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자각하게 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도록 장려한다. 처음엔 퍽 즐거웠던 것 같다. 직장에서나 어디서나 섹슈얼리티를 부각시킬 기회도 없고 나이듦에 따라 점점 무성인간이 되어가는 판국에 탱고판에 오면 모두가 나의 성적 매력을 높이 평가하고 관심가져주니까. 여기 오면 비로소 제대로 된 한 마리 암컷이 된다. 회춘한 거 같다. 근데 여기의 존나(라고 안 할 수가 없다) 바보 같은 점은 모든 여자를 오로지 여자로밖에 안 본다는 것이다. (이건 남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여자로 봐줘서 즐거웠는데 이제는 여자로밖에 안 보니까 지겹고 징그럽다.

 

이 무슨 고약한 변덕인가 싶지만 그럼에도 한 인간이 그가 지닌 생물학적 특질로밖에 규정되고 인식되지 않는다는 건 이곳의 너무나 큰 한계이자 염증나는 지점이라고. 난 여성의 육체를 가졌지만, 그 사실이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이거나 자아상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인 것은 아니다.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특정 상황에서 관건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건 어디까지나 그저 생물학적으로 내가 처해 있는 조건일 뿐이라고. 내게 가슴이 있다고 해서 내 본질이 가슴 그 자체는 아니잖아. 근데 탱고판에 있다보면 점점 그렇게 되어간다. 내가 가슴이 되어간다고-_- 애당초 '나는 가슴이고, 가슴인 나 자신이 만족스럽다'고 여긴다면 하등의 문제가 없겠지만, 나로서는 이제 좀 질린다. 탱고판의 공허한 화려함도 부질없고 수동적인 땅게라 역할에도 한계가 느껴진다. 여러 면으로 정체기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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