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현재 상황을 보건대 수요일의 사물함 놀이는 우리 셋 만의 마이너 문화로 전락할 가능성이 큰 것 같다. 물론, 오늘 처음으로 사물함 놀이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은 새로운 누군가가 이 쪽지를 읽게 된다면 나는 정말 기쁠 것 같고, 서면으로라도 꼭 환영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글쎄 회의적인 전망을 떨칠 수는 없네. 여하튼, 그래도 나는 이 놀이가 즐겁구나. 학원에 있는 수많은 사물함 중에 하나가 우리들의 비밀 우체통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근사하지 않니. 그리고 글이라는 건 일상 언어에 비해 깊이와 밀도 면에서 그 차원이 다르잖아. 나는 너희와 일상어가 아니라 글로 친해지게 된 점이 무엇보다도 기뻐.
수요일의 사물함에 무엇을 적어넣을까 고심하다가 결정한 건데, 앞으로 나는 수요일마다 계속 이렇게 시를 소개하려고 해. 시를 같이 읽었으면 좋겠어. 그림 그리는 우리들에겐 간간히 시로 목을 축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나의 개인적인 경험인데, 화흥이 제일 많이 솟구치는 순간은 술 마실 때랑 시를 읽을 때인 것 같아. 나중에 의진이가 술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그때는 꼭 우리 취중시화를 나눠 갖자. 자작시와 자작 그림을 그려 맞교환하는 것이지. 하하.
참, 그리고 엊그제 의진이가 시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잖아. 내가 추천해준 시인이지만 나도 그 사람의 시를 잘 몰라. 그런데 내 생각엔, 시라는 것도 그림하고 같아서, 그림도 보면, 뭘 그렸는지 몰라도 감동적일 때가 있잖아. 느낌으로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잖아. 시도 그런 것 같아. 원시시대의 시인은 아마도 샤먼이었겠지. 오늘날의 샤먼인 무속인들이 신내림 상태에서 말하는 걸 보면, 어법에 맞는 말 안 맞는 말 다 섞어서 주절주절 주문을 외는데 그 사이에 간혹 선뜩한 예언들이 불꽃처럼 튀어나오곤 하잖아. 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고등학교 때는 시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회를 치듯이 배웠지만, 시라는 걸 그렇게 읽으면, 그건 정말이지 시에 대한 모독인 것 같아. 시는 그냥 알쏭달쏭하게, 그래서 뭔가 읽고 나면 신비로운 여운이 남도록, 그렇게 읽는 것이 시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해. 아름다운 그림도 그렇잖아. 정말 아름다운 그림은 풀리지 않는 신비로운 비밀과도 같아서 보고 또 봐도 언제나 새롭고 그래서 자꾸만 잔상이 남잖아. 내가 오늘 가져온 시는 좀 짧아. 그래도 여운이 길지.
그대의 시 앞에
-이시영
고독을 모르는 문학이 있다면
그건 사기리
밤새도록 앞뜰에 폭풍우 쓸고 지나간 뒤
뿌리가 허옇게 드러난 잔바람 속에서 나무 한 그루가
위태로이 위태로이 자신의 전존재를 다해 사운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