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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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 사랑하다.

그리고 사랑을 잃고 아프다.

또는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고 또한 누구나 아프다.....

 

고통은 각각이 자신의 무게를 가진다.

누구도 누구보다 덜 아프지 않다.

책을 읽다 문득 드는 생각은 고통은 견디는 것, 또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고통속을 각자의 방법으로 통과할 뿐.....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는 아내의 외도의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는 건, 특히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뭐랄까, 보다 총체적인 문제야.

더 애매하고, 더 제멋대로고, 더 서글픈거야"라고 읆조릴 수 밖에 없다.

 

<예스터데이>의 이십대 청춘은 상실을 겁내지 않는척한다.

젊음의 호기로움일까?

하지만 아픈건 누구에게나 아픔이다. 나라고 아프지 않을리가 없는데 젊음은 자주 눈을 가린다.

이별의 예감은 기타루의 오랜 여자친구의 꿈으로 표현되어있다.

"달은 투명하고 깨끗한 얼음으로 만들어졌어. 아래 절반은 바다에 잠겨 있고....... 그래서 아침이 와서 해가 뜨면 녹아버려.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동안 잘 봐두는게 좋아."

이렇게'함께'바라볼 수 없는 순간이 언제든 올테니까......

 

<독립기관>의 도카이는 중년의 나이에 생애 처음으로 사랑을 만난다. 가벼운 만남을 누구보다 즐기던 그에게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래서 지금 내가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건지 인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면역성 없는 사랑에의 중독은 그를 파괴한다. 상처에 면역성이 전혀 없는 도카이에게 이 한번의 사랑은 치명적이 돼버린다.

"그녀를 만나지 않을 때, 만날 수 없을 때, 내 안에서 그런 분노가 고조되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그게 무엇에 대한 분노인지 스스로도 잘 파악이 안돼요."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면 내 마음도 따라서 당겨집니다. 로프로 이어진 두 척의 보트처럼. 줄을 끊으려 해도 그걸 끊어낼 칼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어요."

 

<세에라자드>의 그녀는 어떤 이유인지 집에 갇혀있는 나에게 세상으로의 유일한 소통경로이다.

언제 끊어질지 알수 없는 유일한 얇디 얇은 끈.....

빨판으로 돌에 달라붙은 채 수초사이에 숨어 하늘 하늘 흔들리며 지나가는 송어를 노리는 칠성장어의 모습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면 그의 꿈이 보인다. 세에라자드와 함께 칠성장어가 되리....

그러나 송어는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기에 그 꿈이 백일몽임을 안다. 세에라자드는 그와 함께 꿈꾸지 않는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기노>처럼 어떤 이유에서인지 상처받았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쿨하고 싶은 욕망 또는 무너지는 걸 보여주기 싫은 자존심 무엇으로 표현하든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은" 척 자신을 속이는건 결국 회피에 불과하다.

상처는 결국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한바퀴, 두바퀴, 세바퀴 나를 휘감으면서 몸집만 점점 더 불리고 있는 고통은 어느 순간이 되면 나를 잡아먹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내겐 이 <기노>의 아픔이 가장 공감이 되었다.

상처를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충분히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어느 날 새벽 오래 전 연인의 자살 소식을 그녀의 남편으로 부터 전해듣게 되는 이야기 <여자 없는 남자들>은 앞의 이야기들의 마무리격의 역할을 한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그건 여자 없는 남자들이 아니고는 이해하지 못한다. 근사한 서풍을 잃는 것. 열네 살을 영원히 빼앗겨버리는 것....."

어떤 이유든지 결국 상실은 고통이고 아픔이다. 후회에서 무기력, 죽음까지 고통이 나타나는 방식은 달라도 고통의 크기를 비교할 수 는 없을 것이다. 무엇이든 인생의 가장 근사한 시절을 잃었다는 것은 같으므로.....

 

하루키의 글은 뭔가 심심한듯하면서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

이게 뭐 하면서 보는데 어느덧 하루키가 펼쳐놓은 세상에 덩그러니 올려진 내가 보인다고나 할까....

 

아 그리고 카프카에 대한 오마주 <사랑하는 잠자>

이건 정말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의 이야기.

하루키가 이걸 장편으로 만들어주면 어떨까?

하루키식 벌레의 인간되기, 왠지 근사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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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4-11-07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세요? 저는 아직도 경주 여행 정리를 못 했답니다. ㅠㅠ

바람돌이 2014-11-08 13:29   좋아요 0 | URL
네. 조선인님도 잘 지내시죠?
마로랑 해람이 많이 컸겠네요. ^^
뭐 흘러간건 흘러간대로 둬야죠. 저도 정리 못한 것들 이제는 감당도 안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