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엄마는 생각보다 일찍 동이 난 김장 김치 때문에 겨울이 가기 전에 부랴부랴 아홉포기 김치를 담그셨다. 엄마는 김치를 담그시느라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겨우 한 시간 남짓 눈을 붙이고 내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셨다. 아침 한 끼 안먹어도 괜찮으니 그냥 주무시라는데도 엄마는 졸려서 떠지지 않는 눈을 부비며 기어이 아침을 챙겨주셨다.  

엄마는 내게 무엇 하나 차려주어도 항상 예쁘고 좋은 그릇에 가지런히 음식을 올려서 주신다. 내게 말 몇마디 건네시다가도 시계를 보며 출근 시간이 혹여 늦어질까 눈치를 살피신다. 야근하지 않는 날, 저녁식사를 집에서 하게될 날이면 미리 전화하셔서 내가 집에 도착해 식사할 시간에 맞춰 음식을 하신다. 바로 해서 먹어야 맛있다고 하시며.

엄마는 아빠가 음식쓰레기 버리는 것도 싫어하신다. 아빠가 음식쓰레기를 버리신다며 음식쓰레기 통을 들고 나가면 엄마는 부리나케 아빠를 막아선다. 음식쓰레기 통을 들고 버리러 나가는 남자들 보면 집에서 구박 받는 남자들 같아 보여서 싫다고 그만 두라고 말린다. 그런거 상관없다고 아빠가 음식쓰레기 통을 안 놓아도 끝내 아빠를 현관에서 거실로 뒷걸음질 하시게 만든다.  

올해 엄마는 환갑. 엄마의 60년이 어땠는지 그 중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건 절반 정도도 채 안된다. 엄마의 꿈이 무엇인지는 알아도 그걸 이룰 수 있게 도와드릴 능력도 현재로선 없다. 그렇지만 아무리 엄마가 '환갑이 대수냐, 어차피 돌아오는 생일인데 늙는게 무슨 자랑이라고 별스럽게'라고 하셔도 별스러운 생일날로 만들어드리고 싶다.  

디스크 때문에 곧지 않은 엄마의 허리마냥, 그 허리를 볼 때마다 내 마음도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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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줄거리 및 원작 줄거리 있음 

거꾸로 사는 남자가 있다. 노인으로 태어나 갓난 아기가 되어 세상을 떠난다. 그 남자만 그렇다. 그 남자를 둘러싼 다른 모든 사람들은 거꾸로 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늙어가고 세상을 떠날 때 홀로 젊어지고 어려진다. 첫눈에 반했던 소녀는 아가씨가 되었다가 마흔을 넘어서는 중년이 되고 할머니가 되어간다. 너무도 당연하게 시간이 흐른다.  

오로지 그만 다르게 변한다. 시간의 돌연변이인 그는 불행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함께 있을 수 없고, 그 사람과의 사이에 낳은 자식도 부모로서 돌봐 줄 수 없다. 그래서 떠난다. 홀로. 떠난 그는 삶의 기억을 치매 환자의 기억력 수준으로 남기고 몸은 아기가 되어 마지막을 향해 작아져 간다. 한없이 작아져 사랑하는 여인의 늙어 주글주글한 주름진 손과 가느다란 팔에 안겨 새근새근 영원히 잠이 든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다고 해도 사랑을 갈라놓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원작과는 다르게 영화는 그렇게 한 편의 러브 판타지를 펼쳐 놓는다. 원작의 그는 쉰살이 넘은 아내의 모습에 질려하고 억지로 웃는다. 그는 젊은 청년이므로. 그리고 손자와 함께 유치원을 다니다 유모의 기억을 안고 마지막 숨을 거둔다.  

기막히게 감동적이고 완벽한데, 아기가 되어 사랑하는 여인의 품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벤자민 버튼과 할머니가 된 그녀는 그렇게 행복했다는 이야기인데, 그런데 마음이 영 불편하다. 그 마음이 원작을 들춰보고 나서야 편해진다. 이 편이 훨씬 사실적이구나. 그리고 그 간극은 이렇게도 멀구나, 확인하고 나자 마음이 편해졌다. 

판타지는 판타지, 그래서 시간을 거슬러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할 자신이 없는 나는 더 우울해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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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2-17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리스님, 저도 영화부터 봤어요. 후반으로 가면서 세월의 흐름(거꾸로)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그 이전보다 감동이 밀려오더군요. 원작소설은 조만간 읽을듯.^^

이리스 2009-02-17 18:54   좋아요 0 | URL
아이가 되어 잠들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또 현실과 같기도 한 듯 합니다.
육체의 변화만 다를뿐..
 

회사가 무척 어수선하다. 타 매체긴 하지만 편집장이 갑자기 바뀐 곳도 있고, 나가버린 곳도 있다. 술렁술렁, 구조 조정이란 말이 돌고 있고 면담이란걸 하기 시작한다. 정치, 줄타기, 이런 것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덕분에 간만에 아주 극심한 두통을 제대로 느끼고 있다. 

카모마일 티를 한 잔 만들어 마시면서 기한 넘긴 원고를 어떻게든 끝내보려 하는데 좀처럼 진전이 없다. 우연히 사이코 패스 테스트란걸 했더니만 9개 문항에서 5개 문항이 사이코 패스란다. 이게, 뭐냐. 테스트를 유난히 좋아하는 편이라 뭔가 테스트라고 하면 잽싸게 해보는 편인 나로서는 멍, 할 뿐.  

맨 정신에 못할 일을 해놓고 취해서 그랬다고 핑계나 둘러대고, 기억 까지 부분 부분 잃어주신 무수한 주말들이 원망스럽고 한심해 곳곳에 금주 선언을 하고 다녔고 오늘도 욕을 먹어가면서 와인 약속을 깨고  안갔다. 안 마신다. 안 마셔. 

머리가 지끈거린다.  

지금 멜론 채널, ROCK 에서는 I'll be ok, 가 흘러나온다.  

월요일 밤, 사이코 패스 테스트 문항 5개에 사이코 패스라고 답한 나는 두통에 시달리며 락 음악을 틀어놓고 아까부터 계속 같은 줄에서 한 자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워드 창만 열었다 닫았다 반복한다. 

그러니까,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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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1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사이코 패스 테스트란걸 했더니만 9개 문항에서 5개 문항이 사이코 패스란다.

저기요.. 우린 이제 모르는 사람이에요..=3=3=3=3=3=3=3

이리스 2009-02-17 00:00   좋아요 0 | URL
어딜가십니까!!!!
 

그는 물고기 같았다. 물 위로 기세좋게 튀어 올라 사방으로 물을 튀기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서야 만족스럽게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갔다. 펄떡펄떡 온 몸을 휘어젖히며 육지에서건 물속에서건 강렬하게 자신을 어필해다. 아가미 사이로 보이는 붉은 색 속살처럼 뜨겁고 동시에  미끈한 비늘에 둘러싸인 물고기의 몸처럼 차가웠다. 

자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면서도 끊임없이 확인 받고 싶어하는 그는, 자신의 매력을 상대방에게서 인정 받지 못하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억울해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억울해 하는 모습과 삐죽 나온 입술이 만들어낸 표정 조차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았다.  

자신을 잡아주기를 바라면서도 미끌거리는 몸으로 유유히 타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재주를 가진 물고기 같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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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16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뜰채가 필요하군요..

이리스 2009-02-16 13:06   좋아요 0 | URL
네, 그런데 뜰채가 대체 어딨;;;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책이 나왔을 때 서점에서 대강 훑어봤었다. 그리고 덮었다. 그 책에 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본 건 초호화 캐스팅 때문이었고, 약속 시간 사이에 딱히 할 일이 없어서였다. 

새로울 것 없는 로맨틱 무비 한 편, 이라고 짤막하게 감상평을 남겨도 될 일인데, 무심하게 넘기기에는 켕기는 부분이 좀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홀랑 넘어가서 간이랑 쓸개를 다 내놓고 춤춰댔던 나로서는 지지의 행동이 어찌나 익숙하던지. 

남자고 여자고 간에 상처 받는 걸 원하는 쪽은 없다. 자기애가 도를 지나쳐서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러느라 놓쳐버린 인연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한 모든 그럴싸한 이유들은 그저 자기 방어를 위한 구실일 뿐이다. 문자메시지, 블로그, 메신저.. 이런 손쉬운 연락망 때문에 상처 받을 길은 더 많아졌고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더 자기 방어에 신경을 쓴다. 반해놓고도 반하지 않은 척, 자신에게 반하지 않은 상대를 두고도 사실은 반했을 거라고 끝까지 우기기. 

모든 법칙에 예외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핑계로 영화는 따뜻한 결말로 마무리 된다. 그래, 그렇게라도 희망이란걸 갖게 해준다는데에 불만은 없다. 반하지 않았던 상대를 반하게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시종일관 눈이 즐거운 스타들 총 출연에 해피엔딩이라니 로맨틱 무비의 소임을 다한 것.   

눈치없이 실수를 한 꼴이 된 지지가 눈물을 글썽이며  알렉스를 향해 던진 통쾌하고도 절절한 대사에 영화의 주제가 담겨 있다. 해서, 이 영화의 핵심은 이런것 아닐까.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자, 끝까지 장 맛을 못보리라.'

자, 이제 장 담그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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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신도 공감했는가...?!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He's Just Not That Into You)
    from 라디오키즈@LifeLog 2009-02-19 13:19 
    오랜만에 팀원들이 몰려가 본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He's Just Not That Into You). 헐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대거 참여하며 여자들이 모르는 남자들의 속내를 끄집어 내겠다고 시원스레 포부를 밝히고 시작한 영화는 정말 남자들의 속내에 접근했는지 까지는 확언해주기 어렵지만 다분히 공감가는 주제와 이야기들로 관객을 영화 속으로 이끌어갔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작가가 다시 한번 실력을 발휘했다지만 섹스 앤 더 시티를 제대로 챙..
 
 
다락방 2009-02-15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이리스님.
저는 이 책이 그저 그런책인줄로만 알았다가 완전 반했더랬어요. 정말 지독하게 재미있는 책이었죠. 계속 낄낄대고 밑줄 박박 그어가며 읽었어요. 지금도 책장 어딘가에 있을거예요.

도대체 그 책을 어떻게 영화로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저도 볼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이리스 2009-02-15 23:57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저는 아무래도 그 내용이 우리나라 정서랑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흥미가 반감되었던 것 같아요. 갑자기 다락방님이 밑줄 벅벅 그어놓은 책을 읽어보고 싶네요. ㅎㅎ

프레이야 2009-02-17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요샌 봐야겠다싶은 영화가 왜 이리 많대요.ㅎㅎ

이리스 2009-02-17 23:25   좋아요 0 | URL
봐야겠다 싶은 영화와 책은 언제나 거의 산더미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