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저녁,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홍보팀이 발칵 뒤집어졌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ETRI 기반기술연구소 김현탁 테라전자소자팀장(47)과 통화하려 했으나 2시간 가까이 그의 행방이 묘연했던 것. 김 박사는 이날 56년간 풀리지 않은 현대물리의 난제인 ‘절연체가 전기가 통하는 금속물질로 바뀌는 현상’을 규명, 발표해 세계 물리학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을 터뜨렸다. 가까스로 찾아낸 김 박사는
집 근처에서 가족과 오붓하게 식사 중이었다고 한다. 그의 휴대전화는 잇따른 축하전화에 이미 배터리가 나간 상태. 13년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한 우물(물리학)만 파 온 ‘일벌레’의 가슴 속에는 ‘이날의 기쁨’보다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앞섰다. 1976년 ETRI 설립 이래 최고 연구성과로 평가받는 ‘모트 금속-절연체 전이(MIT)’ 현상이 발표되고 하루가 지난 2일. 대전 유성구 ETRI 연구실에서 김 박사를 만났다.
# 1. 광부의 아들, 물리학에 빠지다
그는 가난한 광부의 아들이었다. 1958년 7월 11일 강원 삼척시 도계읍 탄광촌에서 김완규·안판례(사망)씨의 6남매 중 셋째(장남)로 태어났다. 좁디좁은 집 안에는 아버지를 묻혀 온 석탄가루가 먼지처럼 늘 날아다녔다. 9살 때인 67년, 아버지 김씨가 고혈압으로 숨지면서 살림은 더욱 빠듯해졌다. 어머니 안씨는 행상과 물장사(다방)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6남매를 키워냈다. 어머니는 공부를 썩 잘하는 아들이 은행원이 돼 돈을 벌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외가가 있던 포항에서 포항초등·동지중·동지상고를 다녔다.
하지만 김 박사의 마음속엔 ‘남다른 꿈’이 자라고 있었다. 왠지 수학·물리·화학 과목은 공부를 해도 해도 지겹지 않았다. 교과서뿐 아니라 선생님이 따로 내주는 문제를 푸는 것도 ‘공부’가 아닌 ‘행복’이었다. 어머니를 따라 장사를 도울 때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창피함이 앞섰지만, 과학 문제를 푸는 데는 그가 ‘최고’였다.
“교과서 말고 참고서에 응용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사서 봤을 텐데…. 가난 때문에 참고서라는 게 뭔지도 몰랐습니다.(허허)”
# 2. 이론적 토대를 쌓다
등록금 10만원쯤으로 사립대의 3분의 1수준인 부산대 물리학과 78학번으로 입학했다. 이어 서울대 자연대학원에서 이론물리를 전공했다. 대학 시절, 그의 손엔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일생을 다룬 문고판이 항상 들려 있었다. 그는 당시를 한마디로 ‘스탠더드형 학생’이었다고 말한다. 물리학의 핵심인 창의적 사고를 하려면 탄탄한 이론적 바탕이 먼저다. 길을 걸을 때나 밥을 먹을 때, 휴식을 취할 때도 그는 “지도교수가 낸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부산대 2학년 때인 79년, 자기장을 완전히 밀어내는 초전도체(제1유형 초전도체)에 관한 이론을 밝힌 쿠퍼(7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교수의 특강을 듣기 위해 서울대까지 올라간 일도 있다.
“어린 대학생으로선 쿠퍼 교수의 강의 내용은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물리학의 대가’를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명이었습니다.”
부산대 시절 도서관 캠퍼스 커플로 아내 이은희(47)씨를 만났다. 화학을 전공하던 아내 또한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식공학 책임연구원으로 21년째 근무하고 있다.
# 3. 가시밭길을 걷다
석사를 마친 뒤 ㈜한국타이어 기술연구원과 ㈜시스템베이스 개발부장으로 ‘밥벌이’에 나섰다. 지방대를 나오고 유학은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물리학에 대한 열정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86년 학계에서 ‘고온 초전도 현상’이 발견된 이후 조명받기 시작한 모트(Mott) 절연체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다. 입사 8년차, 박사 학위에 도전하려 일본 도쿄대에 낸 원서는 퇴짜를 맞았다. 34살짜리 학생을 무턱대고 받았다가 취직조차 안 되면 어쩌나 하는 부담을 학교 쪽에서 느낀 것 같았다. 결국 그를 받아준 일본 쓰쿠바(筑波)대학원에서 10년 넘게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고온초전도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따냈다. 히로모토 우에 쓰쿠바대 지도교수도 그의 노력에 3년간 쓰쿠바대에서 전임강사로 일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나는 애초부터 가진 게 없었습니다. 훌륭한 물리학자가 돼서 자연현상을 밝히는 게 내 유일한 꿈이었지요. 이것마저 놓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가족을 남겨두고 혈혈단신 떠난 6년간의 일본 유학길에서 그는 반세기 넘도록 풀리지 않는 난제와 힘겨운 씨름을 벌였다. 새벽 6시에 기숙사에서 나와 교내 식당에서 미소시루(된장국)와 낫토(발효된 콩), 달걀 한 개가 담긴 210엔짜리 밥을 하루 세끼 먹어가며 연구에만 몰두했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질 때면 한국에 남겨둔 가족 생각과 ‘지금이 마지막 기회’란 절박함으로 채찍질했다. ETRI로 이직한 98년, 그는 이미 불혹을 넘기고 있었다.
# 4. 끊임없이, 남모르게, 확실하게
고온초전도 현상 발견 이후 세계 곳곳에서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상황이라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판단했다. 연구단계 초기 김 박사는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팀원의 마음부터 움직여야 했다. 처음엔 농담 삼아 “특허를 1000억원에 팔아 큰 부자가 되자”고 했다. 그의 말처럼 ‘1년 365일 언제 끝날 줄 모르는 합숙’이 계속됐다. ETRI 쪽에도 실험기자재를 24시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해 허락을 받아냈다. 특히 ‘모트 가설’ 연구는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진행했다. 국책연구소에서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모호한 원천기술보다는 당장 상업화할 수 있는 과제를 다뤄야 했기 때문. 이번 연구의 공식 과제명도 ‘테라급 트랜지스터 개발’로 돼 있다.
‘모트 금속-절연체 전이 가설’ 논문은 지난해 5월과 올 6월 세계 최고 권위의 물리학 저널 2곳에 게재됐다. 스웨덴과 일본의 연구진이 올 1월과 3월 각각 유사한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지만, 그들은 ‘기억되지 않는 2등’일 뿐이었다.
대전=황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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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막은 이제 부터
김현탁 박사가 ‘부도체에도 전류가 흐를 수 있다’는 이론을 실험으로 규명함으로써 반도체를 대체할 신소재 개발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이를 상용화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도 험하다. 연구팀도 본격 상용화 시기를 ‘3년 이후’로 조심스럽게 내다본다.
민병일 포항공대 교수는 이에 “모트 교수가 50여년 전 부도체에 외부 환경을 바꿀 경우 전기가 흐른다는 이론을 내놓은 이후 실험장비로 이를 입증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며 “추가 연구를 진행하면 모트 현상을 이용한 신소자인 ‘모트 트랜지스터’의 상용화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부가가치 100조원’, ‘한국 첫 노벨 물리학상 수상 가능’과 같은 선정적인 기대감은 너무 성급하다는 지적도 많다. 즉 연구 성과가 고출력, 초소형의 신소자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느냐가 진정한 평가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 연구팀도 스스로 “상용화까지의 길을 따지자면 이제 막 마라톤의 첫발을 디딘 셈”이라고 할 정도다.
여기에 모트 가설에 대해 세계적으로 무수히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이번 연구 결과가 ‘결정적, 독창적’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다소 이르다는 평가도 있다.
지금까지는 연구기관이 나섰지만, 워낙 다양한 분야로의 분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예산이나 조직 등에서 범정부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개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전=황현택 기자
larchide@segye.com
쿨럭... 그러니까 홀아버지가 돈벌고 살림하여 아이를 길러 자식이 대성하는 케이스는 그 반대의 경우에 비해 너무나 드물단 말이지.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