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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입문하기 - 삶의 방식에서 살아 있음의 철학까지, 인류학의 가장 위대한 질문들
오쿠노 카츠미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6년 7월
평점 :
일본 학자들의 인문 사회 과학 서적을 읽을 때 느끼는 것이 이들은 참 정리의 달인이다. 잘 잡히지 않던 개념, 이론의 흐름같은 것들이 일본 학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고, 도표화가 쫙 되어 펼쳐지는거다. 다른 학문 분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주로 본 인문 사회 과학 서적들은 그런 경향이 강했다. 물론 이런 도표화와 정리에는 어느 정도의 무리수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입문 단계에서는 톡톡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번에 읽은 책 <인류학 입문하기> 역시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인류학의 계보를 정리하고, 인류학이란 학문의 의미와 쓸모에 대한 확실한 개념을 잡아준다.
인류학이란 학문은 다른 학문에 비해서 역사가 짧다. 유럽인들이 자신들 바깥 세계를 만나면서 그 바깥세계를 서열화하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 문명과 야만으로 민족을 나누기 위한 용도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유럽인들은 정말 온갖 이유를 갖다붙여 자신들의 인종적 우수성을 증명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에 타자로 자신들의 세계에 들어온 다양한 민족들은 좋은 연구대상이었다. 애초부터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한다는 목적이 분명한 학문이었던 것이다. 다만 세상 일은 늘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인류학은 자체의 발전을 시작했고, 이 책이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인류학이 자체의 발전을 시작한 20세기 이후의 인류학의 계보를 4명이 대표적인 학자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20세기 초 문헌에 의지하던 인류학계에 현장에서의 직접 연구(필드 연구라고 한다)를 강조하며, 필드에서 자신의 감각을 총동원해서 탐구하는 것이 진실에 다가가는 최선의 방법이라 주장하고 실천했던 폴란드 출신의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 그는 인간 사회와 삶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필드연구를 주장했고, 이것은 이후 인류학의 기본적인 연구방법으로 필드연구가 자리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필드연구를 통해 말리노프스키는 사물과 세계를 대하는 사람들의 관점, 세계관까지 탐구하고자 했다.
다른 사람의 근본적인 관점, 심지어 미개인의 관점까지 존중하고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면,우리의 시야 또한 넓어지게 된다. - 65쪽, 말리노프스키의 <말의 엄격한 의미에서의 일기>에서 재인용
위의 말에서 보듯이 말리노프스키의 관점은 여전히 인류를 문명-야만, 문화인-미개인으로 나누는 이분법에서 아직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인간과 문화를 혐오나 증오가 아니라 타자를 이해해야 한다는 명제를 던진 것으로 인류학이 다른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초를 던졌다는 데 의의가 있겠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스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이다. 물론 나는 이름만 들어봤지 사실 책도 안 읽었고, 아는건 없지만 말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속에 의식되지 않는 삶의 구조가 내재해 있다고 보았고, 그 구조를 통해 인간이 전 세계 이곳저곳에 있는 '차이'를 통해 이 세계를 이해하고 있음을 파악한다. 예로 토테미즘과 히스테리를 이야기하는데, 19세기 말에 이 두 주제가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은 유럽인들이 자신 안에 있는 껄끄로운 부분을 '미개인'과 '정신병 환자에 투영하여 자신들의 정상성을 확인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럽인들의 심리적 환상을 확인하고 까발림으로써 인류학은 인종을 우열이 아니라 차이로 인식하는 단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레비스트로스에 이은 프란츠 보아스에 이르면 드디어 문화상대주의 개념이 등장한다. 오늘날 문화상대주의는 당연한 진리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개념인데, 이 개념이 바로 인류학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보아스가 직접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연구가 이 개념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동력이었다. 이런 개념은 문화를 총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인지함으로써 가능한데, 삶의 방식은 우열이 아니라 레비스트로스가 이야기했듯이 차이일 뿐임을 인지하고 필드 연구에서 확인하는 과정에서 정립되었다.
이제 현대 인류학으로 넘어오면 중요 인류학자로 팀 잉골드를 얘기하고 있다. 잉골드는 자연과 사회를 구분해 생각하는 근대 서양의 이원록적 사고법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을 '생물사회적' 존재로 파악하는 태도에 도달했다. 인간을 생물사회적 존재로 생각한다는 것은 생명체로서의 인간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통합으로 보는 것인데, 그저 단어만 들어도 아 생태학적 개념이 반영되겠구나 싶다. 잉골드에 의하면 인류학은
인류학은 '미개'사회와 비서양 사회 사람들'에 대한' 학문도, 이문화 이해를 위한 학문도 아닙니다. 인류학자가 스스로 세계 한복판으로 들어가 사람들'과 함께'하는 철학이지요. -196쪽
이제 인류학이 인간과 자연, 세계를 위한 철학으로 이야기되고, 이것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전력으로 대답해야 하는 학문이 된다.
어쩌면 모든 학문은 결국 이 물음에 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어 나감에 처음 인류학의 계보를 정리하면서 결국 모든 학문의 길이 하나로 통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폭염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인 나도 결국 내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언제나 간직하고 고민해야하는 근원적인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