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지난 달에 있었던 일인데 그때는 워낙에 바빠서 못하고 갔던 얘긴데..
아까 내 글에 달린 책읽는 나무님 댓글보다 보니 다시 생각난다.

어느 날 쓸데없이 일찍 일어나서 여유가 꽤 있던 아침이었다.(하여튼 사람은 안하던 짓 하면 안된다)
마실 물이 떨어져 가는 걸 보고 아침에 끓여놓고 가면 저녁에 냉장고에 넣어서 시원하게먹겠다 싶어 주전자에 물 가득 넣고 보리차랑 옥수수차 넣고 끓였다.
그리고는 씻고 아이들 깨워서 챙기고 그리고 여유만만하게 출근했다.
가스 불에 물 올려놓은 것 새까맣게 까먹고...

그리고 출근해서 정말 열심히 일해주셨다.
이 때가 워낙에 바쁜 때였던지라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하루 종일 코박고 일하고 그것도 모자라 퇴근시간을 1시간 넘겨서까지 또 코박고 일하고....
결국 오늘일은 내일로 미루라고 있는거야 하면서 룰룰랄라 퇴근을 했다.
근데 친정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가려고 신호등 기다리고 있는 순간 딱 생각이 난거다.
가스불에 주전자를 올려놨는데 그걸 끈 기억이 전혀 없다는 걸....
무려 12시간에 걸쳐서 끓고 있을 주전자 생각이 퇴근할때야 나다니...

그 순간의 기분은 정말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공포였다.
우리집 단독도 아니고 아파트인데 불나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거지?
눈앞이 캄캄, 식은땀이 줄줄이란 정말 이럴때였구나....ㅠ.ㅠ
그때부터 부들부들 떨면서 심장은 두근반 세근반 후덜거리면서 집으로 직행!
정말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뭔가 이상한 탄 냄새가 집안에 진동을 하고 있었다.
부엌으로 달려가니 역시 그때까지 가스불은 활활 타오르고 주전자는 미동도 없이 얌전히 가스불 위에 얹어져 있었다.
휴~~~ 불안나고 곱게 새까맣게 타주고 있는 주전자가 어찌나 고맙던지...
가스불을 끄고 주전자 뚜껑을 살며시 열어보니 당연히 물은 한 방울도 없고,
넣었던 옥수수와 보리는 형체가 모두 해체돼 회색과 까만색의 재가 되어 주전자 바닥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그래도 그 순간 불 안나준것만 어찌나 고맙던지 정말...
진짜 다시는 안하던 짓 안해! ^^;; 쓸데없이 일찍 일어나서는.... ^^;;

근데 다음날 내 얘기를 들은 내 옆의 선생님
"자기 집의 가스렌지 오래됐지? 가스렌지 바꿔라! 가스렌지가 얼마나 부실하면 그게 그때까지 불 안나고 타고 있냐? "하면서 막 웃으신다.
진짜 가스렌지 바꾸긴 해야 하는데...
이게 10년이 한참 넘어서 요즘은 불도 라이터 갖다 대고 켜야 하걸랑...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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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8-05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안 하던 짓 하면... 사단이 꼭 나지요. ㅎㅎㅎ

바람돌이 2008-08-05 02:26   좋아요 0 | URL
그래서 사람은 살던대로 살아야해요. ㅎㅎㅎ

아영엄마 2008-08-0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며칠 전에 냄비 올려 놓은 거 까먹고 애들이랑 산책 나갔다 왔더랬어요. 돌아와 현관문 근처에서 탄내를 맡는 순간 '아차! 우리집이다!!' 싶더군요. 당연히 냄비는 새까맣게... -.-;; 암튼 저희집이나 님네나 불 안 나서 다행이어요~. 자나깨나 불조심~, 특히 나이들어서는 나갈 때 필히 가스레인지 확인!! 입니다요.

바람돌이 2008-08-05 02:27   좋아요 0 | URL
저희집은 그 냄새 빠지는데 거의 일주일 걸렸습니다. 옷장안의 옷까지 냄새가 배겨서 출근할때 입으면 그 냄새가 났다죠. 뭐 그렇다고 전부 다 꺼내서 세탁할 정도로 부지런하진 못해서 그냥 참고 입었습니다. ㅎㅎ

하늘바람 2008-08-05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경험있어요 집안이 연기로 꽉차서 당시 회사가 가까워서 망정이지. 이궁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바람돌이 2008-08-05 02:27   좋아요 0 | URL
전 왜 중간에라도 생각이 안났을까요? 그러면 저도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니 달려와서 끌수 있었는데... 정말 섬뜩해요. ㅠ.ㅠ

Mephistopheles 2008-08-05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만.하.면.하.나.새.로.장.만.하.세.요.
큰일날 뻔 했습니다요.

바람돌이 2008-08-05 02:28   좋아요 0 | URL
새로 장만해서 화력좋으면 진짜 불나게요. 그냥 참고 살래요. ㅎㅎ

조선인 2008-08-05 09:03   좋아요 0 | URL
새 제품은 과열되면 자동으로 불이 꺼져요. 오히려 화재위험이 없다니깐.

바람돌이 2008-08-05 22:52   좋아요 0 | URL
엑!!! 새 제품은 자동으로 꺼진다구요. 전 왜 몰랐을까요? ㅠ.ㅠ
이번 여름에 가스렌지 꼭 바꿉니다. 더불어 제 꿈인 그릴 있는걸루다가.... ^^

무스탕 2008-08-05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달에 모처럼 우럭매운탕 끓여서 한 번 먹고 다음날 상하지 말라고 또 끓여 놓는다고 올려놨다가 잊어버려서 홀라당... -_-
냄비 바닥에 눌러붙은 우럭이 을매나 아깝고 가슴이 쓰리던지요..

예린이랑 해아 작품 팔아서 가스렌지 사실 자금 마련하셔야 겠습니다 ^^

바람돌이 2008-08-05 22:53   좋아요 0 | URL
아 맛난 우럭 매운탕 아까버라.... ^^;;
예린이랑 해아 작품 팔아서 사려면 도대체 몇년이나 걸릴까요? ㅎㅎ

클리오 2008-08-05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인생의 철렁한 순간, 정말 있죠... 그니까 평소대로 살아야된다니까요, 그쵸? =3=3=3

바람돌이 2008-08-05 22:53   좋아요 0 | URL
맞아요. 평소대로 살아야죠. ^^

bookJourney 2008-08-05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밤 삶는다고 냄비를 올려놓고는 깊이(!) 잠이 들어서, 냄비를 홀랑 태워먹은 적이 있어요. --;;

바람돌이 2008-08-05 22:54   좋아요 0 | URL
다들 그런 경험들 한번쯤은 다 있군요. 그래도 시간상으로는 제가 최고 기록이 아닐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