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구했다.
무라카미 모토카의 42권짜리 대작 <용(龍)>

한 10년전쯤에 요걸 보다가 하도 안나와서 그냥 잊고 살았었는데 얼마전에 드디어 완결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방 팔방 주변의 도서대여점을 뒤졌으나 못구했었다.
어제 친정에 갔다가 친정집앞 대여점에서 드디어 42권 전권을 구하다.

이십몇권까지인가 보고 못봣었는데 다시 볼려니 하도 오래돼서 앞의 내용의 세세한 부분은 거의 기억이 안나 결국 42권을 한꺼번에 빌렸다. 어젯밤부터 눈에 불을 켜고 보는데 지금 현재 21권 보는 중..... ㅠ.ㅠ

다시 보는 만화는 이전에 볼때 느꼈던 것보다 더 좋다.
소설로 치면 대하소설쯤 된다 할 정도로 워낙에 스케일도 크고 나오는 인물도 다양해 내용을 뭐라고 한마디로 얘기하기는 힘들다.

1920년대부터 1945년 패망때까지의 일본, 만주국, 중국이 만화의 주무대를 이룬다.
주인공 용은 일본 귀족이자 재벌가의 후계자이지만 이런 배경으로 뻔한 내용의 상상은 금물!
그의 변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진정한 무사정신의 실현을 꿈꾸며 무술수련에 열심인 무술전문학교(무전)의 풋내기 학생
자신의 집 하녀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집안의 계승권을 모두 버리는 로맨티스트
자신의 힘으로 독립하기 위해 거지생활이나 괴짜 스님 도장의 무술사범이 되기도한다.
또한 넓은 세상을 꿈꾸며 항공기 사업에 뛰어들어 만주항공이라는 기업을 일으키기도 하며,
또한 누명으로 들어간 경찰서에서는 조사를 받다가 평소 알고 지내던 조선인 청년의 죽음을 막기 위해 경찰서를 탈출해버리는 용감무쌍함을 발휘 - 범죄자고 쫒기기까지....
결국 일본을 탈출해 중국으로 간 용에게 시련은 여전히 끝이 없다.

이런 용의 변신만 보면 이 만화가 단순히 한 영웅적 인간의 일대기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게 또 아닌것이 주인공 용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이 장난 아니다.
1920년대 이후는 일본이 본격적으로 군국주의의 길을 걷는 격동기였고 그만큼 사회는 다양한 사상과 계층간의 대립이 분출하고 있던 시대.
용이 변신할때마다 그가 만나는 인간들 역시 그 시대 일본의 모습을 전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을만큼 다양하다.
우익 국가주의자 부터 좌익 공산주의자, 옛 유신지사나 재벌, 각계 각층의 권력자들, 가난한 품팔이꾼과 노동자들, 그리고 일본 내에서 억압받고 있던 조선인들까지.....

그럼에도 주인공인 용의 입장은 어느한쪽으로 치우치진 않는다.
뭐 항상 중립을 지킨다는 그런 어줍잖은 것이 아니라 그는 현재 성장하고 있는 중이고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그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며 평화다.
그가 누구든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 핍박을 받고 있으면 도와야 하고, 그가 일본이 세운 허수아비국가 만주국에서 만주항공회사를 만들때도 그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일본과 중국의 평화다. 그걸 위해서라면 자신의 집안 - 재벌하나쯤은 쓰러져도 괜찮지 않겠냐는 말을 태연하게 뱉으면서...
그런 그가 지금은 기억을 잃고 중국에 있다.
때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중일전쟁의 시기.
이곳에서 그는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까?

이 만화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은 작가가 그려놓은 여성상이다.
많은 여성들이 나오지만 특히 여주인공 격인 하녀출신의 타쯔루의 변신도 남자주인공 용에 못지 않다.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결국 가난 때문에 돈에 팔리고 어찌하다보니 용의 집안에 하녀로까지 오게 된 그녀는 남자주인공과 사랑을 하게 되지만  결코 그 사랑에 안주하지 않는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강인한 여성상.
그녀 역시 자신의 무슨 사상을 가진건 아니지만 항상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는다.
어쩌다 알게되고 감동받았던 한 노동운동가 여성이 결국 감옥에 끌려가게 되자 그녀의 아이들을 7년이나 떠맡아 기르기까지 하며 인간에 대한 믿음을 실천한다.
영화배우로 성공한 이후에도 그녀의 삶은 현재 진행형이다.
또한 그녀가 영화배우가 되면서 당시의 일본 영화계의 모습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녀의 다음 도전이 어떤 것이 될지도 사뭇 기대된다.

이 만화의 또 하나의 장점은 훌륭한 그림이다.
사실적인 그림으로 그려내는 당대의 풍경은 역동적일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사실적이다.
교토의 풍광을 묘사하는 그림들을 보면서 얼마전에 다녀왔던 교토의 거리들이 되살아나는듯 했다.
그림만 보고도 다녀왔던 곳은 아 여기가 어디구나 하는걸 바로 느끼고는 추억에 젖게하기도 한다.
또는 내가 갔던곳의 옛모습이 이랬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군국주의 일본을 비판하면서 당대를 살아간 수많은 인간의 다양한 파노라마를 펼쳐놓는 이 만화는 내게는 올해의 만화로 꼽혀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일본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아니면 역사에는 관심없어도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
누구에게든 강력추천하는 만화다.
단 42권이나 되는 분량 - 한권당 읽어내는데 드는 시간도 꽤 만만찮다.-의 압박을 견뎌낼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강추다. 한 번 잡으면 끝을 봐야 할 것 같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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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9-27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권이 넘어간 맛의 달인도 보는 판에 42권..정도는....^^

바람돌이 2007-09-27 16:27   좋아요 0 | URL
맛의 달인이 100권을 넘어갔나요? 한 50권 언저리쯤에서 보는거 중단했던 거 같은데.... 저는 요정도가 한계예요. 더 이상은.... ㅎㅎ전 지금 29권 볼 차롄데 아마 오늘밤도 다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일까지... ^^

비로그인 2007-09-27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만화는 안 읽은지 꽤 됐는데,
추천에 힘입어 보관함에 담을게요 바람돌이님! ^^

바람돌이 2007-09-27 16:27   좋아요 0 | URL
역사만화를 특별히 싫어하지 않으신다면 재밌을거라고 생각해요. ㅎㅎ

무스탕 2007-09-2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이 끝이났군요. 오래된 책이고 유명한 책이라는건 알지만 보진 않았어요.
바람돌이님 말씀 들으니 (글을 읽으니? ^^;) 보고싶어지네요. 꼴깍~

바람돌이 2007-09-27 16:30   좋아요 0 | URL
한 10년만에 끝난 것 같아요. 유명한건 옛적에 공안정국에서 희생양으로 일본만화 때려잡을때 같이 때려잡혀서 유명해진 것도 같고... 그 때 이유가 일본의 침략정책을 미화한다 어쩐다 하는 것으로 기억돼는데 정말 말도 안돼는 이유예요. 책은 오히려 반대인데 말입니다. 어쨌든 좋고 재밌는 만화인데 아마도 구하기가 힘드시지 않을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만.... ㅠ.ㅠ

2007-09-27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7-09-27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소장해야 하는데, 역시 권수의 압박이란... 중고로 알아봐야겠어요. 오래 전에 20권 정도까지 본 것 같아요. 기억 거의 안 나요. 다시 봐야 돼요^&^

바람돌이 2007-09-27 23:31   좋아요 0 | URL
저도 하나도 기억안나서 결국 처음부터 다시 보고 있습니다. ㅎㅎ 만화의 소장은 자금의 압박과 공간의 압박이 워낙 심한지라 왠만하면 피하고 있는데 마노아님도 대단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