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나오자 마자 사서 봤지만 우리집 아이들에게는 꽁꽁 숨겨두고 보여주지 않은 책이었다. 집에와서 밥줘 소리만 하고 아주 중요한 회사로 가는 아빠와 아이들. 엄마는 혼자서 설겆이와 청소와 빨래와 온갖 집안일을 혼자서 묵묵히 하고, 그러던 어느날 그 엄마가 "너희들은 모두 돼지야"라는 쪽지 하나만을 달랑 남기고 집을 나가버린다는 내용은 아이들에게 너무 충격적일 것 같아서였다.

근데 요즘 워낙에 우리집 아이들이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기 일쑤고 이거야 아이들이니까 당연하다고 하지만 엄마가 청소할때도 아주 엄격하게 얘기하지 않으면 같이 치울 생각을 안하는지라 맘먹고 그림책을 읽어줬다.

애들은 이 그림책을 의외로 아주 좋아해서 계속 읽어달랜다. 특히 이제 6살이 된 예린이가...

사실 이 책은 내 느낌만으로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폭력적일 수도 있는 내용인 것 같은데,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두 녀석이 참 신기하다. 엄마가 집을 나가는 대목에서도 별로 충격을 받는 것 같지 않다. 그냥 다른 그림책 보듯 재밌어 한다.

"엄마 이 사람들은 왜 돼지가 됐어?"

"응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나니까 설겆이도 안하고 빨래도 안하고 해서 너무 더러워져서 그런거야"

"음~~ 그러면 병균이 생겨서 아야 하는데.... 그치 엄마?"

"예린아 그러니까 우리 청소할 때는 엄마랑 같이 하자."

"응! 근데 우리는 아빠도 하잖아"

순간 내가 깨달은건 우리집 애들이 이 책을 충격적이지 않게 받아들인건 순전히 아빠의 공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얘들에게는 늘 집안일을 같이 하는 아빠의 모습이 이미 익숙해져있어  성역할의 분리란 개념 자체가 별로 없었나보다.

이 책을 읽어준 저녁 모처럼 서방이 고마워졌다. 그리고 밥먹을때마다 "엄마 고맙습니다"란 말을 하고, 아이들에게도 꼭 하게 하는 서방에게 나도 오랫만에 고맙다라는 말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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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01-26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정말 좋은 아빠이자 남편이십니다.

바람돌이 2006-01-26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요. 집에 있을 때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분명하데, 이 집에 있는 시간이 얼마 안된다는게 결정적인 문제겠죠. ^^

조선인 2006-01-26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정말 좋은 아빠에요. 멋져 멋져.

바람돌이 2006-01-26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 댓글 보면 우리 서방이 좋아하겠어요. ^^

꿈꾸는섬 2006-02-01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돼지책은 아이들에게도 좋지만 어른들에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요. 바람돌이님 남편분은 정말 좋은 분이세요^^

바람돌이 2006-02-02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꾸는 섬님/맞아요. 아빠 엄마들이 같이 읽고 생각해볼게 정말 많은 책이죠.. 근데 이 댓글은 서방이 보면 안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