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옆지기 생일이라고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지요.
근데 우리 들어가고 조금 있으니까 아주 젊은 한 커플이 들어오더니 바로 우리 옆자리에 앉더군요.
그 커플이 유난히 눈에 띈 건 둘이 너무 안어울린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뭐 외모가 차이난다 이런건 아니고요. (둘다 각자 떼놓고 보면 괜찮은 외모들이었어요.)
사람이 왜 분위기란게 있잖아요.
그 분위기가 너무 틀리고 서로 너무 다를 것 같은....
물론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끼리 잘 통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성격 얘기고 분위기란건 성격 외모 행동 등등 모든 것에서 어울려 나오는 것 같아요.
어쨌든 남의 커플에 감놔라 배놔라 할 건 아니고, 그냥 참 신기했습니다.
그러다 옛날에 좀 장기적으로 본 아주 안 어울리던 커플이 생각났어요.

그 때는 그러니까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해 빌빌거리던 시절.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시험공부만 파고들던 심심한 청춘이었지요.
학교도서관에서 여자들끼리 뭉쳐서 공부하다보면 재밌는 일이란게 없죠.
그저 밥먹을때, 중간에 나와서 커피마실때 수다 떠는거....
그 수다란 것도 매일 도서관에 죽치고 있는게 다인 우리가 뭔 소재가 매일 매일 솟아나겠어요.
그러다 보니 늘  보게 되는 도서관의 인간들이 수다의 재료가 됩니다. 특히 커플들!
더군다나 우린 다 싱글이었어요.(정확히 말하면 저 빼고요. 하지만 그 때 연애중이었던 지금의 제 옆지기는 그놈의 국방의 의무에 충실하여 강원도 어디쯤에서 뒹굴고 있었으니 저도 싱글이나 마찬가지지요.)

그 때 그렇게 심심한 우리 눈에 띈 커플 하나!
이 커플이 눈에 띈건 사실 남자 때문이었습니다. 여자야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죠. ^^
근데 그 눈에 띈다는게 좋은 의미가 아니라 어쩌다 그 남자 옆에 앉게 되면 정말 미치고 팔딱 뛰고 싶었어요.
이 남자의 하루.

새벽같이 와서 자리 두개를 잡는다.
한 숨 잔다. 자주 코를 곤다. 침도 흘린다.
자다 깨면 10분 간격으로 나갔다 온다. 들어올 때는 꼭 먹을 걸 사온다.
나갔다 오는 것도 심심하면 앉아서 5분쯤 책 보다가 온갖 모션을 취한다.
음료수 쪽쪽 소리내서 먹기, 푸푸 한숨 쉬면서 엎드렸다 일어났다 반복하기, 책 소리내서 넘겨보기, 다시 자기.....
이 남자가 또 덩치도 얼마나 좋은지 좁은 도서관에서 옆에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갑갑한데 옆에서 하루종일 이러고 있으면....

그럼 이 남자는 왜 도서관에 왔을까요?
오로지 눈물겨운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여자친구 따라 도서관 와서 하루종일 그 옆에 죽치고 있어야 하는...
여자 친구가 무슨 취직공부를 했나봐요.
그 여자친구는 약간 새침하고 아주 깔끔해보이는 외모에 성격은 좀 까탈스러워 보이는 스타일.
하루종일 책상에 붙어 앉아 마님처럼 마당쇠를 부리면서 자기 공부만 열심히.....
솔직히 그 여자는 별로 남자를 썩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남자는 정말 무신경에다가 덩치는 산 만하고...오로지 마님을 위한 마당쇠 역할에 충실.
하여튼 그 남자의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둘은 너무 너무 안어울렸습니다.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는 저렇게 안어울리는  커플이 과연 언제까지 갈까?
내 옆에만 앉지만 않으면 그 남자가 가끔 안돼 보일때도 있었어요.
뭐 속으로는 저런 마당쇠를 둔 여자에게 질투가 났다는것도 인정해야겠죠. ^^

그런데 참 오래가더군요.
제가 공부하던 1년 내내 그들과 함께였으니까요.
그래도 참 서로가 좋아하긴 하나보다. 남들 눈에는 안어울려 보여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제 뒤를 이어서 도서관을 점령한 후배들에게 들었어요.
그 커플 깨졌다고...
여자가 더 이상 도서관에 오지 않게 되면서 그 여자의 옆자리에 다른 남자가 있더라는군요.

한 편으로 너무 안 어울렸어 하다가...
그래도 1년동안 너무나 지극정성이던 그 남자 - 옆에 앉았을때는 웬수처럼 보였지만 - 가 불쌍해졌습니다.

어제 그 안어울리는 커플을 보다 보니 문득 그 때 그 남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여자는 별로 안 궁금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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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6-0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남자로서는 다행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분은 아마도 나중에 후회할 껄요...
정말로 자길 좋아하고 잘해줬던 남자가 누구였는지 생각하면서요...ㅋㅋㅋ

바람돌이 2006-06-03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까요? 어쨌든 저도 그 여자가 좀 얄미웠습니다. 도서관에 있을때도 남자한테 좀 쌀쌀 맞았거든요. 오늘의 교훈 - 희생적인 사랑은 안돼!! ^^

물만두 2006-06-0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좋은 여자분 만나셨겠죠^^

바람돌이 2006-06-0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그게 아마 그 남자한테 오히려 행운이었길 빌어요. ^^

마늘빵 2006-06-03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그 여자두 참 얄밉죠 그러면. 그런 여자들 있어요.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남자를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제가 볼 땐 이용해먹는거로 밖엔 안보이더군요.

바람돌이 2006-06-04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당사자가 아니고 게다가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러니 모르죠. 그냥 재수없게 도서관의 수다꾼들한테 걸렸다 싶어요. 그 내막이야 누가 알겠어요. ^^

sooninara 2006-06-07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잼납니다. 이런 뒷이야기..(난 진정 아줌마인게야.ㅠ.ㅠ)

바람돌이 2006-06-07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처녀때도 이랬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