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페미니즘의 제1물결
페미니즘 제1물결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여성 참정권 운동이였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인권 개념이 발생하지만 그 속에 여성의 권리는 빠져 있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고, 이후 참정권 운동으로 연결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겠다. 그런데 이에 대한 문학적 성취가 없었나보다. 내가 읽었거나 알고 있는 책을 돌아봐도 없구나.....버지니아 울프는 이런 운동에 대해서 모르지 않았지만(모를 수가 없지 않나?) 더 중요한 것은 경제적 독립과 개인적 공간이라고 <자기만의 방>에서 말했다고 하는 데 이걸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물론 울프가 여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을 말한 것은 맞지만 이것이 여성참정권 운동보다 더 중요하다는 비교개념으로 말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문학비평과 페미니즘을 결부시키는 이 책의 첫장은 안타깝게도 가장 핵심적인 페미니즘 운동의 노력과 성과를 비켜갈 수 밖에 없었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중요하게 등장하는게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다. 정치와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여성이 제2의 성이 된 것은 그것의 타자성에 기원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제1페미니즘 운동의 이론적 귀결을 볼 수 있었다는게 내 생각인데 저자의 말 역시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울프와 보부아르가 여성참정권 쟁취 이후를 고민하지만 여성억압의 외적 조건에서는 모두 인지하고 싸울 방법도 찾았지만, 둘 중 누구도 여성억압의 내재적 조건 또는 여성 내부의 다양한 차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던 것이 한계일듯하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의 여자 주인공이 결국 파멸에 이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여성의 억압이 경제력이나 자기 공간, 또는 남성과의 관계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문학적 성취일 수 있겠다.
chapter 2 자유주의 페미니즘
베티 프리단으로 상징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 시기에 여성운동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보수적으로 보인다. 여성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평등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성정치학'과 떨어질 것을 요구하는데 이는 동성애 권리와 낙태의 권리같은 것과 구별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 찬성하기가 힘든데 어떤 궁극의 목표가 있다고 했을 때 그것에 단계적으로 요구사항의 수위를 조절한다거나 하는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인 목표가 틀리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은 것이다. 독립적 인간으로서 폭넓게 여성의 권리를 사고하지 못하는 것은 어쨌든 가부장제의 논리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혐의는 베티 프리단이 사유를 알파적 사유와 베타적 사유로 나누는 것에서도 보여진다. 사유 자체를 남성적 사유와 여성적 사유로 나누어 온 것은 오래된 가부장제의 도그마였고, 거기서 여성적 사유의 유용성 또는 우위를 주장한다는 것은 결국 가부장제가 그어놓은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경계 자체를 뛰어넘는 사유이다. 누구도 성에 의해서 분석적인 사유를 하거나, 통합적인 사유를 하거나 하도록 규정지어지지 않았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내용과 한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으로 제시되는 앨리슨 루리의 <테이트 가족의 전쟁>은 이 시기 전통적인 이성애 가정과 그것이 붕괴되는 모습, 그리고 대안적인 가정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와닿지가 않는데 그것은 원래 논제인 이성애 가정의 근본적인 문제점, 그리고 대안적인 가정의 모습이나 의미 이런 것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진다.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어쩌면 소설 자체가 그런 모습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이 경우는 저자가 텍스트를 잘못 선택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저자가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문제가 현재 사회의 구조를 용인하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건드리지 않으며 중산층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정도에서 멈추려한다는 것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이것이 소설의 어떤 지점과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독자에게 명확하게 와닿지 않는게 문제다. 도대체 이 소설을 선택한 이유가 뭐냐고?