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그날 아침의 사건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토모야시   저는 제 딸아이 마사코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딸애는 일하러 나가는 길이었죠. 전 친구를 만날 예정이었고요. 그때 공습경보가 울렸습니다. 전 마사코에게 집으로 가겟다고 했어요. 그애가 말했죠. "전 사무실에 가봐야겠어요." 전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하면서 경보가 해제되기를 기다렸죠.
침구를 갰습니다. 벽장도 정리하고요. 물걸레도 창문도 닦았지요. 그 때 번쩍하는 섬광이 일었어요. 처음에는 카메라 플래시이겠거니 생각했죠.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소리지요. 섬광이 눈을 찔렀어요.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주변 창문들의 유리가 죄다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어요. 어머니가 저한테 조용히 하라고 쉿 하실때와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전 서있지 않았어요. 다른 방으로 날아가 있었답니다. 제 손에는 아직 걸레가 쥐어져 있었지만, 이젠 바싹 말라 있었어요. 그때 머릿속에는 온통 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이웃 사람 한 명이 거의 벌거벗다시피 한 꼴로 서 있더군요. 피부가 몸 전체에서 벗겨져 내리고 있었지 뭡니까. 피부가 손가락 끝에 매달려 있었다니까요. 저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물었지요. 그는 너무나 기진맥진한 나머지 대답도 못했습니다. 그는 이리저리 사방을 두리번거렸어요. 가족을 찾는구나 싶었어요. 저는 생각했지요. 가야 해. 가서 마사코를 찾아야 해.
저는 신발을 꿰어 신고 공습 대비용 두건을 챙겼습니다. 기차역으로 향했지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나와 저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서 구궁 오징어 비슷한 냄새가 났어요. 저도 혼비백산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던가봅니다. 사람들이 바닷가로 쓸려 올라온 오징어처럼 보였으니 말입니다.
한 어린 소녀가 저를 향해 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애의 피부가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마치 밀랍같았습니다. 그 애는 나지막이 중엉거리고 있었어요. "엄마, 물, 엄마, 물" 전 그 대가 마사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어요. 저는 그 애에게 물을 주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 일이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마사코를 찾아야 했어요.
저는 히로시마 역까지 내내 달려갔습니다.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지요. 어떤 이들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땅바닥에 누워 있었어요. 그들은 어머니를 찾으며 물을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저는 토키와 다리로 갔습니다. 딸의 사무실로 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했거든요.

인터뷰어   버섯 구름은 보셨습니까?

토마야시  아뇨 구름은 보지 못했습니다.

인터뷰어  버섯구름을 못보셨다고요?

토마야시  버섯구름은 보지 못했습니다. 마사코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인터뷰어   하지만 구름이 도시 전체를 뒤덮었는데요?

토마야시  딸애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니까요. 사람들이 저에게 다리를 넘어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 딸이 집으로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니기쓰 신사까지 왔을때 하늘에서 검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뭔가 싶었죠.

인터뷰어  검은 비를 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토모야시   전 집에서 딸을 기다렸습니다. 유리는 다 깨지고 없었지만 창문을 열어두었죠. 밤새 뜬눈으로 딸애를 기다렸어요. 하지만 그 애는 돌아오지 않았지요. 다음 날 새벽 6시 30분쯤 이시도씨가 찾아왔습니다. 그이의 딸도 우리 애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거든요. 그는 마사코의 집이 어디냐고 큰 소리로 왜치고 있었습니다. 전 밖으로 달려나갔지요. "여깁니다. 여기예요!" 이시도 씨는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지요. "발리요! 옷가지를 좀 챙겨서 따님한테 갑시다. 지금 오타 강 강둑에 있어요."
숨이 턱에 닿도록 뛰었지요.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서 뛰었습니다. 토키와 다리에 닿자, 땅바닥에 군인들이 누워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히로시마 역 주변에서는 더 많은 시체를 보았습니다. 7일 아침에는 6일보다 더 많았지요. 강기슭에 갔더니,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나는 계속 마사코를 찾아다녔습니다. 누군가의 외마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 귀에 익은 목소리였어요. 나는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몰골을 한 딸애를 찾아냈습니다. 그 애는 요즘도 그런 모습으로 내 꿈속에 나타난답니다. 그 대가 말했어요.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나는 딸애에게 미안하다고 했지요. "최대한 빨리 온거란다." 거기에는 우리 둘뿐이었어요. 어떡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전 간호사가 아니었으니까요. 딸애의 상처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끈적끈적한 누런 액체가 고여 있었습니다. 저는 딸애를 닦아주려고 했지만 피부가 벗겨지고 있었어요. 구더기들 천지였는데도 그것들을 닦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손으로 일일이 구더기를 집어내는 수밖에 없었지요. 딸애가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지요. "오, 마사코, 아무것도 아니다." 그 애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홉시간 후, 딸애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인터뷰어   그동안 내내 따님을 팔에 안고 계셨습니까?

토마야시   네. 제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딸애가 말했어요. "죽고싶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넌 죽지 않을 거다." 그랬더니 딸애가, "집에 가기 전에는 죽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그렇지만 그 애는 고통스러워하며 계속 울부짖었습니다. "어머니."

인터뷰어   이런 얘기를 하신다는 것이 참으로 힘드실 겁니다.

토모야시    여러분의 단체가 증언을 기록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꼭 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딸애는 제 품안에서 눈을 감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고 싶지 않아요" 죽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군인들이 어떤 제복을 입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좋은 무기를 가졌는가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봤던 것을 모두가 볼 수만 있다면, 다시는 전쟁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중 258쪽-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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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전쟁의 고통이 또는 핵의 고통이 항상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우리에게 해방이었던 히로시마 원폭투하가 인류에게는 얼마나 큰 재앙이었는지를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건 참 힘들다.
워낙에 잔인한 장면에 길들여져서였을까?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에서는 아이들은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한다.   때로는 핵폭탄 떨어뜨리면 돼요라는 말을 농담으로 삼기도 하고....
내년 수업 자료에 포함시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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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1-08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에 이런 내용도 나와 있군요. 아........ㅠ.ㅠ

바람돌이 2007-01-0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심글은 아니고 주인공 오스카의 학교 발표문이에요.

rosa 2007-01-11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업자료..란 말에 눈이 번쩍 뜨여 혹시 참고가 될까 해서 몇 줄 적습니다.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사망한 사람들 가운데 열 명 가운데 한명이 조선사람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합천에 원폭피해자 복지회관이 있다는 것, 원폭피해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2세,3세가 여전히 한국땅에서 힘겹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함께 얘기해주면 어떨까요? 역사비평사에서 나온 <한국의 히로시마>란 책을 보시면 도움이 되실 듯 합니다.

바람돌이 2007-01-12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osa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한국의 히로시마>란 책은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헤바 2009-04-14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간은 왜 그래 다른 인간을 고문하고 괴롭히는 지 모라겠어요
도대체 줌졌던 그 모든 사람은 어떤 죄를 지절렀어요?
참 인간은 그 비인간적인 행동을 어떻게 하는 지 이해가 통 안 가요

바람돌이 2009-04-14 22:32   좋아요 0 | URL
평범한 상황에서의 보통 인간들은 대부분이 저런 짓을 자신이 저지를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죠. 그런데도 세상에 저런 일은 널려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비극이겠죠.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 - 시에서 배우는 삶과 사랑
천양희 지음 / 샘터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시는 소설이나 수필같은 산문과는 달라서
시집 한 권을 다 읽고 그 중에 나의 마음을 울린 시가 단 한편이라도 있다면 그 시집은 내게 최고의 책이 된다.
어려운 말로 뭐라 하는 평론가의 말이 그다지 맘에 들어오지 않는 분야가 시이다.
시란 그야말로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며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두드리는 글이기 때문일게다.

그런 시의 숲속에서 사는 이는 가난해도 고통스러워도 행복할 것이다.
천양희씨는 시의 숲에서 건진 아름다움들을 시인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물레에서 실이 자아져 나오듯이 술술 풀려나오는 시들의 이야기는
그 물레를 젓는 이의 노동을 잊게 한다.
그저 쉽게 마음 편하게 시의 숲으로 이 실을 따라 가만 가만 따라오세요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그 수많은 시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하나같이 삶이 고통스러웠을까?
삶의 고통을 알지 못하면 시인이 될 수 없는걸까?
고통속에서 탄생한 시만이 다른 이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일까?
사람 하나의 마음을 사로잡는게 온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만큼의 어려움이라는 것을 안다면
평범하고 안이한 삶에서는 다른 이의 마음을 휘어잡는 글이 나오기 힘든거겠지....
그래서 시인은 그냥 되는게 아닌가보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고민하고 싸우고 살아간 자만이 그런 영광을 누릴 자격을 갖게 되는 거겠지...

나같은 범인은 그저 그런 시인들의 시 한자락을 만난 것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시의 숲에서 시인을 만나고
삶의 고민들을 만나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싸워야 할 것들. 보듬어 안아야 할 것들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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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순의 천일야화 1~6권 박스 세트
양영순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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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순이라면 자동적으로 누들누드가 떠오른다.
너무 기발해서 쇼킹할 정도였던 그의 첫 작품이 너무 대단해서일까?
그 뒤에 나온 작품들은 다 그냥 그만 그만했다.
결국에는 굳이 찾아읽고 싶은 생각이 슬며시 사라지는....

그런 양영순이 아라비안 나이트를 모티브로 <천일야화>를 냈다.
좀 궁금해졌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그 방대한 이야기들을 양영순은 어떻게 버무려냈으려나?
아라비안 나이트의 그 에로틱한 분위기를 양영순이라면 제대로 살려낼수 있지 않을까?
누들누드의 그 작가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맙소사!!!
작가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렸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무슨.....
딱 초반의 기본적인 설정만 빌려왔을뿐 완전히 새로운 창작이다.
세라자드의 아니 양영순의 이야기속에서 새롭게 창조된 천일야화는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라비안 나이트 원작이 내포하고 있는 주제의식과는 묘하게 만나고 있다.
인생의 아이러니!
인간의 탐욕이 낳은 불행과 고통!
신과 인간과 마신이 넘나들며 이루어내는 슬픈 군상들.....
운명의 연쇄속에서 빠져나올 수없는 존재의 슬픔....

1,2권에서는 뭐 그런대로 볼만은 하군 하는 수준이었다면
마지막 4,5,6권의 에피소드들이 압권이었다.
주나이드라는 마신과 인간사이에서 태어난 자의 운명은 인생의 아이러니를 너무나도 절실하게 표현함으로써 내내 마음이 아픈 이야기였다.
마지막 자신은 전혀 모르는 존재의 간절한 염원에 의해 자신의 생이 유지되고 있다는 에피소드 역시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였다.
뒤로 갈수록 에피소드들은 슬프고도 마음을 울린다.
어디에도 해피엔딩은 없다.
주인공인 세라자드와 왕의 운명 역시 해피엔딩은 없다.
어쩌면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비극으로 결말짓는 것이 그런 결말을 예고한 것이겟지만
그럼에도 원작의 해피엔딩을 알고있던 나는 적어도 세라자드만은 행복해지기를 바랫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이 책의 전체 구성으로 보아 틀린 결말일것이다.
마지막 세라자드의 변신 역시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누들누드라는 단편만화의 부문에서 우리나라 만화계에 하나의 큰 획을 그었던 작가 양영순이
이제 장편만화의 영역에서도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앞으로가 더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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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7-01-06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 살까말까 엄청 고민했었는데... 결국 쿠폰 줄 때 못지르니 이제는 너무 비싸군요.. 저랑 취향이 비슷한 님.. 어떠세요? 제게 권할만 하신가요? ^^;;

마노아 2007-01-06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펌푸질! 마구마구 땡기는군요!!!

바람돌이 2007-01-07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지금도 3천원 쿠폰 주는데요? 그래도 비싸긴 하군요. 사실 저는 대여점에서 빌려본지라.... 마지막 4권부터 6권은 정말 좋아요. 저는 옆지기님이랑 두분이서 같이 봐도 좋을 것 같은데... 역시 책값이...ㅠ.ㅠ
마노아님/재밌어요. 이렇게 좋은 만화는 사서 봐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자금 압박이 장난 아닙니다. ㅠ.ㅠ
 
 전출처 : 느티나무 > 외국인에게 소개하고 싶은 우리나라 문화 유산

한국인의 품을 닮은 지리산, 그 속에 아름다운 절을 찾아서

  왜 지리산인가? 지리산의 모습은 한국인의 속으로 정 많은 심성과 닮았다. 그 깊이와 폭을 가늠할 수 없으면서도, 언제나 후덕하고 시련을 꿋꿋하게 이겨나가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지리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지리산에도 그 속에 품은 절이 없다면, 그 절과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 온 사람들의 흔적이 없다면, 지리산도 우리나라 사람의 참모습을 닮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리산과 그 품안의 절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자취와 오늘의 모습, 그리고 미래까지도 오롯이 보여주는 곳이다.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지리산 성모설화의 배경인 노고단, 삼국시대와 신라시대에 지어진 쌍계사, 연곡사, 화엄사, 천은사, 실상사. 그 절의 속살을 채운 고려와 조선의 유적들이 과거의 모습이라면, 물 맑은 섬진강, 쌍계사의 벚꽃 길, 연곡사의 계단식 논밭, 천은사의 석축은 현재를 일구어 가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보여준다. 실상사 주변의 생태 논밭과 그 절에서 수행 정진하는 스님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동 쌍계사의 벚꽃과 쌍계 - 지리산의 계곡이 품은 절

  봄날, 쌍계사로 들어가는 입구는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전라도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끝의 화개 장터에서 시작된 벚꽃이 말 그대로 십리. 벚꽃 길의 벚꽃만큼이나 사람도 많다. 모두 어우러져 장관이다. 그러나 어느 때 가도 기본은 갖춘 절이 쌍계사이다. 쌍계사는 계곡으로 이름난 절이다. 쌍계사는 최치원이 '쌍계'라는 석문을 써서도, 섬진강 그림자를 본 딴 팔영루 때문도, 절집이 우아하거나 아름다워서 이름이 높은 게 아니다. 오직 쌍계사의 그 이름처럼 절을 깊게 두르고 있는 두 계곡(=쌍계)이 이름값을 한다.
  심지어 나라에서 국보로 지정한 "진감선사 부도비"도 보통의 관광객에겐 별로 의미가 없다. 오히려 담장에 기와 조각을 넣어 만든 소박한 꽃문양이 우리나라 사람의 소탈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성품과 더 닮았다.
  쌍계사가 이름 높은 이유는 지리산이 품고 있는 비경인 불일폭포 때문이기도 하고, 그 물을 받아 잘 자라는 녹차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번잡한 것을 싫어한다면 쌍계사는 들르지 않아도 좋다. 다만 벚꽃이 핀다면, 그 어떤 수고를 하더라도 벚꽃 길을 걸어보는 맛도 있다. 차로 휙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벚꽃 길을 걸으면 산 중턱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차밭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참, 그리고 범종각 앞에 소담스럽게 핀 연보랏빛 수국과 절집 담장을 따라 핀 천리향, 분홍 꽃빛이 든든한 배롱나무, 그리고 흔하디흔한 나리꽃도 좋은 물과 함께 해서 그런지 참 예쁘다.

 

구례 연곡사의 부도 - 나라 안 최고 작품 두 가지

  연곡사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안 최고 작품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피아골에 펼쳐진 계단식 논밭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난 승려들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돌조각품인 부도이다. 
  지리산 중에서도 가장 단풍이 곱다는 피아골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산 중턱에 어떻게 저런 곳에도 밭을 일구었을까 싶은 산중턱의 밭들이 나온다. 층이 많은 곳은 100여 층도 넘는다고 하니 농부들의 지혜가 사뭇 놀라울 따름이다.  
  쌍계사가 계곡의 절이라면 연곡사는 부도(이름난 승려들의 사리를 넣어둔 돌조각)의 고향 같은 절이다. 우리나라 모든 부도의 아름다움이 이곳 연곡사에서 나와 다시 이곳에 모인다. 지리산 피아골에 사는 사람들의 억센 기운을 보여주는 계단식 논밭을 거슬러 올라 피아골 적당한 중턱에 자리 잡은 연곡사는 공간이 넓지 않음에도 규모가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아마도 담장이나 번잡한 무엇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중심 건물인 대적광전 앞 꽃밭이 정갈하게 가꿔져서 절 주인의 정갈한 솜씨가 배어난다.
  우리나라의 최고 수준의 부도는 대적광전의 산기슭에 앉아 절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름은 건물의 동쪽에 있어 동부도. 연곡사 동부도는 아마도 탑으로 치면 불국사 석가탑의 엄정함과 단아함, 다보탑의 화려함과 산뜻함을 절묘하게 섞어 놓은 것 같다. 차갑고 시커먼 돌덩이에 이렇게 환상적이고 멋진 옷을 입혀놓을 수가 있을까 싶다. 연곡사 동부도만으로도 한국 전통 예술의 자랑스러움을 설명할 수 있다. 돌에다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동부도의 아름다움은 바로 위의 북부도와 반대편의 서부도, 그리고 주인을 알 수 없는 다양한 부도들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부도들은 줄을 잘 못 서서 괜히 억울할 것 같다. 이들도 다른 곳에 있었으면 그래도 꽤 괜찮은 평을 들었을 텐데, 사람들이 연곡사 동부도를 보고 난 후에는 아무래도 (눈이 높아져서) 평가가 박하다. 

 

구례 천은사 - 아름다운 전설과 우아하고 정갈한 분위기

  천은사(泉隱寺-샘이 숨은 절이라는 뜻이다.)는 분위기의 절이다. 그리고 자리 잡음의 절이기도 하다. 이 절집의 분위기는 절집 앞에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호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절을 둘러싸고 있는 지리산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지리산의 끝자락인 노고단 아래에 푹 둘러친 곳에 앉은 것도 그렇고, 절집의 공간을 끌어당기기 위해 일주문 옆에 헛담(담의 기능을 하지 않는 담)을 세운 것도 그렇다.
  천은사에서는 입구의 감로수(甘露水)를 반드시 마셔야 한다. 한숨 돌리고 감로수를 마시며 천은사의 전설을 들어야 절이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천은사의 원래 이름이 감로사였다. 그 감로수 때문에 절이 세워진 것인데, 그 물에서 뱀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절에 사는 스님들이 그 뱀을 잡아서 죽였더니 이제는 절에 화기가 일어 불이 자주 났다. 이 때 조선시대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지리산 천은사" 라는 편액을 마치 물이 흘러가는 듯한 글자체로 쓴 이후부터는 절에 불이 한 번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천은사에 들어서면 눈에 잘 띄는 것이 자연석을 아주 잘 써서 건물의 터를 잡고, 공간 배체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천은사의 돌담과 돌계단이 오랜 세월에 잘 갈린 것처럼 둥글둥글하며 적당히 색이 바랬고(사실 은행잎이 노란 가을엔 천왕문 뒤에 선 은행나무 때문에-지천이 노란색이다- 정말 장관이다.) 알맞게 높으며 또 곧다.
  천왕문 앞에서 바라본 ‘보제루’의 기둥 쓰는 법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지를 말없이 가르쳐준다. 스님들 넉넉한 마음 씀씀이 덕에 보제루에 앉아서 현판을 쓴 호남 명필 "창암 이삼만"을 떠올리며 지리산을 바라보면 좋다. 아픈 몸으로도 평생 벼루 10개를 붓으로 뚫고 천 개의 붓을 사용했다는 사람이 이삼만이라는 사람이다. 그러니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보여도 저 정도의 글씨가 나오려면 보통 내공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천은사 담벼락에 곱게 핀 능소화가 천은사 분위기를 닮아 유달리 우아하고 정갈하다. 

 

남원 실상사 - 현재보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희망의 공동체

  천은사에서, 우리나라에서 차가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는 성삼재에 차를 두고 잠시 야생화의 천국인 노고단을 올라보는 것도 좋다. 10년도 넘게 걸린 야생화 복원 프로그램 덕에 겨우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는 한 노고단에서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인 운해를 볼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성삼재를 지나 도로를 달리면 전라북도 남원이다. 남원은 그 유명한 춘향이의 고향이고, 이곳 남원과 이웃 동네 함양 어름엔 흥부/놀부 형제가 살았다는 곳으로 우리 문학에 자주 등장한다. 남원읍에서는 꽤 떨어진 한적한 시골 마을, 지리산의 맨 끝자락에 실상사가 있다. 실상사 앞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 바로 돌장승이 서 있다.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웃음으로 극복해 온 삶의 모습 그대로, 익살이 잔뜩 묻어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실상사 주변의 논과 밭은 한국 농업의 미래를 좌우할 실험실이다. 실상사에서 운영해 온 귀농학교 출신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다양한 생태 농업을 연구하고,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상사에서 눈여겨 볼 보물은 보광전 앞의 동서 3층 석탑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탑인 석가탑과 다보탑의 상륜부(탑의 맨 꼭대기를 해당하는 부분)를 복원할 때 그 원형을 자세히 알 수 없어서, 이곳 실상사의 동서 3층 석탑 상륜부를 본 따서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보면 볼수록 석가탑의 모습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실상사에도 멋진 유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절에는 ‘이것을 봐야 한다.’는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실상사를 찾는 이유는 절에 살고 있는 사람의 마음씨가 좋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은 생명체의 한 그물로 얽혀있어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인드라망’ 공동체 운동의 중심인 실상사답게 수행자만을 위한 절이 아니라 낯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절이다. 그런 마음들은 생태 뒷간을 비롯해서 절집 곳곳에서 묻어 나온다.
  미래의 한국 불교를 이끌어 갈 젊은 스님들이 치열하게 고뇌하는 절! 작은 배려로 사람을 흐뭇하게 만들 줄 아는 절! 절도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절! 아직은 겉멋이 들지 않아 풋풋한 사람 냄새가 나는 절이 바로 실상사이다. 
그래도 실상사에서 볼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실망한 사람은 실상사에 속한 실상사 백장암으로 가면 된다. 백장암은 실상사로부터 약 6-7킬로미터 떨어진 산 속에 있는데 우리나라 조상들이 얼마나 돌을 기막히게 다루었는지를 실증한 탑이 있다. 깊은 산 중에 제대로 기단(탑의 밑받침)도 갖추지 못한 탑이 국보 제 10호! 이 탑의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조각은 연곡사 동부도에나 비길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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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오늘 같은 날.
빨빨한 새 책이 들어와서 아무도 안 빌려간 새 책으로 3권 골라 들고 온날.

 

 

 

 

유재현씨의 여행기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 책은 출간된지도 몰랐었다.
대충 보니 쿠바 여행기다.
아마도 <느린 희망>이 사진 중심의 여행기였기에 본격적인 쿠바 여행기는 이렇게 따로 나왔나보다.
기대 만땅....

서경식씨의 이 책은 사서 보려 했던 것인데 도서관에 있는 걸 보니 그냥 손이 갔다.
제일 먼저 읽어야지....

카르데니오 납치사건은 처음 보는 작가인데 전부터 찜해뒀었던 책.

근데 난 왜 헌책은 굳이 싫어는 아니지만 그래도 새 책이 좋은걸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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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7-01-06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르데니오를 보기 전에 제인에어납치사건 부터 보시면 좋았을텐데^^;;
저 책 표지 신기하죠? ^^;

바람돌이 2007-01-06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혹시 제인에어 납치사건을 먼저봐야 하는건가요? 아직 안봤거든요. 만약 그렇다면 순서를 바꾸게요. 그냥 반납하고 제인에어 납치사건을 도서관에 신청하고 보는걸로요.

이매지 2007-01-06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르데니오 납치사건이 순서상으로는 제인에어 다음인데요, 사실 저도 제인에어 읽은지 꽤 오래 지나고 봤는데도 큰 어려움은 없긴 했어요. 만약에 오래 기다리셔야하면 일단 카르데니오부터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바람돌이 2007-01-06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신청하고 책 사주는데 몇달 걸리거든요. 일단 한 번 볼게요. 감사합니다.^^

Kitty 2007-01-06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새 책이 좋아요 ^^ 남들 읽던 책은 왠지;;;;
서경식씨 책은 재밌겠네요...저도 보관함으로!

아영엄마 2007-01-06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르데니오 읽어보시고 평 남겨주셔요~ (제인 에어 납치 사건 읽은지 오래 되서 저도 내용이 가물가물~ -.-)

무스탕 2007-01-06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책이 좋은건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러니까요..
책 속에서 사시는 거... 부럽습니다 ^^

바람돌이 2007-01-06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티님/뭐 읽던 책도 저는 좋아합니다. 다만 도서관에서 새 책을 빌리면 꼭 내 책같은 느낌이 든달까요? ㅎㅎㅎ 서경식씨 책은 지금 읽고 있는데 굉장히 좋네요. ^^
아영엄마님/넵! 꼭 남길게요. 근데 순서상으로 3번째라서 시간이 좀.... ^^
무스탕님/님도 마찬가지시잖아요. 제일 부러운건 세실님처럼 아예 도서관이 직장인 분이죠. ㅎㅎㅎ

chika 2007-01-06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전 제인에어 납치사건 무지 재밌게 읽었어요!!! 보관함에 냉큼 집어넣었어요. 끼끼끼 ^^

바람돌이 2007-01-0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의 그리 말씀하신다면 이 책 정말 기대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