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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마을 헤이온와이
리처드 부스 지음, 이은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올해 초, 시골에서 올라오신 어머님을 모시고 잠시 자유로 드라이브를 간 적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이정표는 '예술인마을 헤이리'.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나는 남편을 졸라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겨울인 데다 곳곳에 공사중이었던 관계로 다소 삭막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과연 헤이리였다. 세계적인 여성건축가가 지었다는 마을 가운데의 북카페, 소나무숲 밑에 지어진 담장도 없는 집들, 곳곳에 통유리로 만들어진 미술관... 나도 출판계나 예술계에서 일하면서 들어와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사실, 만일 내가 혼자 산다면, 그래서 신경 써야 할 가족, 아이들만 없다면, 내가 살고싶다고 막연하게 동경하던 곳은 영국의 헤이온와이였다(헤이리의 모델이 되었던 곳이라고 했다). 고성에 헌책방을 차렸다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그렇게 한적한 시골마을에 수십 개의 헌책방이 들어서 있다는 것도 정말 근사한 일이고, 가끔 신문 잡지에 실리는 사진도 딱 내 머릿속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그 헌책방마을에 관한 책이 나왔다고 했다. 책 표지도 정말 멋있었다. 어쩌다 보니 구입목록에서 자꾸 뒤로 밀리고 있었는데, 마침 책읽는나무님께 빌릴 기회가 되어 빌릴 수 있었다.
그. 런. 데...
자꾸 눈에서 튕겨나간다. 눈에서 튕기고 머리에서 튕긴다. 어려운 책은 절대 아닌데, 아무리 눈에 힘을 줘도 읽히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가 요즘 이렇게 책을 안 읽었는가 반성했다.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다음에 읽었던 다른 책들은 그런대로 잘 읽힌다. 심지어는 굉장히 두꺼운 600페이지짜리 책도 진도가 잘만 나갔다. 그렇다면 내 탓이 아니다.
도대체 이 리처드 부스라는 사람은, 이렇게 재미있고 좋은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이렇게 재미없게 썼는지 연구 대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자신이 객기를 부린 일들에 대한 자랑이다. 겸손의 또다른 표현일지 모른다고 내처 읽었는데, 겸손보다는 오만이다. 적어도 책을 다루는 사람은 좀 있어 보였던 내 평소의 느낌과는 달리, 다소 천박한 느낌까지 들었다. 헌책방마을에 관한 책이 아니라, 그냥 그렇고 그런 자서전에 불과했다.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와 비교해 보자. 책을 좋아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책을 좋아하는 남편과 만나 서재를 꾸미는, 그야말로 신변잡기적인 일을 그녀는 정말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읽는 동안 내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고, 괜히 나 혼자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재미있을 소재를 가지고, 이 사람, 어쩌면 책을 이렇게 썼단 말인가.
내 책이었으면 진즉 던졌을 책을, 그래도 빌린 책이라, 곧 책읽는나무님께 돌아가야 할 책이라, 이를 악물고 책을 끝까지 읽어내었다. 그런데 덮은 지 일주일이 지나니, 별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별로 아쉽지도 않다.
책이 그럴 수 있다는 게, 내가 그렇게 기대했던 책이 이렇다는 게 정말 슬프다. 책 표지는 정말 내 마음에 쏙 들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