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기도

-체로키 인디언의 기도문

 

한 사람의 여행자가

이제 또 우리 곁으로 왔다네.

우리와 함께 지내는 날들 동안

웃음이 가득하기를.

하늘가의 따스한 바람이

그대 집 위로 부드럽게 불어오기를.

위대한 정령이 그대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기를.

그대의 모카신이 눈밭 위 여기저기에

행복한 발자국을 남기기를.

그리고 무지개가 항상

그대의 어깨를 어루만져주기를.

 

얼마 전부터 태동이 느껴진다. 태동은, 아, 내 안에 무언가 꿈틀댈 때의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너와 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이토록 자명한 감각이 주는 확신.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몸 안에서는 두 개의 심장이 뛰고 있다. 아기와 내가 하나의 육신에 영혼을 의탁해 사계절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직 얼굴 한 번 마주하지 못한 아기에게 진한 사랑의 연대를 느낀다. 세상 그 어느 곳보다도 은밀하고 안전할, 내 어둡고 따뜻한 자궁이 누군가의 온 우주란 사실, 내 안에 작고 여린 미래가, 만개할 하나의 가능성이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날마다 벅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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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자각하게 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도록 장려한다. 처음엔 퍽 즐거웠던 것 같다. 직장에서나 어디서나 섹슈얼리티를 부각시킬 기회도 없고 나이듦에 따라 점점 무성인간이 되어가는 판국에 탱고판에 오면 모두가 나의 성적 매력을 높이 평가하고 관심가져주니까. 여기 오면 비로소 제대로 된 한 마리 암컷이 된다. 회춘한 거 같다. 근데 여기의 존나(라고 안 할 수가 없다) 바보 같은 점은 모든 여자를 오로지 여자로밖에 안 본다는 것이다. (이건 남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여자로 봐줘서 즐거웠는데 이제는 여자로밖에 안 보니까 지겹고 징그럽다.

 

이 무슨 고약한 변덕인가 싶지만 그럼에도 한 인간이 그가 지닌 생물학적 특질로밖에 규정되고 인식되지 않는다는 건 이곳의 너무나 큰 한계이자 염증나는 지점이라고. 난 여성의 육체를 가졌지만, 그 사실이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이거나 자아상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인 것은 아니다.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특정 상황에서 관건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건 어디까지나 그저 생물학적으로 내가 처해 있는 조건일 뿐이라고. 내게 가슴이 있다고 해서 내 본질이 가슴 그 자체는 아니잖아. 근데 탱고판에 있다보면 점점 그렇게 되어간다. 내가 가슴이 되어간다고-_- 애당초 '나는 가슴이고, 가슴인 나 자신이 만족스럽다'고 여긴다면 하등의 문제가 없겠지만, 나로서는 이제 좀 질린다. 탱고판의 공허한 화려함도 부질없고 수동적인 땅게라 역할에도 한계가 느껴진다. 여러 면으로 정체기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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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45분 용산에서 출발해 9시58분 전주 도착. 전동성당 둘러보고 한옥마을 탐방. 전통 기와집들 사이로 간간이 끼어있는 적산가옥이 인상적이었다. 카페로 개조한 곳에 우연히 들러 구석구석 살펴보게 되었는데, 적산가옥이라는 게 참, 일본 애니메이션에선 크게 도드라지지 않지만 실제로 보니 특유의 을씨년스러움이 있었다. 기괴미라고 해야 할까. 묘하게 그로테스크한 매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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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락하러 엘땅고에 갔다가, 모르는 사이 무슨 레슨이 잡혔는지 홀을 못 쓰게 되었다. 허탕치고 돌아갈 밖에. 그래도 그냥 가긴 아쉬워 근처를 배회하다 우연히 들어갔던 곳.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정기적으로 소규모 콘서트를 여는 모양이었다. 근처에 이런 보석같은 데가 다 있었다니, 쁘락 허탕친 걸 충분히 보상 받고도 남을 만큼 너무너무 멋진 공연이었다. 재즈 공연은 음반으로만 듣는 것과 현장에 있는 게 완전히 다르더라. 특히 즉흥연주 파트- 현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감흥이 굉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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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넘게 늘 다니던 길인데도 눈 오니까 새롭다. 고운 설경을 차창 밖으로 속절없이 흘려보내기 아까워 핸드폰으로 열심히 찍었건만 정작 결과물은 영 마음에 안 차네. 치마폭을 그물처럼 펼쳐 물결 위 반짝이는 별빛을 주워담으려다 치마만 젖고 말았더라는,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그 어리석은 여자가 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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