지를 하지 않았다는...

나는... 상식이 통하는, 정상적인 사회에서 살고 싶다...

편찮으신 시부모님, 암담한 학교 풍경, 거기에 날씨까지 겹쳐져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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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6-2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도대체 그런 학교가 있습니까???? 우와!!! 울 소현이 학교는 엄청 좋구만유...저는 학교 근처도 안 가는 형이라... 그리고 스승의 날엔 절대 선물도 안 받는 학교에 다니는 소현이가 자랑스럽습니다..
정말 있긴 있군요.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엄마 엄청 속상하겠다....

sooninara 2004-06-21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워요..울학교에도 이상한 선생님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아들이 그선생님 담당이 아닌것만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지요^^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단체 연수라도 시켜서..성적제로 모욕을 주어야 될듯하네요..눈에는 눈 이에는 이...당해봐야 지들도 안하지..

아영엄마 2004-06-2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접해 보면 별별 일이 다 있고, 선생님도 천차만별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그래서 학교 들어간 이후로 걱정하는 것이 제발! 좋은 선생님 만나야 할텐데 입니다.. 현재 담임선생님은 좋으신 분인데 아기 낳으러 가시면 오실 임시선생님은 어떤 분일지 걱정입니다. 엄마들 말로는 그걸 전담으로 하시는 남자선생님(나이 좀 되시는)이 올거라는데..

호랑녀 2004-06-21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엄마들의 답글이 바로 올라오누만요.
제가 학교에서 보니, 정말 좋은 선생님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 가끔 정말 수준 이하다 싶은 사람도 있어요. 그냥 팔자다 하면서 지나가야 하는지, 그것도 아이에게 단련이다 생각하면서 지나쳐야 하는지...
선생님이라는 자리가, 편하려고 생각하면 끝없이 편할 수 있고, 열심히 하려고 생각하면 정말 세상에서 제일 힘든 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이... 점점 편한 것만 추구하는지라...
(사실은, 그 성적순으로 앉히는 선생님에 대해 얘기하다가 남편과 대판 싸웠습니다. 저는... 학교는 공부 외에 다른 것도 배워야 한다, 그저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게 목표라면 학교 그만 두고, 단기간에 검정고시해서 대학 가는 게 낫다... 고 하는데, 제가 진짜로 그렇게 저지를까봐 무지 걱정되는 모양입니다. 자기 마누라 소심녀인 줄은 모르고...ㅠㅠ)

2004-06-21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oninara 2004-06-2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러다니는것...^^ 찾아 볼께요..사실 고장난놈도 줄때가 있긴한데..호랑녀님이 너무 아쉬워하셔서 드릴까했걸랑요...제가 다른것 찾아보고 보내드릴테니..주소 남겨 주세요..서재쥔장 보기로요..

조선인 2004-06-2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 정말 그런 초등학교가 있단 말입니까? 그런 선생이 있다구요?
정말 무서운 세상이군요.
하긴 이제 초등1년인 조카 얘기도 남 얘기 같지 않습니다.
지난주에 학교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조카가 지혈제를 동원해야 할 정도로 코피가 나고, 인중 부근은 몇 바늘 꿰매야할 정도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담임선생은 관리소홀로 비난받을까봐 그런지, 남자애들끼리 과격하게 놀아서 그렇다고 은근히 조카탓을 하고, 상대방 부모는 지금껏 사과방문은커녕 전화 한통 없습니다. 새언니는 남자애 키우면서 이 정도 일은 다반사라며 넘기고 있지만, 제가 너무 분통이 치밉니다. 으...
그런데 말 하고 보니.. 어째 딴 길로 빠진듯... -.-;;

호랑녀 2004-06-21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감사. 다시는 상품에 눈이 멀지 않겠다는... 약속은 드리기 어렵지만 ㅋㅋ 노력하겠습니다. ^^
조선인님, 아마 상대방 엄마는 모르지 않았을까 싶네요. 애는 엄마한테 혼날까봐 말 안 하고, 담임선생님이 전화 안 하믄 모르겠지요...
제가 이제야 세상을 알아가는 건지, 아님 원래 그랬었는지, 참 많은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고, 변명만 합니다. 혹시 누가 무슨 헤코지를 할까봐,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기에 참 급급합니다. 참, 학교에서 사고나면 무슨무슨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게 있다던데... 누구 아시는 분 없으시나요?

조선인 2004-06-2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명 왕따보험이라는 건데요, 학교에서 사고가 날 경우 배상해줍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남을 때렸을 때 치료비랑 위자료도 나오고요(우리 새언니도 이거 들었습니다. 만에 하나 조카가 다른친구를 다치게 했을 경우 최대 1000만원 보상금이 나온다네요). 보험사마다 상품이 다양하니 검색해보시면?

호랑녀 2004-06-22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그리고 따로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학교에서 들어두어서 자동으로 다 받을 수 있는 뭐 그런 것도 있는데, 절대로 학교에서 먼저 말하지는 않는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이건 순전히 소문이어서, 제가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ㅠㅠ
 
헌책방마을 헤이온와이
리처드 부스 지음, 이은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올해 초, 시골에서 올라오신 어머님을 모시고 잠시 자유로 드라이브를 간 적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이정표는 '예술인마을 헤이리'.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나는 남편을 졸라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겨울인 데다 곳곳에 공사중이었던 관계로 다소 삭막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과연 헤이리였다. 세계적인 여성건축가가 지었다는 마을 가운데의 북카페, 소나무숲 밑에 지어진 담장도 없는 집들, 곳곳에 통유리로 만들어진 미술관... 나도 출판계나 예술계에서 일하면서 들어와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사실, 만일 내가 혼자 산다면, 그래서 신경 써야 할 가족, 아이들만 없다면, 내가 살고싶다고 막연하게 동경하던 곳은 영국의 헤이온와이였다(헤이리의 모델이 되었던 곳이라고 했다). 고성에 헌책방을 차렸다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그렇게 한적한 시골마을에 수십 개의 헌책방이 들어서 있다는 것도 정말 근사한 일이고, 가끔 신문 잡지에 실리는 사진도 딱 내 머릿속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그 헌책방마을에 관한 책이 나왔다고 했다. 책 표지도 정말 멋있었다. 어쩌다 보니 구입목록에서 자꾸 뒤로 밀리고 있었는데, 마침 책읽는나무님께 빌릴 기회가 되어 빌릴 수 있었다.

그. 런. 데...

자꾸 눈에서 튕겨나간다. 눈에서 튕기고 머리에서 튕긴다. 어려운 책은 절대 아닌데, 아무리 눈에 힘을 줘도 읽히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가 요즘 이렇게 책을 안 읽었는가 반성했다.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다음에 읽었던 다른 책들은 그런대로 잘 읽힌다. 심지어는 굉장히 두꺼운 600페이지짜리 책도 진도가 잘만 나갔다. 그렇다면 내 탓이 아니다.

도대체 이 리처드 부스라는 사람은, 이렇게 재미있고 좋은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이렇게 재미없게 썼는지 연구 대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자신이 객기를 부린 일들에 대한 자랑이다. 겸손의 또다른 표현일지 모른다고 내처 읽었는데, 겸손보다는 오만이다. 적어도 책을 다루는 사람은 좀 있어 보였던 내 평소의 느낌과는 달리, 다소 천박한 느낌까지 들었다. 헌책방마을에 관한 책이 아니라, 그냥 그렇고 그런 자서전에 불과했다.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와 비교해 보자. 책을 좋아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책을 좋아하는 남편과 만나 서재를 꾸미는, 그야말로 신변잡기적인 일을 그녀는 정말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읽는 동안 내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고, 괜히 나 혼자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재미있을 소재를 가지고, 이 사람, 어쩌면 책을 이렇게 썼단 말인가.

내 책이었으면 진즉 던졌을 책을, 그래도 빌린 책이라, 곧 책읽는나무님께 돌아가야 할 책이라, 이를 악물고 책을 끝까지 읽어내었다. 그런데 덮은 지 일주일이 지나니, 별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별로 아쉽지도 않다.

책이 그럴 수 있다는 게, 내가 그렇게 기대했던 책이 이렇다는 게 정말 슬프다. 책 표지는 정말 내 마음에 쏙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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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4-06-18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이 책은 그동안 제가 여러분들의 리뷰를 본 바에 따르면 기대를 걸엇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번번히 실망만을 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랑녀 2004-06-18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기대가 너무 컸나봐요. 헌책방마을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그냥 이 사람의 자서전이다 생각하고 봤음 실망할 것도 없을텐데, 그저 책이라고만 하면 눈이 돌아가는 사람이 많아서...^^

다연엉가 2004-06-18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저는 더 궁금해집니다. 서점에서 서서라도 한번 봐야겠네요.^^

호랑녀 2004-06-18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렇죠, 책울타리님?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이렇게 악평인가...
그냥 빌려 보셔요. 아님 서서라도 보시거나...
누군가는... 좋아할 사람도 있게지요 ㅠㅠ

starrysky 2004-06-19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읽느라 애쓰셨습니다. 토닥토닥. (그러게 제가 말렸잖아용~ ^^)
저는 이런 책을 1시간 동안 소개한 KBS 'TV, 책을 말하다'에 더 깊은 분노를 느낍니다. 하긴 그 프로그램은 이 책 자체보다는 '헤이온와이'라는 책마을의 생성과 발전에 초점을 맞춘 것이곘지만 어쨌든 그 프로그램 때문에 이 책을 본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의 실망과 분노는 어쩌라구요.. 그죠?

호랑녀 2004-06-20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스타리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이온와이에 가보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리처드 부스는 밥맛이지만요. 출판사 측이 엄청 공을 들인 책인 것 같은데, 아마 공 들이고 여기저기 홍보(로비?)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책읽는나무 2004-06-21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아! 저도 를 보고 구입을 바로 했거든요!!
헌책방마을 헤이온와이~~~~ 얼마나 동경의 대상입니까??
그래서 부푼기대를 안고 구입을 했는데.....헉~~~ 리뷰를 보고서 구입할껄!! 했습니다....ㅠ.ㅠ
넘 재미가 없어서요!! 그리고 사람이름도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며칠 지나 읽으면 누굴 말하는지 통 감도 못잡겠고.........ㅡ.ㅡ;;
그래도 일단 전 악평을 받은 책이라도 함 읽어보자~~ 라고 생각을 고쳐먹었기 때문에....언젠간 저책 저도 완독할껍니다....언젠간~~~~~~ㅎㅎㅎ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아영엄마 2004-06-21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결혼시키기> 저도 읽어 봐야지 싶어 마음에 두고 있는 책인데...

호랑녀 2004-06-21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는 나무님... 굳은 의지로 완독하시어요 ^^ 그래도 책읽는나무님 덕분에 어려운 책도 읽어냈답니다. 다시 한 번 감사.
아영엄마님, 서재결혼시키기는 정말 강추입니다. (강추 원추 이런 말 별로 안 좋아하지만 ㅠㅠ)
처음엔 엄청 머리아픈 얘기일 거라고 선입견을 가지고, 사지도 않고 빌려 읽었는데, 결국 빌린 책 ... 사정해서 결국 내것으로 만들었다는 거 아닙니까.
 
조선의 왕비
윤정란 지음 / 차림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아이들과 함께 사극을 보면서 걱정되는 것은, 과연 이 아이들에게 사극이 교육적일까 하는 것이다. 역사적인 내용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야말로 스폰지처럼 쉽게 흡수하는 내 아이들에게 이런 내용이 교육적일 수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악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처음 했던 것은 몇 년 전,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를 볼 때였다. 아직 우리 애들은 어리고, 대학생이던 도련님과 남편,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용의 눈물을 보고 있었는데, 도련님이 "여자가 저렇게 설치니 친정이 다 망하지..."라고 얘기를 했다. 최명길이 분했던 원경왕후 민씨를 보고 한 얘기였다.

유동근이 분했던 태종 이방원이 첩들을 거느리고자 하지만, 정치적 동반자였던 민씨는 그것을 보고 투기하는 장면이었다. 최명길의 연기가 너무 리얼했던 탓인지 아니면 유동근의 뻔뻔한 연기가 너무 인간적이라 느꼈던지, 사람들은 대체로 민씨의 투기가 잘못된 것이라고, 그래서 태종이 처가 식구들을 모두 친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태종이 그렇게 했던 것은 왕권을 강화시킬 목적에서였다. 태종이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고 두 번의 왕자의 난을 일으켜가며 왕이 되기까지 민씨 가문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그의 아내는 물론이고 처남들까지 목숨을 걸고 그를 도왔다. 그 결과 태종은 왕이 되었다. 그러나 왕이 되고 나서 태종은 왕권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하고 나설 때 마음이 서로 다르다지 않는가.

외척을 물리칠 요량으로 끊임없이 민씨를 자극했던 태종은 계획대로 처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유교적인 명문가 출신이었던 민씨가 꿈꾸었던 정치적인 동반자로서의 관계,더 나아가서 연합 정권의 꿈은 과거의 동지이자 남편이었던 이방원에게 철저히 배신당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리고 오히려 질투심 많은 아녀자로 몰리게 되었다. 정권욕과 결단력이 강했던 여걸 민씨는 결국 태종의 권력욕까지 뒤집어 쓴 채 6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렇게 그려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가리운 채, <용의 눈물>만 본 아이들은 그저 여자가 덕도 없이 권력욕만 있어서 결국 친정이 멸문의 화를 당한 것으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사실 도련님이 그렇게 얘길 할 때 나도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했다. '아무리 시대가 그랬다지만(사실은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여성의 지위가 지금보다 나았다) 남편이 다른 여자하고 저렇게 당당하게 놀아나는데, 눈 뒤집어지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느냐'고 얘기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읽게 된 <조선의 왕비>. 이 책을 읽고 나는 땅을 쳤다. 내가 그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도련님과 남편을 논리적으로 설득시킬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단지 드라마 작가의 관점에 의해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을 수 있도록 내가 얘기할 수 있었을 텐데. 그 후로 때를 노리고 있지만, 어찌된 게 요즘 사극은 고려시대이고, 게다가 차분히 앉아서 사극을 볼 만한 여유가 사라져버렸다. 결정적으로 지금은 도련님과 함께 살지도 않는다. ㅠㅠ

<조선의 왕비>는 철저히 왕비의 관점에서 조선시대를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태조의 왕비였던 강씨부터 마지막 왕비였던 순정효황후 윤씨까지, 기록이 남아 있는 왕비와 후궁들의 이야기이다. 숙종의 비였던 희빈 장씨와 인현왕후 민씨. 왜 희빈 장씨는 왕비가 되기 위해 극악을 떠는 요부요 악녀여야 했으며, 인현왕후는 어떻게 그렇게 부덕을 갖춘 완벽한 여인이었는지, 과연 희빈 장씨는 단순히 악녀였기 때문에 사약을 받고 죽었는지, 정말 그렇게 악녀였는지, 어쩌면 철저히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서 봤을 때 악녀의 모습이 아니었는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다.

사극을 보면서 빠질 수 없는 여성들의 이야기.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작가의 시각이 아닌 나의 시각으로 역사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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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4-06-17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남녀노소 불구하고 사극에 있어서 (진정한) 역사의 의의에 대한 '동기유발'과, 약간의 기초상식을 쌓을 수 있다는 것 외의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을 갖게 된지 오래입니다. 무엇보다 사실 역사라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의 단계를 밟아서 쌓아가는 지식의 과정인데(모든 학문이 그렇지만요^^;) 막바로 다 제껴놓고 TV로만 사극을 접하고 그로써 역사를 알게한다는 건 필연적으로 무리가 따릅니다.
또 사극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방송이라는 매체의 생리상, 그것은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역사이기에, 여러모로 더 과장되고, 더 확대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배우들은 그 사람의 역할을 할 뿐이지, 그 사람은 아니니까요. 추천할께요~

호랑녀 2004-06-17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로렌초시종님 ^^
사극도 그렇고, 또 역사소설도 그렇구요, 과연 어느 정도까지 사실을 담아야 할까, 그냥 등장인물만 옛날사람이면 되는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역사책보다도 텔레비전을 더 믿곤 합니다.
사극에, 이 극은 그냥 극일 뿐, 사실은 확인한 바 없으니 믿지 마십시오! 라고 자막을 넣을 수도 없고 말이죠...ㅠㅠ

숨은아이 2004-06-18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극은 그냥 극일 뿐, 사실은 확인한 바 없으니 믿지 마십시오!"라고 자막 넣는 것,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드라마 피디들한테 알려주고 싶다. :) 요즘 외국 영화에는, 이 영화는 순전히 허구이며 여기 등장하는 인물 장소 등등은 특정인과 관계 없다고 자막이 나오곤 하잖아요.

호랑녀 2004-06-18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물론 또다른 논란들이 있었지만, 요즘은 정통 왕들의 사극보다는 다모나 장금이 같은 서민들의 얘기가 더 재밌더군요. 필요에 의해 왜곡을 해야 한다면, 그게 좀 과장되었거나 부풀려졌다는 걸 알려주었음 좋겠어요. 알아서 판단해라 하지 말구.

호랑녀 2004-06-22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난정이요
세종대왕이랑 함께 살던 소현왕후 심씨... 말씀이신 거죠?(가물가물~) 아버지 오빠(동생?) 다 죽었는데도, 찍소리 못하고... 남편의 바람기를 견뎌야 했던...
저는 중종의 첫번째 부인 신씨 생각이 나서, 그 후로도 경복궁에 갈 때마다 저기가 치마바위인 게로구나, 저기다 치마를 펴놓으면 보였을라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ㅠㅠ
 
애벌레 찰리
크리스토퍼 샌토로 그림, 돔 드루이즈 글, 강연숙 옮김 / 느림보 / 200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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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늦둥이 다섯 살 수영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고 바로 애벌레이다.

지난 5월, 효도방학이라고 며칠 쉬어주기에, 전라도에 계시는 양가 부모님을 나 몰라라 하고 경상도 토함산의 자연휴양림에 갔다.

가고 오는 게 좀 멀었지만 사람도 거의 없어서 푹 쉬다 오기엔 그보다 더 좋은 게 없었는데, 휴양림 놀이터에서 수영이는 난생처음 애벌레를 눈여겨보았다.

작고 꼬물거리는 것이 처음에는 그저 징그럽기만 했는데, 갑자기 나무 위에서 툭~, 하필이면 그 넓은 땅을 두고 수영이의 머리 위로 애벌레가 떨어져버린 것이다.

속없는 엄마 아빠는 아이들만 놀이터에 두고 산책을 가버렸고, 언니 오빠는 그저 옆에서 소리만 지를 뿐 수영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우리 수영이는 거의 숨이 넘어가버렸다.

엄마 아빠가 산책에서 돌아왔을 때는 어느 정도 사태가 수습이 된 후였고, 그냥 그럴 수 있는 일이겠거니 하고 넘겼던 속없는 엄마는 얼마 전, 사태를 좀더 심각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벌레들이 기승을 부리자 아파트 관리 아저씨들이 화단의 나무들에 소독약을 뿌린 모양이다. 퇴근길, 아파트 현관 입구에는 사실 엄마가 보기에도 썩 즐겁지는 않게 애벌레들이 꼬물꼬물거리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걷던 수영이는 다시 파랗게 질렸고, 그 후로는 아파트 밖만 나가면 아예 걷지를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애벌레가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 안아달란다.
결국, 아파트 앞 보행자길로 겨우 500미터 남짓 떨어진 어린이집까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자전거를 타고 수영이를 데려다 주고 데려와야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런데 지난 주, 학교도서실에 자주 오는 한 엄마가 우연히 그림책을 보여주었다. <애벌레 찰리>. 일단 책 표지와 내지에 있는 꼬물거리는 애벌레가 얼마나 예쁜지, 애벌레의 표정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그림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애벌레 찰리가 처음 세상에 나왔는데, 길에서 만난 원숭이도, 토끼도, 쥐도 모두 못생겨서 싫다며 찰리와 놀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못생긴 게 뭔지도 몰랐던 찰리는 너무너무 슬펐다.
집으로 돌아간 찰리는 외로워서 이불을 덮고 잠을 잔다(이 장면, 실을 풀어서 자신을 돌돌 싸서 침낭처럼 속으로 쏙 들어가는 게 얼마나 예쁜지...).
가을과 겨울이 지나고 꽃피는 봄이 되자, 찰리가 그 이불 속에서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무지개빛 날개가 솟은 것이다.

아름다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데, 지난 번 애벌레일 때 보았던 원숭이며 토끼며 쥐들은 아름다운 나비 찰리와 놀고싶어 한다. 그러나 겉모습만 보고 좋아하는 그들은 진짜 친구가 될 수 없다면서, 이번엔 찰리가 외면한다. 그리고 못생겨서 따돌림을 당한다며 울고 있는 애벌레를 만나게 된다.

찰리는 그 애벌레를 물가로 데려가서 안고 물 속에 비친 모습을 보여준다. 애벌레와 찰리가 겹치면서 마치 애벌레의 등에 찰리의 날개가 달린 것처럼 아름답게 보인다(이건 설명이 나온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나온다. 아이가 발견하고 즐거워한다.). 그리고 애벌레에게, 너도 이렇게 아름답게 될 거라고, 그러니 슬퍼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퇴근하자마자 알라딘에 들어와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일찍 도착한 책을 들고 수영이에게 읽어주었다.
처음에 수영이는 제목이 애벌레 찰리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외면하고는 저리로 가버렸다. 난 개의치 않고 그냥 큰소리로 읽었다.

두세 페이지 넘어가니 어느새 수영이는 내 곁에서 책을 보고 있다. 다 읽었더니 벌써 엄마의 심리를 파악한 수영이,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래도 그때 내 머리에 있었던 애벌레는 나쁜 애벌레였어.'

라고 항변한다. 길게 설명해봐야 아이의 방어심리만 자극할 것 같아서, 그냥

'그랬어?'

 하면서 무관심하게 굴었다.

재미는 있었든지 그 책을 이리 넘겨보고 저리 넘겨보고 하던 수영이, 오늘은 아침에 출근하는데(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갑자기

'엄마, 애벌레 다 어디 갔어?'

라고 묻는다.

'몰라. 사람들이 못생겼다고 싫어하니까 실망해서 숨어버렸나 봐. 잠 푹 자고 일어나면 아마 날개가 돋아서 나비가 되겠지.'

라고 대답해주었다.
수영이는 벌써 나비를 찾으려고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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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06-16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정말 효과적이군요....이 책 기억해둬야 하겠슴다....엄마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가을산 2004-06-16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엄마에요... ^^

호랑녀 2004-06-17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마냐님 가을산님.
솔직히 말하자면 멋진 엄마는 아닌데, 그래도 가끔 멋지려고 노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