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 풀 꺾이는 느낌. 

물론 낮에는 여전히 덥지만 아침저녁으로 바람의 온도가 달라진다. 

그러니 이번 주는 오랜만에 등산가자 하고 아침에 커피도 내리고 막 챙기고 있는데 카톡이 하나 왔다.



저 2019년은 내게도 지옥같은 나날들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아 일어나서 출근해야지 하는 순간이 매일 악몽같았던......

그나마 내가 운이 좋았던건 저 때 저렇게 서로 손잡고 함께 견뎌주던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심상치 않을 때 귀신같이 알아채고, "언니 산책가자"라며 내 손을 끌어주던 손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책이래봤자 빈 운동장 몇 바퀴 도는게 다였지만 그 한순간덕분에 나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모두 다른 학교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여전히 시도 때도 없이 만난다.

우리를 뭉치게 하는건 어쩌면 전쟁같은 그 날들에서 함께 살아남았다는 전우애 비슷한걸지도 모르겠다.


서이초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에도 여러 선생님들의 부고가 들려온다.

왜?

이제 겨우 아프다 힘들다 말이라도 하게 됐는데 왜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대한민국의 교사로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왜냐고 묻지 않는다.

다 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학교 사회에서 교권과 관련된 사건들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고, 또 대부분의 사건들은 아무리 부당해도 "너 하나 참으면 넘어간다"라는 마법의 말로 무마된다. 문제를 분명히 하고, 사과받아야 용서도 가능한 수 많은 일들이 나 하나 참지 않은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렇게 묵혀두었던 상처들이 서이초선생님의 죽음 이후 계속 되새겨지면서 트라우마로 무한반복 재생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집단 트라우마상태다.

나는 지금은 더 무섭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이 사태에 대해서 책임지는 사람이 하나 없는 현실이 무섭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고통스럽다고 거리에 나와 절규하는데도 헛발질만 계속하며 말도 안되는 헛소리만 늘어놓는 정부당국을 보며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정말로 절망할까 봐 두렵다.


아침에 저 카톡을 받고 일단 바빠서 이모티콘 하나로 마음을 표현하고 등산을 갔다.

하늘도 산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덥기는 엄청 더웠지만.....

올 가을에는 절망하지 않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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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9-11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망하시지 않는 세상이 빨리 왔음 좋겠네요.
바람돌이 님.
아이들 곁에서 그리고 동료들 곁에서 힘이 되어주신 그 마음 저도 고맙고 감사하네요.
저도 사랑 드리고 싶네요.♡

바람돌이 2023-09-11 21:35   좋아요 0 | URL
나무님 사랑 받고 오늘 하루 뿌듯합니다. ^^
이 곳 역시 나무님같은 분들이 있어서 제게 힘이 되는 곳이에요. 항상 감사드려요.
나무님 사랑받고 저도 사랑 같이 보내요. ❤

감은빛 2023-10-05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바람돌이님 곁에는 다른 선생님들이 계셔서 다행이었네요. 누구나 힘든 시절을 겪게 되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아이 둘을 키우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선생님들을 몇 번 만났어요.

그 중 한 번은 선생이 자꾸 아이들(당시 초등 4학년) 앞에서 쌍욕을 하고, 가끔 감정 섞인 체벌을 해서 다른 학부모들과 연대해 징계를 요구했었고, 또 고등학교 선생이 역시 욕설과 성적 비하 발언을 일상적으로 해서 이 역시 학교에 강하게 항의한 일이 있었어요. 그 외에도 몇 번 폭언이나 황당한 언행을 일삼는 교사들이 있었지만, 그냥 참고 넘어간 일이 많았죠. 저 두 건은 워낙 일상적으로 이뤄진 상황이라 도저히 아이들이 참을 수 없어서 벌어진 일이구요.

초등학교 때 일이 일어났을 때 재발방지를 위해 교장 선생님을 직접 만났었는데, 당시 교장은 별일도 아닌데, 괜히 학부모들이 극성이라는 투로 말했었구요. 고등학교 교사 건도 교감을 비롯해 다른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너네가 너무 예민해서 괜히 그 선생님이 학교에서 쫓겨났다고 질책을 했었다고 들었어요.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은 면만 보고 이면은 잘 보지 못하고, 보고 싶어하지 않죠.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와 교직원 등 다른 입장이라 다른 면들만 볼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럼에도 교사의 일탈행동이나 학부모의 어이없는 갑질 같은 일들도 명확하게 벌어지는 사건들이구요.

사람을 보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합계 출산율이 절망적인 수준이라는데, 왜 이 사회는 사람을 무시하는 풍토가 팽배할까요? 학교 공교육이 무너진 지 오래되었지만, 입시 교육 대책만 매번 바뀔 뿐 근본적인 변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고, 매일 전국 어딘가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가지만, 안전을 강화하는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또 같은 자리에 다른 비정규직을 몰아넣고 있죠. 세월호와 이태원을 겪고도 잼버리 사태와 같은 일이 또 반복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바람돌이 2023-10-05 15:20   좋아요 0 | URL
간 큰 학교, 간 큰 교사들이군요. 어떤 곳이든지 모든 사람이 일률적일 수야 없죠. 저희집 아이때도 학교 선생님 한 분이 해직 되었더랬어요. 미투가 한창일때죠. 저는 아이가 얘기를 안해서 나중에 알았는데 솔직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옆에서 볼 때도 솔직히 저 인간은 민원 안들어오나싶은 사람이 없는게 아니니까요.
어느쪽이든 말씀하신대로 인간이 타인을 존중하고 최소한이 예의를 지키는 그런 사회가 왜 그렇게 어려운걸까? 사실 어려운게 아닌데 왜 그럴까요? 학교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그런 가치들을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마지막 보루가 저는 공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놈의 공교육에 대해서 저는 희망의 끈을 놓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요. 그걸 놓는 순간 우리는 진짜 야만의 시대로 진입한다싶고요.

오늘 아침 날씨는 진짜 가을이란 느낌이 팍 들었습니다. 여름에 지친 몸에 에너지 충천 팍팍 해봐요. 그래야 이놈의 세상을 계속 살아가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