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은 여성의 노예제 반대 운동에 참여하면서 억압에 대한 정치적 도전을 조직하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녀는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며 싸운다. 1848년 세니커폴스 대회에서 그녀가 제기한 여성의 선거권은 당시 많은 논란을 일으켰으며 대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나 세니커폴스선언에 여성의 불평등한 상황과 권리를 표현하고 그것을 자각하게 하는데 기여햇다. 그러나 이 선언은 안타깝게도 흑인 여성과 백인 노동계급 여성에 대해서는 거의 외면했다.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여성의 관점이자 운동이었다. 그들이 하는 노예제 반대운동은 결국 가진 자의 동정심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이런 인식의 한계는 1863년 이후 링컨의 노예해방령이 발표되고 법적인 노예해방이 실제화되자 바로 여성과 흑인을 대립시키면서 새로운 인종차별주의적인 생각으로 나아간다. 백인 여성보다 흑인 남성의 정치적 영향력이 더 커지면 안되지라는 생각 또는 ".... 비속한 무지렁이 흑인 남자보다는 학식있는 백인 남성의 노예로 지내는게 더 낫다"라는 발언이라니..... 여기서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의 진보는 멈추고, 오히려 인종차별주의자로 돌아섬을 알 수 있다.   


  여성참정권 운동 내부에서 흑인 참정권투쟁과 여성참정권 투쟁을 합치고자 한 모임에서조차 흑인 남성이 투표하는 것보다는 여성이 투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공공연하게 인종차별적인 입장이 표명된다. 

그런데 이걸 이 여성들이 참 모자란다고 생각하고 그녀들의 한계야라고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다. 이런 인종차별주의적인 생각은 분명히 옳지 않은 것이지만 이것이 현실에서 통용되는 방식은 만만치 않다.


  흑인은 남녀 모두 투표권이 없고, 백인은 여성의 투표권이 없다. 그런데 노예해방령이 시행되고 나면 흑인 남성에게는 투표권이 생긴다. 그러면 여태까지 여성투표권과 노예해방을 위해 싸웠던 백인 여성들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물론 여기서 모두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 여기서 흑인이라도 먼저 투표권이 생겨서 다행이야, 이제 그들이 의회에 들어가서 우리 여성의 투표권을 위해 싸울수 있도록 하자라고 말할 수 있다면(물론 이게 정답이다) 당신은 진짜 현자다. 그리고 실제로 이 논쟁의 뒤에 산업자본가들이 주도권을 유지, 확대하기 위한 본질을 파악한다면 당신은 더욱 현자다. 그런데 대부분의 백인 여성, 특히 중산층 여성은 대부분의 흑인 남성들보다 더 잘 교육받았고, 경제적으로도 우월하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하인이었던 이들을 동정심으로 풀어주자 그들이 오히려 자신의 위로 올라서는 격이다. 운동의 분열과 인종차별주의의 대두는 다시 필연적이다.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의 발언은 명백히 틀렸지만, 실제 운동에서는 이것이 현실적인 힘이 된다. 그래서 옳고 그름의 문제만으로 또는 이론적 정합성만으로 현실의 운동은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론을 공부한다. 저 복잡한 감정과 현실을 뚫고 옳은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소저너 트루스는 1850년 최초의 전미여성권익대회에서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라는 연설을 통해 새로운 여성운동의 계급 편향과 인종주의를 폭로했다. 그럼으로써 백인여성- 흑인여성- 백인/흑인 노동자 여성의 연대를 위한 강력한 한걸음을 내디뎠다. 다음은 소저너 트루스의 연설 전문이다. (출처는 위키백과)


여러분, 이렇게 야단법석인 곳에는 뭔가 정상이 아닌 게 있음이 틀림없어요. 내 생각에는 남부의 검둥이와 북부의 여성 모두가 권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 그 사이에서 백인 남성들이 곧 곤경에 빠지겠군요. 그런데 여기서 얘기되고 있는 건 전부 뭐죠?

저기 저 남성이 말하는군요. 여성은 탈것으로 모셔 드려야 하고, 도랑은 안아서 건너드려야 하고, 어디에서나 최고 좋은 자리를 드려야 한다고. 아무도 내게는 그런 적 없어요. 나는 탈것으로 모셔진 적도, 진흙구덩이를 지나도록 도움을 받은 적도, 무슨 좋은 자리를 받아본 적도 없어요.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날 봐요! 내 팔을 보라구요! 나는 땅을 갈고, 곡식을 심고, 수확을 해왔어요. 그리고 어떤 남성도 날 앞서지 못했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나는 남성만큼 일할 수 있었고, 먹을 게 있을 땐 남성만큼 먹을 수 있었어요. 남성 만큼이나 채찍질을 견뎌내기도 했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난 13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 대부분 노예로 팔리는 걸 지켜봤어요. 내가 어미의 슬픔으로 울부짖을 때 그리스도 말고는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이런 일을 사람들이 머리와 관련해 얘기할 때 뭐라고 부르죠?

(청중들이 중얼거렸다: "지성!")

맞아요. 그거예요. 지성이 여성의 권리나 흑인의 권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거죠? 나의 잔이 1파인트도 담지 못하고, 당신의 잔이 2파인트를 담고 있는데, 당신은 내 보잘 것 없는 절반 크기의 잔을 채우지 못하게 할만큼 야비하지는 않겠지요?

저기 검은 옷을 입은 작은 남자가 말하네요. 여성은 남성만큼의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요.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여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요! 당신들의 그리스도는 어디서 왔죠? 어디서 왔느냐고요? 하나님과 여성으로부터 왔잖아요! 남성은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죠.

하나님이 만든 최초의 여성이 혼자서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만큼 강했다면, 이 여성들이 함께 세상을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지금 여성들이 그렇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게 더 좋을 겁니다.

내 말을 들어야만 해요. 이제 늙은 소저너는 더 이상 할 말 없어요.



  남부 흑인들의 노예화와 북부 노동자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시스템을 통해 연결되어 있음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 소저너 트루스라는 이 노예 출신의 흑인 여성은 자신의 삶으로 그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 전체를 바쳐 그것을 폭로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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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2-05 00: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보기도 못 보기도 하겠습니다 노예 해방운동은 동정도 조금 있었을 것 같네요 그러면서 자신보다 먼저 투표권을 갖는 걸 안 좋게 여기기도 했겠습니다 모든 걸 생각하기 참 어려운 거군요 지금도 다르지 않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3-02-05 23:11   좋아요 2 | URL
인간이란게 자신이 살아온 배경이나 틀 이런걸 벗어나는게 쉽지 않지요. 그래서 늘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고 또 그렇게 생각하게 되네요. 지금도 이런 비슷한 문제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더 조심해야겠어요. ^^

다락방 2023-02-05 0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맹렬하게 읽으시네요 바람돌이 님! 저도 어서 읽고 싶습니다! 마지막 인용구는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흑인 페미니즘의 사상>에도 나왔던 구절이에요. 저 안그라도 어제 제임스 볼드윈 책을 읽었는데 인종에 대해서는 우리가 계속 읽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여성과 계급에 대해서도요. 더 알기를 멈추는 순간 인간으로서 퇴보할 것 같아요. 아주 좋은 뽐뿌 주고 계십니다, 바람돌이 님!!

바람돌이 2023-02-05 23:13   좋아요 1 | URL
이번 달 책이 좋아서 계속 맹렬하게 읽고 싶은데 일정이 안 따라주네요. 이번 주 목요일까지 쉬고 금요일부터 다시 달리겠습니다. ^^ 소저너 트루스는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역사에는 이토록 아름다운 여성들이 정말 많네요. 그런 사람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도 크네요.
다락방님 아직 베트남 아닌가요? 즐거운 여행 계속 화이팅입니다. ^^

2023-02-05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5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