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알고 싶은 한국미술 10
강병직 지음 / 연립서가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때 광풍처럼 몰아쳤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거기다 더한다면 보이는 것이 많을수록 일상에서 행복해지는 순간이 더 많아진다고 하고싶다.

올 겨울 유럽 여행에서 수많은 미술관을 다니면서 가족들에게 나는 막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반짝반짝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책으로만 보던 그림들 또는 몰랐던 그림들을 눈앞에서 보면서 붓 터치 하나하나를 새겨 넣는 순간들은 모두가 내 마음이 빛나는 순간들이었다.


타고난 예술적 감각이라고는 진짜 쥐뿔도 없고 심지어 관심도 없던 나는 오로지 20대의 어느 날 읽은 서경식 선생님의 <나의 서양 미술 순례>라는 책 한 권 덕분에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었다.

연애를 책으로 배운다는 것처럼 책으로 미술을 배운 내게도 그래도 오랜 시간을 투자하니 혼자서 즐거울만큼의 안목정도는 생기더랜다. 

한국 미술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어쨌든 읽다보면 아름다운 것들이 더 자주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그런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한 책이다.

교수와 학생의 대화형식으로 된 글은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처음 또는 좀 더 깊게 느끼고 싶은 이들을 위한 훌륭한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한다.



학교 다닐 때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청동거울은 사실 미술관보다는 박물관에서 만나게 되는 유물이다. 

하지만 청동기 시대에 0.3mm간격으로-무려 1mm안에 3개의 선을 그었다.-무늬를 새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좀 더 자세히 보고싶어진다. 또한 청동거울을 만들기 위해 이토록 섬세한 거푸집을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되면 당시의 기술력만으로 이해되지 않는 경이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 저게 왜 거울이냐고도 묻고 있다. 아무것도 안 비칠것 같은데 말이다.

우리가 보는 청동은 모두 오랜 세월에 의해 녹이 앉은 것들이다.

구리와 주석, 아연의 합금비율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원래의 청동은 황금색이거나 은백색을 띠게 된다.

그래서 무늬가 없는 앞면은 그야말로 유물을 보는 내 마음만큼 반짝반짝 - 사물을 비출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화장이나 얼굴을 보기 위한 거울은 아니다.

당시 지배층의 장식품으로 하늘과 태양을 숭배하던 당시 지배층이 저걸 목에 딱 걸고 햇빛아래 나가면 눈부신 반사가 일어났으리라.... 폼잡기 딱 좋은...

하지만 폼만 잡고자 한다면 굳이 뒷면에 저토록 섬세하게 무늬를 새겨넣을 이유가 없다.

그저 윤이나도록 닦은 앞면만으로도 충분할테지만, 그런 물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것은 장인들의 본능이고 거기서 예술이 시작되는 것일거다. 

어쨌든 이 책을 읽고나면 박물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청동거울도 다시 보이는 순간이 올테다.




백제의 산수문전이나 여러 벽돌들은 하나만 봤을 때는 그렇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물건들은 실용적인 목적에서 만들어졌기에, 그것이 실제 벽면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이런 그림을 보면 아! 하는 깨달음이 태어난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박물관에서 낱개로 떨어져있는 무수한 벽돌이나 기와들이 어떻게 집합적 아름다움으로 나타날지를 상상하고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철화 끈무늬 백자다.

백자의 모양 자체도 완벽한 선을 자랑하지만 그에 저렇게 끈 하나 멋지게 그려넣음으로써 아 술을 마셔야겠다라는 생각을 동시에 떠오르게 한다. 

아마도 저 병을 가졌던 사람은 매일 술이야 하지 않았을까?

또는 저 병과 함께 술을 나눴던 지인들과의 아름다운 시간들을 항상 되새겨주지 않았을까?

휙 한번 휘감은 선으로 그저 아름답기만 한 도자기가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삶의 다른 아름다운 순간들을 이끌어내게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너무 유명해서 다시 말하지 않아도 될 다보탑이라든지 백제금동대향로, 신사임당과 정선의 그림이야기들을 당대의 사회상과 다른 예술의 경향들과 더불어 알기쉽게 알려준다. 

좋은 도판과 함께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찾는 여행의 시간이다.


단, 좋은 책인데 의구심이 드는 대목은 얘기하고 넘어가야겠다.

13페이지에 석기가 아닌 청동 농기구를 쓰면서 농경지가 확대되고 수확량도 늘어났다는 설명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청동 농기구가 발견되지 않았다. 중국과 베트남 일부 지역에서 청동 농기구가 발견되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다. 청동의 재료들이 쉽게 구하기 어려운 귀한 재료였고, 그 단단함이 땅을 개간하기에는 모자랐던 탓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에 농기구는 여전히 석기를 사용했다. 내가 알고 있는건 이런데 그동안 뭔가 고고학적인 발굴이 있었나싶어 찾아봤는데 그런것 같지는 않다. 왜 이런 서술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176페이지에 1593년 임진왜란 때 퇴각하던 일본군이 경복궁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경복궁이 불탄건 1592년으로 알려져있고, 화재 역시 노비문서가 보관된 장예원에 한양의 노비들이 불을 지르면서 같이 불탔다는 설과, 일본군이 방화했다는 설 2가지가 있다. 둘 다 당시 기록을 참고한 주장인데 전란의 시기 혼란으로 인해 무엇이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결론이 안 난걸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한국 미술 입문서로 훌륭하다.

다음에 2편이 나온다면 역시 바로 읽고싶을만큼...

그리고 2편에는 작년 간송미술관에서 만난 진짜 반짝 반짝 빛나던 백자의 이야기도 해줬으면 좋겠다. 

나의 보너스 사진은 간송미술관의 청화무늬와 철화무늬가 어우러진 백자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25-02-06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백제금동향로와 청자 참외 모양 병이요. 이 책도 재미있겠어요.

바람돌이 2025-02-06 10:55   좋아요 0 | URL
이 책에 백제금동대향로 이야기도 나옵니다. 재밌게 읽었어요. 백제금동대향로야 뭐 누가 봐도 너무 멋지니까요? ㅎㅎ 참외모양 청자는 저도 좋아한답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 실제로 보는 것도 좋고, 이렇게 책으로 보는 것도 둘 다 참 즐겁지 않나요? ^^

페크pek0501 2025-02-06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읽으면 아는 게 많아질 것 같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